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대도 손 떨리던 카페인 취약자의 커피 복용(?)..기
지난해 여름까지
커피는 나에겐 그저
카페에 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커피는 안 마셔도 분위기 좋은 카페를 좋아했기에
자릿값을 내면 덤으로 딸려오는 쌉싸름한 (Just) 액체였다.
스타벅스에 동료들이 작은 미사일 모양의 일회용컵에 커피를 들고 나오는 걸 늘 생경하게 보던,
커피라곤 출근 후 너무 졸리니까 믹스커피 푹 찢어서 반쯤 먹을까 말까.
나중엔 버리는 게 아까워서
찬물이나 들이키던, 카페인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 나다.
사실 커피를 멀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카페인에 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발표나 시험 전에는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마시고 나면 목소리와 손이 너무 떨려서 (긴장해서가 아니다 ^^)
최소 전날 저녁부터 마시지 않는다.
그러다 작년 여름에 뜻하지 않게 비형간염 판정을 받고
보균자이기에 만성질환으로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처지에
커피가 치료제 역할은 아녀도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묘한 의무감이 생기며 꾸역꾸역이라도 먹어야 겠다는...결심 아닌 결심을 했다.
점심시간에 부지런히 커피들을 (꾸역꾸역) 마시면서
세상에 참 커피가 다양하구나
새삼 알게 되었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는 다양한 커피 전문점들이 있었고
프랜차이즈 커피집도 많았다.
주로 스타벅스를 애용하였는데,
일단 맛이 한결같고
앱으로 미리 주문할 수 있어서
직장인의 짧은 점심시간에 제격이었다.
자주 이용하다 보니까 차츰 차가운 커피말고
자연스럽게 다른 커피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돌체라떼'였다.
돌체라떼의 매력은 물론, '연유'다.
달달한 흰색 액체에 빨대를 푹 꽂아 츄르릅 빨아올리면
오전에 아무리 힘들었던 일들도 하얗게 잊어버리는
마력의 맛이 잔 바닥에 깔려 있는 커피다.
또 개인이 하는 커피집은 나름의 고유한 맛이 있었고
종류가 스벅보다 더 다양해서 가끔 가게를 바꿔가며 이 맛 저 맛 마셔봤다.
이 와중에 사무실에선 네스프레* 캡슐 커피기계를 들여놔
편하게 고급(?)스러운 맛을 사무실에서 누리게 되었다.
캡슐에 들어 있는 원두 찌꺼기는 부지런히 집에 들고 와서
애들하고 콩도 심고 시금치 씨도 뿌렸다.
그렇게 소소한(?) 커피 사치를 부리다가
지난 6월에 이직을 했다.
이제 커피는 '간 보호' 목적에
'감사 표시', '친목 도모' 수단까지 목적 2개를 더 추가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며 여기저기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그리고 옮긴 직장에서 처음 만난 분들과 친해지기 위해
"커피 한잔하자." 라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졌다.
매달 쓰는 가계부에 '커피' 지출을 살펴보면
이직이 결정된 5월 중순부터 현재(9월 2일)까지 3~4달 동안
마흔 평생 마신 커피값을 훌쩍 뛰어넘는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겐 거리가 멀었던 이 고동색의 음료가
어느새 내 삶에 깊숙이 들어오긴 왔는데...
아직 그 미묘한 맛의 차이와 원두 종류 감별까지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고
여전히 많이 마시면 손이 떨린다.
그리고 몇 달간 안 먹던 음료를 줄기차게 마셔댔더니
두통도 심해졌다.
오후 4시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가슴이 심하게 뛰어서
1일 1잔만 마시기로 나름 규칙을 세웠다.
커피 애호가들은 향과 맛의 미묘한 차이도 잘 구분하던데
나에게는 아직도 산 넘어 산의 고지일뿐.
커피 애호가까진 못되지만
기분까진 내는 단계로 오는 동안
나의 간수치(ALT)는 여전히 6~7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8이 되어야 약도 처방받는데.
커피를 꼬박꼬박 마셔서 그런가? 싶어서
(오해는 마시라, 커피 많이 마신다고 간수치가 낮아지는 건 절대 아님!!!)
당분간 끊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1일 1커피를 하지 않으면 뭔가 빠진 것 같은 하루 같아서 안되겠다. 섭섭하기도 하고.
술은 많이 마시면 '술꾼'이다, 뭐다 하며 고운 시선이 잘 안가는데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면
왠지 고급스럽고 섬세한 취향의 사람으로 보인다.
무던하고 무덤덤한 인간에 가까운 나로선
그 묘한 향의 차이를 감별하며 음미하는 수준까진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게으르기도 하고.
또, 생각보다 부산물(쓰레기)이 많이 생겨서(여과지, 1회용품, 원두 찌꺼기 등)
그 부분도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일단, 그 쌉싸래한 맛이 주는 너낌적인 너낌은 좋다.
흐릿했던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카페인의 매력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
첫 만남은 인상적이지 않아서 딱히 기억도 나지 않는
지극히 비즈니스적 관계의 사람인데,
일적으로 얽히고설켜서 어쩔 수 없이 붙어 다니다가
같이 지내는 시간이 꽤 쌓이고
알고보니 생각보다 합이 나쁘지 않은
그런 파트너 같다고나 할까.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어색하게 인사하고 침묵 속에서 앞만 보던 동료에서
이젠 인사도 정답게 나누고 소소한 안부도 묻고
내키면 회사 욕을 5분 이상 할 수 있는 사이 :?로 발전 중이다.
막 좋아하진 않는데, 싫어하지도 않는
없으면 없는 데로, 있으면 분위기가 더 풍부해지는
그런 존재,
나에게 커피.
더 친해지길 바라요~~.
<제일 맛있는 커피는 주말에 빵이랑 같이 먹는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