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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Jan 19. 2024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는 일.

기준이 바뀌면.

귀국해서 어쩌다 저쩌다 보니 미국에서 부친 짐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다시, '회사'라는 곳에 출근을 하는 워킹맘이 되었더랬습니다. 재택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출근을 해야 하는 회사 특성상 제가 없는 오후에 보호자의 역할을 하며 아이를 돌보아줄 분이 필요해졌죠. 아마, 지구상 모든 일하는 엄마들이 하는 고민일 듯합니다.


엄마 껌딱지로 세상 둘째 가면 서럽던 아이였기에 뉴욕에서는 내내 재택으로 근무하는 회사를 선택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워낙 맞벌이 가정이 많은 맨해튼에서는 하교 시간 픽업은 엄마보다 베이비시터나 내니들이 더 많기도 했기에 자라면서 아이도 서서히 변화했었습니다. 때로는 " 나도 엄마 말고 내니가 데리러 오면 안 돼? 그럼 나도 나나랑 플레이데이트 할 텐데! 나나는 베이비시터가 온단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간혹 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여러모로 늘 흔들흔들하는 워킹맘 라이프지만이전보다 일하는 엄마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아이와, 한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귀국 후 한결 마음을 놓고 회사로 출근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약간의 난이도가 추가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육아는 레벨업이 주기적으로 찾아오지요.

허허허허허.

귀국하며 아이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영어로만 공지되는 학교의 공지 사항을 부모인 우리가 바쁠 때는 대신 확인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영어가 가능하며 아이를 돌보아 주실 분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결국 영어가 모국어인 동남아시아 분이 아이를 돌보아 주시게 되었어요.


이제 좋고 싫고 가 한결 뚜렷하고, 의사표현도 명확한 나이로 자란 아이였기에, 가능하면 아이도 좋아하는 분과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부재중인 시간이 조금이라도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에 면접을 보러 오신 분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아보기도 하고, 차 한잔 하며 이야기도 나누어보며 아이를 잘 돌보실 수 있는지 살피며 제 아이의 마음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분들을 만나던 어느 날. 아이 입에서 "저 언니랑 있으면 좋을 것 같아."라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위아래로 언니, 오빠와 동생들이 많아 늘 아이들을 돌보며 자랐다는 내니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뉴욕에서도 자주 볼 수 있던 동남아시아(필리핀, 티베트) 내니들도 하나같이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성실하게 아이들을 돌보며 아끼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분 또한 그러했습니다. 제가 퇴근하면 함께 절 위한 저녁 밥상을 차렸다며 소꿉놀이 하듯 둘이 깔깔거리고 있었고, 같이 방 정리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까먹고 간 준비물을 제 대신 들고 학교로 뛰어가주던 것도 그 내니였습니다. 집 안에서 보는 둘은 정말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고 온 제게 아이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엄마. 나 혼자 다니면 안 돼?


그즈음 우리가 살던 집은 아이가 다니던 학원가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학원을 가려면 횡단보도를 2개는 건너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배우던 악기의 크기도 아이가 혼자 들기에는 버거운 사이즈라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이 의아했죠.

"안돼, 혼자서는.

엄마 없이도 안전하라고 내니랑 같이 다니는 건데 왜~. 하여튼 안돼. 혼자는."


그런데, 제 말에 아이의 답변이 매우 격하게 돌아왔습니다.

"나 그럼 내일부터 안 갈 거야!"

요즘 학교 생활 적응하느라 힘이 들어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생떼를 쓰는 것 같아 두 번 다시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며 혼을 냈습니다. 어딘가 억울한 듯 꾹 다문 입에, '혹시 내니랑 무슨 일 생겼다?'싶어 둘 사이의 대화나 행동을 지켜보았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했지만, 이직으로 인한 피로와 갖가지 신경 쓸 일이 가득한 머릿속은 아이의 말을 “투정“ 폴더에 꾹 넣어두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두 주 즈음 지났을까요? 오랜만에 주말 행사로 학교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잘 지냈어요? 요새 바쁘죠.. 학원에서 안 보이시더라고요. 근데, 아 맞다! 지난번에.. 괜찮았대요?? 그날 애가 엄청 속상해하며 갔는데."

"네?? 무슨 일 있었어요?"


"아.. 그날, 레슨이 같은 시간에 겹쳐서 마주쳤었어요. 근데 내니랑 같이 왔는데, 학원 안에 있던 한 엄마랑 아이가... 외국인 아니냐며  막 손으로 가리키면서 쑥덕거리고 계속 쳐다보더라고요. 민망하게. 크게 이야기해서 다른 사람들도 막 쳐다봐서… 아이가 엄청 속상했을 것 같아요. “

"네...???????"


한국인이 아닌 내니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국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시선 속에서,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해도 본인에게 하는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을 내니와 그 곁에서 민망함과 당황함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속이 상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는 아이에게 생긴 그날 일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느껴진 투정이 그제야 이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그 학원에서. 그 아이와  엄마가 의도적으로 저희 아이와 내니에게 상처를 주려 그런 행동이나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괜찮지는 않았죠. 때로는 의도가 없는 행동들이지만, 그 안에 숨은 고정관념들이 더 황당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니까요.


1993년 '미국 의사협회지'에 게재된 한 논문은 바로 이런 경우를 보여줍니다.

환자의 인종이 아니라 의학적 상태에 따라서 객관적 진료를 행하는 의사들이 내린 처방이, 인종에 따라 크게 양극화되는 상황이 확인된 거죠. [인종에 따른 부적절한 응급실 진통제 처방]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긴 뼈 골절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 중, 진통제를 처방받지 않은 백인 환자는 25.9%인 반면 히스패닉 환자의 경우 54.8%가 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의아한 이 결과에 의사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지만, 그 후 다른 논문들을 통해서 재차 확인되어 그 이후에도 '의사가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진료를 한다는 연구 결과'는 사실로 확인됩니다. **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따라 누구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단을 내리는 의사들이 왜 그랬을까요?

의사들이 모두 인종차별 주의자는 아닐 텐데 말이죠.


이 이해가지 않는 결과를 풀어낼 실마리 중 하나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가지고 있는 태도와 믿음을 의미하는 '암묵적 편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됩니다. 의사들 스스로가 명시적으로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 편견'이 인종별로 진통제를 더 주거나 덜 주는 어이없는 결과를 빚어낸 것이죠.**


우리 뇌의 신경망이 첫눈에 보이는 피부색이나 성별과 같은 정보를 조합해 어떤 사람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데 0.1초가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눈을 깜빡하는 데 보통 0.1~0.4초가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새보다 빠르게 타인을 고정관념에 따라 인지하고 분류해 믿을 만한지 판단합니다.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입니다.

P.56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동아시아 출판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고정관념과 편견의 힘이 이렇게나 강력했기에, 그날,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편견은 아무런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 시선과 손가락질 안에 제 아이와 제 아이를 살뜰히 돌보아 주던 내니를 세워둔 상황이 참으로 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왜냐면... 이곳이,

사회 내 소수자를 향한 시선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돌아온 내 나라, 한국이었기 때문이죠.


사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어준 도시기도 했던, 맨해튼은 여러 인종과 문화가 정신없이 섞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시안의 비율은 10% 언저리로 높지 않았고, 아이가 다니던 학교만 해도 백인 친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어요. (맨해튼 내 백인 비율 58.9% / 전체 미국 평균으로 보자면 아시안 비율은 전미 평균 7%, 한인 커뮤니티가 큰 LA지역의 아시안 비율은 14.7%로 다소 높습니다.-위키피디아 뉴욕 인구 통계 참고 )


이렇게 인종적 소수자의 편에서 살아가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국 사회의 문화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부모로서 더 많은 애를 써야만 아이가 소외당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런 부모를 지켜보며 아이들 역시, 우리가 이 사회의 주류와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죠. 특히 신기하게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 역시 미묘하고 자연스럽게 같은 인종끼리 더 편안하게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중국계, 일본계, 한국계 등 아시아인 친구들끼리 더 먼저 친해지기도 하고, 혹 누가 그중 하나를 괴롭히기라도 하면 더 나서서 보호해 주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눈으로 보이는 피부색과 머리색, 눈 색의 '다름'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 이면의 문화의 이질성을 감지해 내는 아이들의 눈은 얼마나 예리한지 지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이는 더더욱 신이 나 있었습니다. 막연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눈색도, 머리색도 같은' 친구들이 아주 많이 생길 것이고, 그 모두의 한가운데서 더 이상 소수자의 입장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역시 컸던 듯합니다.


근데, 그렇게 비슷하다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이방인을 지적하는 손가락질과 눈길을 함께 받는 상황에 놓였으니 아이의 마음은 더 당황스럽게 슬퍼진 것이지요. 심지어 우리가 '소수자‘였던 뉴욕에서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 상처는 더 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2014년 진행된 [세계가치조사 World Values Survey]에서 "다른 인종의 사람이 이웃으로 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답한 비율이 스웨덴은 2.8%, 미국이 5.6%였다고 합니다. 반면 같은 질문에 한국은 34.1%였다고 합니다. **

그래도 명세기 공식적인  '설문조사'인데 말이죠...


물론 미국이나 스웨덴 역시 이 질문에 완벽히 솔직했다고는 저도 믿지 않습니다. 특히 살면서 지켜본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로 표면적으로는 “평등”의 가치를 그 어느 곳 보다 중요시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트럼프처럼 반 이민정책을 고수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하고, 또다시 재선을 노리며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있기도 한…. 가면을 쓴 얼굴의 이면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하나, 동시에 이 수치는 적. 어. 도. '설문조사' 같은 공적 질문- 즉.. 사회적인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난 인종차별 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 는 의식은 미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공식 설문조사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난 외국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30%가 넘는다는 것을 보며, 동남아시아인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쳐다보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는 이도 없던 그날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뒤늦게라도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설명을 생각해 봤지만 사실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속상한 마음에, 한국인이 아닌 베이비시터나 내니를 쓰며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몇몇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도 할 겸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친구 A와 B모두 동네에 아이를 돌보는 데 있어서 가족이 아닌 내니나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는 가정이 적지 않고, 특히  '외국인' 베이비시터들이 그래도 꽤 많이 보이는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나 주민들이나 이에 대해서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저희와 똑같이 외국인 내니와 함께 지내고 있지만 아이나 아이와 함께 하는 가정들이나 특별히 마주하는 불편한 눈길은 없었다는 이야기도요.


반면 이 친구의 이야기에 비추어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살펴보니, 이곳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엄마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 아무래도 아이들이 엄마가 아닌 사람들과 다니는 경우를 쉽게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이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외국인들끼리'의 그룹일 뿐 한국인 아이와 다니는 모습은 보기 쉽지 않았죠.  일상 속에 마주하는 경우의 수만큼,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줄어든 것은 물론 그로 인한 이슈들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면이었습니다.


2023년 여름, 디즈니의 실사 영화 인어공주가 개봉했고 전례 없던 흑인 인어공주를 두고, 많은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기존 만화영화와 달리 인종을 바꾼 캐스팅에 대해서 말이 많기는 미국도, 영국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다른 지역과 다르게 압도적으로 흥행이 저조했던 한국, 중국, 일본으로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아예 OST를 부른 뉴진스의 다니엘 양 만을 메인 홍보영상으로 내세운 한국 디즈니의 마케팅 방식에 대한 말도 많았지요.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오른 한국을 두고 CNN을 포함한 각종 외신들은 나라별 영화의 흥행 결과와 함께 '왜 이런 반응인지'와 그 이면의 인종에 대한 각 국의 문화에 주목했습니다. 이런 기사를 두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인종 차별이 아니라 못생겨서 그런 것이다'

'아이들을 환상을 깬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반응 다 똑같다. 왜 한국에만 차별한다 이야기하느냐.'


일부의 댓글이 모두를 대신하지 않고, 좋은 평가를 내린 사람들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뉴스만을 주로 더 눈에 띄게 만드는 인터넷의 특성상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들이 더 눈에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퍼져나갔죠.

저는 댓글들의 이면에 자리 잡은 무의식에 가까운 편견의 말들과,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다며 또 보러 가자는 아이 사이의 이 어마어마한 간극의 이유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왜 재미있었는지, 어떤 이유로 또 보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대답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그냥 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인어공주가 부르는 노래가 신나!
바닷속에서 춤추는 달팽이도 웃기고!
물속에서 머리카락 흔들리는 것도 신기했어."

아이가 온전히 영화의 스토리와 화면을 따라가며 신나게 즐긴 비밀은, 아이의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아이의 생활 속에 존재하던 흑인, 백인, 스패니시, 티베트, 파키스탄, 인도와 같이 셀 수 없이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 그리고, 아이가 즐겨보던 콘텐츠 속의 캐릭터들이 가진 다양한 인종의 각기 다른 가정환경과 상황이 이미 아이의 마음속에 온전히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어떤 인종의 어떤 생김새인지 보다 스토리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더 집중할 부분이었던 것이지요. 주인공인 '공주'는 백인이어야만 하고, '예뻐야만 한다'라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저 영화 그 자체로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디즈니 주니어의 꼬마의사 맥스터핀스 - 흑인 꼬마아이가 의사라는 꿈을 꾸는 내용을 그린다. 전업주부인 아빠와 의사인 엄마가 등장하는 만화.

친구는 흑인이기도 백인 또는 인도계열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재미있게 가르쳐주던 제일 좋아하는 테니스 선생님은 흑인이었고, 반 친구의 아빠는 파키스탄계열의 사람이었습니다. 친한 친구는 인도계열의 아이였는데 그 친구를 살뜰하게 살핀 것은 흑인인 내니였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 매일 매체를 통해 수많은 인종들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보며 자란 아이가 '흑인 인어공주'를 아무런 이견 없이 받아들이고 즐긴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많이 보며 지낸 지역에서는 이들을 이방인으로 보는 날카로운 눈길이 존재하지 않았듯 말이죠.


비슷한 예로, 이민자들에 대한 통제의 중요성을 더 부각했던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의 찬반 투표 당시, 인구의 반 가까이가 이민자인 런던에서는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낮은 40% 정도를 기록했었다고 합니다. 리버풀이 48%, 버밍엄이 50% 이상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볼 때, 확실히 일상에서 이민자들을 더 많이 접하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좀 달랐던 것이죠. 자주 보고 알게 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적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 모든 고민은, 관찰은, 걱정의 이유는.

어느 부모나 그렇듯. 제가 이 아이의 삶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의 행복, 그리고 행복한 아이를 바라보며 또 행복하고 싶은 저와 남편이 그 이유겠죠.


행복에 다다르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제 아이를 바라보며 그리는 행복은 [이 아이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억지로 꾸역꾸역 접어서 맞추지 않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는 곳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일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타인과의 비교로 우열을 정하기 보다는 스스로에 집중하는 삶이어야 할 텐데.

이 미션.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들이 모여 살고 서로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이 싹튼다."
- 장 자크 루소 -

P.178 동굴 밖으로 나온 필로와 소피
/ 이진민 글, 김새별 그림, 지와 사랑 출판사


모여사는 사회에서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내 삶을 들여다보기가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이 모여 살면 각기 다른 신체와 능력의 차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자연적, 신체적 불평등도덕적, 정치적 불평등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루소는 말합니다. 서로 좀 달랐을 뿐인 요소들(차이)이 굉장히 주관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훈연한 브리치즈와 인스타그램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문화적인 것이다. 어쨌거나 1970년대 사람들은 활주로만큼 넓디넓은 카펫과 넥타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았는가.

오늘날에야 우리는 그것들이 끔찍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경치처럼 '자연스러운' 것조차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 때가 많다.

P.90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출판사

이런 예들은 수도 없지만...

그중에서 뇌리를 스치는 재미있는 사진을 하나 꺼내볼까 합니다.  


2006년 대한민국 영화대상의 참석자였던 배우들의 사진 중, 당시 패션지에서 워스트 드레서로 꼽혔던 사람은 류승범 배우였습니다. (아래 사진 상단 오른쪽) 한 두 매체가 아니라, 대부분의 매체가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발목이 보이는 류승범 배우의 짧은 바지를 두고 패션 테러리스트, 워스트 패션이라는 꼬리를 붙였습니다.

사진마다 붙어 있는 코멘트로, 당시 배우들의 패션에 대한 논평을 볼 수 있어요. 2006년 당시에는, 류승범 배우의 수트를 두고 두고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칭했네요.

그런데, 그런 그의 패션은 그로부터 거의 10여 년이 지나서 '알고 보니 베스트 드레서였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발목이 보이는 짧은 바지가 길거리 대부분의 패션이던 시기가 도래하기도 했었어요. 2024년인 지금 보아도 당시 참석한 배우들 중 가장 본인의 색을 드러내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복장의 소유자가 류승범 배우인 것을 보면.... 참 재미있죠?  


이렇게 그때는 모두가 아니라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맞는 경우도, 또 반대로 모두 멋지다 했지만 지나고 보니 '왜 그랬을까'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그 시대의 기준이란 모두 동시대를 살던 우리의 '주관적'인 평가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고 바로 그것이 지금의 기준과는 정말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 2006년에 센세이션 했던 류승범 씨는

이런 룩으로 현재를 지나고 계신다고 합니다.

출처: 좌 - 류승범 나무위키, 우- 스노우피크 홈페이지

지금 거리의 수많은 남성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또 한 번 눈에 띄는 장발과 수염, 태닝 된 피부. 그런 그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되려 한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매출이 급성장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그를 모델로 기용한 뒤 심지어 매출은 더 많이 늘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지난 시간을 통해 다들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늦었고, 그가 빨랐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 안에서 '이상하다' '낯설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대상과 그들을 향한 이 사회의 말들이 먼 언젠가 다시 되돌아볼 때 매우 민망하고 후회할만한, 되돌아보면 이불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철 지난 스타일의 옷 같은 말들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의 한국에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힘든 삶을 이어나가는 소수자들을 향한 많은 말들이,  시간이 지나 '어쩜 그때는 그랬을까.' 하고 돌아보게 될 일이 많을 것 같거든요.  







[참고자료]

**1. 김승섭 교수님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동아시아 출판사

[ 1/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 P.49.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에서 소개된 사례와 연구들

***참고도서 2.

동굴 밖으로 나온 필로와 소피 : 이진민 글, 김새별 그림 / 지와 사랑 출판사

8장, 숲 속 마을에 생긴 일 : 장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의 철학을 토대로 한 차이와 차별, 비교로 인한 인간의 불행 등은 이진민 작가님의 글 속 해설을 빌려왔습니다.


[인어공주 실사영화의 한국, 중국 내 흥행 저조에 대한 기사들]

https://www.hotnewhiphop.com/686525-the-little-mermaid-china-south-korea-racism

https://edition.cnn.com/2023/06/06/media/little-mermaid-box-office-china-korea-intl-hnk/index.html

https://v.daum.net/v/zVu29WC2wj


미국 내 아시안 비율에 대한 통계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Asian_Americans#:~:text=The%202020%20United%20States%20Census%20reported%20approximately%2019.9%20million%20people,%25%20of%20the%20total%20pop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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