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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ar 12. 2020

[사원 일기] 일의 두 가지 종류

끝나거나 끝나지 않거나. 대체로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에는 데일리 하게 끝나야 하는 것과 '될 때까지' 잡고 가야 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데일리 하게 끝나야 하는 일이란 줄 때부터 무슨 요일, 모 시까지 전달 주세요, 하고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업무. 가끔 '되는대로 주세요'라는 애매모호한 형태의 업무지시가 내려올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의 경험상 그렇게 두루뭉술 넘어오는 일들은 레벨 자체가 낮았다. 금방 끝낼 수 있다는 거지. 만약 그렇지 않은 일을 '되는 대로 달라'라고 지시받았다면? 흠, 여기서부턴 일을 주는 사람의 문제다. 아멘. 


반면 '될 때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 일은 명확한 미션은 있는데 그걸 달성하는데 필요한 '일정(schedule)'적인 지시가 없는 업무다. 애초에 데드라인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부류의 업무들이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일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패턴을 띠기 때문이다. 


1. 들이는 공에 비해 속도나 양적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음 

2. 시작과 끝의 경계가 없어 다른 업무들 사이사이에 적절히 끼워서 진행해야 함 

3. 그러다 보면 놓치는 이슈가 생기거나 중간보고가 많아져 루틴 하게 끝내야 하는 다른 업무의 흐름이 끊김

4. 무한반복


즉 쉽게 말해서, 늘어지는 업무일수록 더 긴장하고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업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이번 주에 1) 매일 그날그날 퇴근 전까지 쳐내야 하는 윤문 작업과 2) 앞으로 내가 윤문 하게 될 원고를 써줄 필진 섭외 작업을 동시에 해야 했다. 원고를 교정하다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응대하고, 또다시 원고를 교정하다가 메일에 회신이 오면 중간보고를 거쳐 다시 회신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던 셈이다. 텍스트의 늪을 헤엄치며 메일> 회신> 보고> 응대의 무한 루프를 거치다 보면 어느새 타자를 치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해지는 현타의 순간이 온다.


길을 걷다가 딴생각을 하면 반드시 제 스텝에 꼬여 넘어지듯이, 일과 일이 서로의 타임라인을 침범하는 이런 날에는 두 배로 긴장하고 두 배로 집중해야 한다. 그밖에 돌발 사고를 막기 위해서 나는 이번에 이런 원칙 아래에서 일을 했다. 


첫 째. 메모지와 잘 나오는 펜을 항상 옆에 둔다. 

- 다른 일, 특히 문서를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비즈니스 통화가 시작되면 그 누구라도 얼기 마련. 어버버 하다 보면 전화는 끊겨 있기 마련이고, 내가 섭외를 해야 하는 '아쉬운' 입장에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 상대방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면 항상, '손으로' 받아 적을 수 있는 도구를 상비해두자.


둘째. 상사의 지시가 없어도 꼬박꼬박 중간보고를 한다. 덜 바쁠 때. 

- 보고가 있다는 생각을 머리에 박아두고 일을 하면 '스케줄'이 있는 일처럼 느껴지게 되고, 중간중간 정신없이 오는 연락들도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보고 시간대는 일정하게 정해두는 편이 좋은데, 우리 팀의 특성상 오전 시간대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과장님이 광고주 응대로 매우 바쁘시기 때문에 대충 4시 전후가 되면 나는 무언가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소위 말하는 '아다리'가 안 맞을 때가 종종 있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셋째. 금요일에는 지금까지 수신처 별로 진행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일괄 정리해 보고한다.

- 그러면 다음 주에 내가 뭘 빼고 뭘 더 하면 되는지 정리되니까. 기한이 없다고 정말 기한이 없는 일처럼 생각하고 하다간 망하기 딱 좋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치열한 하루였다면 퇴근과 동시에 치킨을 주문한다.

-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치킨은 나에게 심리적 보상과도 같은 음식. 꼭 치킨이 아니어도 좋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잘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과정은 내일도 이어질 줄다리기 같은 하루를 위해 꼭 필요한 충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치킨파라면, 저는 요즘 교촌 레드 순살이 그르케 좋더라구요. 강추합니다)


그리고 이건, 야구로 치면 3할 이상의 타율을 지닌 타자처럼, 잔뜩 뿌린 섭외 메일로부터 상당수의 긍정적 회신을 받은 그 날 저녁 나에게 준 선물 사진.

헤헤. 보니까 또 먹고 싶네. 요즘은 재택근무라서 퇴근 30분 전에 미리 주문을 하는 쾌감까지 덤으로 얻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필진 섭외를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다음 글은 메일 쓰기에 대한 내용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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