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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커라 Jul 12. 2022

금요일 퇴근길의 작은 사치

800원으로 누리는 유료도로의 야경

(이 글은 대전으로 출퇴근하던 4월경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 저는 세종시로 이직하였습니다.)


지난해 12월,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가면서

퇴근길 운전시간이 10분에서 40분으로 대폭 늘어났다.

원체 운전을 할 일이 많지 않았던 대전의 삶(집-직장 차로 10분)을 접고

고만고만한 운전실력으로 나름 장거리(?)를 왔다갔다 하느라

몸이 고달팠다. 가족들 아침식사와 학교 가는 아이들 챙기고 부랴부랴 출발하면 

졸음까지 쏟아져 한동안 혼이 나갈 것 같았다.

두 어달 지난 지금은 적당히 적응한 상태.


몸이 적응하니 운전에만 집중하던 눈과 마음이 슬슬 다른 풍경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특히, 어스름이 가득한 대전 천변과 세종시 초입길의 초저녁은 퇴근시간을 설레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도시와 시골 사이 어디쯤엔가 있는 대전에서 세종으로 가는 이 묘한 도로는 

유료도로 '대화'를 들어서며 시작된다.

얼마전 새로 생긴 '신세* 대전 백화점'과 '호텔 오*마'가 어우러진 화려한 야경을 거쳐

신탄진과 세종으로 갈라지는 양갈래 길부터는 대전을 길게 가로지르는 갑천변의 수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으로 5~10분 가량을 달리면 어느샌가 정지용 향수에 나올법한 호젓한 시골집과 

넓은 논밭이 이어진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집들을 보며

속도를 서서히 줄여나가면 KDI(한국정책개발연구원)의 웅장한 건물과 함께 세종 도입부가

갑분! 등장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은 바로 그 도입부를 들어서자마자 짜잔~!하고 등장하므로

대전-세종을 잇는 짧고도 머나먼 여정은 막을 내린다.


참 별 것 아닌 퇴근길인데 ...장면 사이사이가 도저히 겹쳐지지 않는

도시와 시골 풍경들이 매 순간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함께하는 음악.

퇴근길 내 귀가 선택한 음악은 KBS클래식 FM의 '장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 채널이다.


정말이지, 어떠한 선곡도 모조리 다! 완벽한 채널이다. 정통 클래식, 올드팝, 요즘팝, 한국가곡, 한국가요. 

제3세계(라는 표현은 안좋아하지만, 달리 다른 표현이 없으므로)의 이국적인 음악까지.

어떤 선곡도 단 한번도(정말이지 단 한!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진행자와 작가, 연출자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가며 곡을 선곡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방송이다.

거기다 저녁노을과 잘 어울리는 진행자 장기현 님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는

내 퇴근길이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만든다.


그런데 난 이 유료도로의 행복을

오직, 금요일 딱 하루만 누리고 산다.

대화도로는 800원 유료도로, 이것도 연간으로 계산(좀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라...

평소에는 반석동으로 시내주행을 해서 국도를 이용한다.


그치만 주1회의 작은 사치(?)는 금요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나만의 작은 기쁨이 되었기에

이런 좀스러운 계산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오늘은 목요일이고,

내일은 기다리던 날이다.

오늘 오후부터 나는 조금씩 설레일 것이다

<퇴근길 회사 앞에서 찍은 하늘(구닥다리 아이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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