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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Jan 26. 2024

시간의 지평선을 건너

현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어떤 연유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지금 이 모습 뒤에는 어떤 삶이 있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등 각자가 가진 스토리들을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기왕이면 이 취미를 잘 살려 일을 하자 싶어서, 사람들의 취향을 관찰하고 그걸 토대로 일하는 브랜드 마케팅 쪽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었다.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각각의 취향과 니즈들을 모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묶어내는 일이 꽤 재미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얼굴과 행동들이 풀어놓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힌트를 주워 담으며 상상 주머니를 펼쳐보는 일. 그건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가능한 한 일이지만, 동시에 전혀 스토리를 알 수 없는 완전한 타인일 경우만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너무 잘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게 나의 상상이 관여할 부분은 많지 않았기에.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아주 오랜만의 귀국으로 긴 시간을 건너고서야 직접 마주하게 된 얼굴들 중에는,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 속에 존재했던 이야기들을 가늠해 보고 싶어지는 경우들이 자주 생겼다.


고작 몇 년인데.

그 사이 푸석하고 핏기 없는 얼굴과 어딘가 기운 없는 말투와 눈을 자꾸 피하는 시선으로 오롯이 삶의 무게를 전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린 시절의 유치함은 어디 가고 나이만큼 생긴 주름조차 훨씬 편안하고 멋스러워져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월은 이 사람만 비껴가나 싶을 정도로 정말 하나도 변치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장난치는 말투는 그대로인데, 혼자만 세월을 세 배속으로 마구 달려간 경우도.

각양각색의 달라지거나 달라지지 않은 얼굴들을 마주하며 그 이유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모두에게 같지만 다른. 시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질문해 보았다.


'나는 어떤 얼굴로 변화했을까?
좋은 쪽일까, 나쁜 쪽일까,
아니면... 그대로일까?'

궁금했지만 답을 얻을 곳은 딱히 없었다. 인생의 중반기에 진입하니, 크고 작은 인간관계의 경험을 토대로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주고받는 일들은 많이 사라졌으니까. 뉴욕에서 산 시간들이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마음과 자기 검열을 옅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이제 그럴 인생의 시기에 접어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놓는 것이 몸에 익어버려서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보이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기분 상해 보이거나 피곤해 보이거나 짜증 나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아무도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거나 움츠러들거나 소심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남의 이목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군중 속에 홀로 있는 듯한 모습이야말로 사람 구경의 대상이 되기에 이상적인 뉴요커들의 특성이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지음-

사실 이때부터가 본 게임인가 싶기도 한 것이…스무 살 무렵에야 친구가 얼굴빛이 좋지 않은데도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면 몸 생각하라 잔소리하겠지만, 마흔에 만난 친구가 똑같이 그러고 있을 때는 '못 고치겠거니'하고 입을 닫아버리게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나의 잘못도, 허물도, 성과도 오롯이 나의 책임이자 삶의

무게로 내 얼굴에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봤다.


같은 나라에 있을 때야, 자주 보기 때문에 변화를 감지할 수 없던 지인들이지만 수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만나니 명확히 도드라져 보이는 삶의 모습들이 신기했다. 그래서 이를 마주하며, 다음 단계로 아름답게 진화한 사람들을 더욱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젊음이 주는 생명력이라는 필터가 사라지고 나니 드러나는 찐 멋을 알아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찬스랄까. 그들이 지나왔을 시간을 가늠해 보는 일은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가지고 싶은 미래로  가꾸어 가는 비결을 찾는 일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앞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또는 시간은 붙들어두고 더 멋져지기만 하는 사람들.


지난 시간을 어떻게 채운 것일까?
어떤 일상들이 이들을 이런 아우라의 사람으로 변화시켰을까?


그리고, 그렇게 타인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는 사이,

또 하나의 시간의 차이가 우리를 건드리고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흘러간 시간.
그리고 두 문화 사이의 다른 시간.

지구의 경도를 따라 동쪽과 서쪽의 대륙을 오가는 데에는, 시차로 인한 피로가 덤으로 따라붙는다. 매 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행기를 한참 타고 내렸는데도 내가 떠나온 곳의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경험은 여전히 신기하다. '계속 비행기를 타고 거꾸로 돈다면 계속 같은 날짜에 머물 수 있을까?' 같은 단순한 질문을 던져보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면 내 몸이 기억하는 곳과 실제 존재하는 곳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모순으로 몸이 무겁다. 하지만, 자꾸 감기는 눈과 때를 모르고 고픈 배를 쥐어잡는 일은 정말 길어야 보름인데, 예상치 못한 시차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문화의 사이에 존재하는 시차'였다.


뉴욕에서 살다가 콜로라도 아스펜으로 이사 간 에디스를 만나러 갔던 여름. 태어나 자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니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에디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여기(아스펜)서 20년도 넘게 살다가, 다 커서 뉴욕에 가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돌아온 건데, 돌아와서 적응하는데 1년도 더 걸린 거 알아? 특히! 애들 학원 등록하는 건, 정말 반년은 허탕이 예사였다니까."

등록하려 보면 이미 마감이거나,  당연히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 곳에서는 그 시기에 아예 문을 닫거나 하는 여러 시행착오가 4계절이 바뀌는 수도 없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아하기도 신기하기도 했었다. '태어나 자란 곳인데? 뉴욕보다 산 기간이 더 긴 곳인데 그럴 수도 있구나. '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에디스 말이 이 말이었군... 아흑. 이 말이었어....!! '를 수도 없이 되뇌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귀국 후 다니게 된 아이 학교의 행사는, 대략적인 일정은 한 달 전에 공지가 되지만 구체적인 행사의 시간은 1주일 전에 공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부모의 참석이 필요한 이벤트의 경우에도 1-2주 전까지도 참석시간이 정확히 공지가 안 되는 경우가 잦았다. 반면 이와 반대로 회사의 일정은 모두 2-3주 전에는 확정이 되고 출장이나 큰 미팅의 경우 길게는 두 달 이후의 일정까지 대략 공지가 되었다. 아이의 학교와, 나의 사회생활에서 공지되는 일정에는 큰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부모들의 사회'와 그 부모들이 돌보아야 하는 '아이들의 사회' 사이에 시차가 있었던 것.

보통 1년 치 학사일정, 행사 일정 등이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부모 참석이 필요한 내용의 경우 일시까지 포함하여 3-4개월 전에 사전 공지가 되던 미국의 학교였던지라, 자연스럽게 이 일정을 먼저 염두하고 회사의 미팅이나 업무 관련 일정들을 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다니기 시작한 학교의 경우 훨씬 임박해서야 부모 참석이 필요한 학교 행사 관련 상세 내용이 공유되어 버리니... 이미 부모들이 일이나 개인적으로 필요한 '사회적인 약속'을 모두 정하고 난 뒤의 조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이와 부모가 각각 속한 사회 사이에 시차가 없는 문화 속에서는 많은 엄마+아빠들이(특히 아빠들) 아이의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학교보다 더 앞서 일정을 정하는 문화에서는 아이의 학교 이벤트는 [양해를 구하고 미팅 일정을 조정하고 급히 휴가를 내야 하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일(또는 회사)'과 '아이' 중에서 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순간들이 자꾸 도래했고, 남편과 캐치볼 하듯 이리저리 학교 행사 속 부모의 자리를 남편과 번갈아가며 메꾸는 아슬아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결국. 한 번의 삐끗함으로 엄마 아빠 없는 콘서트장에 서있게 된 아이가 울며 무대에 서있는 것을 본 날, 나도 울고 아이도 울었다.


반면, 특이하게도 학원들의 일정은 그 어떤 일정보다 빨리 확정되고 공지되었다. 귀국을 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잘 가르친다는 학원에 등록을 해보려 전화를 걸었지만, 입학이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배치고사'는 이미 6개월 전에 시험 일정 고지와 함께 마감이라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도 등록이 가능할지는 또 기다려 보아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디까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달력에 다음번 시험 등록일을 체크해 두고 기다리다 컴퓨터 앞에 앉아보았지만, 분명 컴퓨터 시계를 보고 접속했는데 이미 마감이라 떠있는 화면 앞에서 망연자실하며 분, 초 단위의 전쟁에 패배하기를 몇 차례. 결국 이미 이 지난한 전쟁에 익숙한 부모님들의 엄청난 수강신청 스킬에 완패했다.

그때, 우스갯소리로 마우스 누르는 속도와 기술로 전쟁을 한다면 한국이 최강대국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지 않아 이를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시계를 곁에 두고 예행연습까지 불사하며 두 딸을 학원에 성공리에 등록한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예약이 쉽지 않아 현지인들도 못 갈 확률이 더 높다고 한 공원의 예약을 단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막연히 최강이라 생각한 K-엄마의 기술이 월드 와이드 페이머스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K-엄마가 되어 기술을 손에 넣고 싶었지만, 아뿔싸. 늦어도 이미 많이 늦어버린 것을…


인기 학원의 등록 전쟁을 겪으며 이렇게 이렇게 준비가 철저한 일정이니, 미국과 비슷하게, 아직 겨울이 끝나기 전인 2-3월경에 여름방학을 대비한 프로그램들도 사전 공지되기 될 것이라 생각하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야외활동으로 체력을 기르는 시기인 여름은 커가는 아이들에게 너무 중요한 계절이니까. 그런데, 이건 또 반대로… 거의 여름방학이 임박한 5월 말이나 6월이 되어야 알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통, 여름 방학 프로그램을 일찍 등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 할인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이 1-2월에 시작되고, 정규 등록일정은 2-3월 중에 시작되는 뉴욕에 비해서 한참 늦은 공지와 등록 안내를 보며 한층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5월이 되어서야 여름 방학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공지하는 곳들도 적지 않았던 것도 의아했던 부분 중 하나. 아이들의 방학은 이미 벌써 이전부터 정해져 있는데, 왜 방학 동안 보육을 담당해 줄 수 있는 기관들의 공지는 늦는 걸까? 일하는 부모로 보육 공백이 생길 아이들의 방학을 고민하는 시선으로 상황을 보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어떤 것을 먼저 정하느냐.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를 보여주는 것이었을까??

가족의 참여가 필요한 학교의 일정보다 앞서 더 먼저 정해지는 회사와 일에 관한 미팅일정. 그 회사의 일정보다 더 빠른 유명 학원의 배치고사 일정들은 그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나와 우리 가정을 기준으로 중요도를 보자니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고, 반대로 사회의 우선순위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원치 않는 삶의 나날들이 늘어갔다. 평생 자라온 곳인데, 새로운 삶의 단계를 매 년 밟아가는 아이와 돌아오니 또 새로운 사회로 이사 온 것 같은 느낌. 익숙하지만 낯선, 알고 있지만 생경한 곳에서 고민하며 이 즈음, 에디스에게 메일을 썼었다.


'네 말이 맞았어. 나도 돌아와서 한참을 새로운 생활 속의 시간들에 적응하느라 고생한 것 있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뉴욕에 계속 살았어도... 이러지 않았을까? 물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정보는 좀 더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너도, 나도. 각각 돌아간 장소에서 한 해만큼 자란 여덟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사는 건 또 처음이니까. 그러니 이 좌충우돌도, 좌절도. 우리만 느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




귀국 후 한동안 어딘가 5분 즈음 늦게 가는 것 같던 우리의 시계는 한국 사회의 시계와 서서히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고, 각자 회사와 학교로 흩어져 사는 생활이 자리를 잡은 그즈음.

갑자기 시간이 달려 나갔다.

한 주의 마감이 빨라졌고,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주변의 모두가 빨리 달려가니 함께 달려야 할 것 같았다. 빠른 속도는 전염병 같아서, 한번 빨라지면 걷잡을 수 없이 모두가 그 기준을 따라 더 달려 나가고 곧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버린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재니스 켈리가 이렇게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더 자극해서 삶의 속도가 점점 더 빠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일컬어 "휩쓸림 효과"라고 했다는데,  빨리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빨리 수학을 다져두지 않으면, 빨리 노후를 준비해 두지 않으면... 같은 이야기들 속에 나도 휩쓸려갔다.

게다가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했던가. 똑같은 1년이 5살에는 1/5처럼 느껴지고, 20살에는 1/20처럼, 그리고 40살에는 1/40처럼 느껴진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억의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이라는데 귀국과 동시에 내 머릿속의 저장장치는 더 느슨해지고 약해진 것일까, 그래서 매일매일이 아니라, 한 주, 한 달 간격으로만 드문드문 기억에 남는 일들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어갈수록 도파민의 분비는 감소하게 되고 신경회로에 닿는 자극은 옅어지고 기억도 약해진다는 말을 실감하면서도 의아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만난 고교 시절 친구들과 모여 그 시절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던 주말을 지나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같은 학창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이 회상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며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을 듣는 와중에 잠시 순간 멍해졌다.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충격적일 정도로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정말 학교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며 다니기는 했지만, 발레를 가르치시며 인생의 한을 논하던 무용선생님이며 공작새 같은 치마를 입으셨다는 화학선생님, 친구들이 웃음보따리와 함께 꺼낸 그분들 중 그 누구도 기억이 나지 않는지…..(내 머릿속의 지우개..)

어쩜 이렇게 기억이 안 날까 자책하며 그 시절의 기억 주머니를 휘적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 들어선 순간, 그 이유를 깨달았다.


고2부터 목하 열애 중이던 나와 구남자 친구(현 남편)는, 공부를 제외하고는 온 관심이 서로였어서 학교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학교 생활보다는 남자친구와 만든 추억이 고교시절 추억의 9할이었다. 함께 학원을 다니고 시험공부하던 날들, 야간 자습을 땡땡이치고 벚꽃을 보러 간 날,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를 먹으며 독서실로 걸어가던 길, 시험이 끝나면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약속하던 날들… 등등등을 기억하느라 기억의 용량을 다 써버렸던 것.


이렇게 추억이란, 기억이란.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저장해 둘 이유가 있는' 것들만 남겨둔다는 것을 알게 된 날, 가장 풍성하고 알록달록하게 남아 있는 과거를 돌아보았다.


삶이라는 나만의 긴 테이프 속에서 가장 선명하고 예쁜 색상을 가진 곳은, 오랜 연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날과 엄마가 된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후, 일과 가정 사이에서 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과로로 건강이 많이 상했던 시기는 아팠던 것을 빼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 기억력이라고 괜찮을 리가 없었던 것일까. ) 그렇게 약간은 아무런 색도 없이 남은 시기를 지나 어느 날 눈떠보니 뉴욕이었는데, 내 곁에 아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다시 나의 테이프들은 무지개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익숙한 환경을 떠나간 곳에 엄마로 사는 삶은 '과거'에 대해서 회상하거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기보단  [눈앞의 현재]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는 미션이 가장 중요했다. 새로운 집, 학교,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네를 유심히 집중하며 관찰하며 그 사회 안에 녹아들기 위해 애쓰며 수 없는 질문들을 던졌고, 수많은 을 찾으려 했다. 때로는 찾기도 하고 못 찾기도 하면서 나만의 Q&A 들이 늘어갔다. 그 관심은 단순히 길에서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사람들의 옷차림인 날도, 지역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 간의 대화방식이기도 했다.


How are you가 끝이 아니라 옷에 대한 칭찬을 하네? 음. 좀 더 small talk를 더해봐야겠어. 도전.
이런 스타일의 옷이 요즘 많이 보이네. 잡지에서 많이 보던 스타일은 아닌데... 이 동네에서는 유난히 더 눈에 띄는데. 여기서만 더 선호되는 스타일인가?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자.
비가 오는데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구나. 대신 우비를 입는 분위기네. 우비라... 왜 우산을 안 쓰는 거지? 아.. 두 손 가득 뭘 들고 가거나, 유모차나 아이 손을 잡는 경우가 더 많네.
저 건물, 지난번에 지나친 건물이랑 이음새가 비슷한데. 같은 건축가인가? 유명한 건축가일 수도 있으니 검색해 보자.  


길을 지나며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서로 다른 풍경들 속에서 관찰에 관찰을 이어가다 보면 멍하니 걸을 새란 없었다. 아이가 이국의 언어를 봇물 터지듯 쏟아내기까지의 시간만큼, 나 역시 새로운 문화를 몸에 익혀 녹아드는 시간이 필요했고 모국과의 비교가 더해지니 눈앞의 현실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 만이 그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어서였을까.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보며 이런저런 나만의 질문들을 더해보는 것이 좋아 마케터의 길을 택했던 그때처럼, 수많은 질문과 관찰이 이어지는 날들이었다.

유모차들이 한국에서 보는 것보다 바퀴가 크고, 높이가 좀 더 있는 편이네?
도로의 턱은 비슷한 높이인데, 왜지?
배달이 서울보다는 더 늦는 편이니 양육자가 아이를 데리고 직접 장을 보는 빈도수가 더 높아서인가?

그 분주함은 일기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그리고 이곳 브런치에 쓴 글들로 남았다. 치열한 '현재'가 미래에 회상할 거리가 많은 '과거'로 남았다. 


그런데, 그 기록과 현재에 대한 집중이 줄어드는 시기가 다시 도래했었다.

첫 번째는, 뉴욕에서의 매일이 평범한 '일상으로 변화한 시점'이었고.

두 번째는, 귀국 후 집도 일도 자리를 잡고 정해진 루틴으로 모두의 하루가 굴러가는 '일상'이 된 시점이었다.


日常 일상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어떤 새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되기 마련이지만, 일상에 무디어지니 현재에 던지는 질문의 양은 줄어들었고, 그만큼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배회하는 일이 잦아진다.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작가 패트릭은 사랑하던 형의 죽음 이후, 누구나 알아주는 번듯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들 속으로 경비원이라는 유니폼을 입은 채 침잠한다. 그리고 경비원이라는 예정에 없던 삶 속에서 수많은 눈앞의 현재들-작품들과 미술관 안의 사람들-에 집중하며 끊임없이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예술을 통해 내면을 치유하며 나아간 그였지만, 이 '새로웠던' 경비로서의 삶이 일상이 되는 순간은 역시나 도래했다. 그렇게 미술관 안의 작품이 아닌 미술관 밖의 아버지로의 삶의 현실을 새로이 바라보는 시점에 그에게 미술관은 이제 떠나야 할 곳이 되었다.


나에게 덧없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 시기 역시, 패트릭이 그랬듯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생각은 과거와 미래 사이 어디에선가 길을 잃고, 매일의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현재에 머물지 못한 때였다.


미국의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일상에서 현재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일컬어 'FLOW(플로)'라고 명명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즐기는 순간을 의미하는 플로는, 적당히 난도가 있되 너무 부담스럽지 않고, 대상이 되는 무언가에 관련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발현된다. 즉,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주도권을 쥔 내용에 대해서만 발현된다고 하는데, 이런 플로 상태에서 사람의 주의력은 저절로 '현재'에 머문다.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국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하던 그 시기의 나는 플로로 매우 충만한 매일을 보냈다는 것을 후에야 깨달았다. 현재에 집중하려 하니 플로 상태에 닿았던 것인지, 아니면 플로였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덕분에 풍성한 추억이 한가득 남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길가의 우체통의 색상이, 저녁이면 창 밖에 지던 노을이, 운동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가로수로 심어져 있던 꽃의 색상들이 지금도 어제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고, 막 새로 이사 온 집에 미국에서 부친 짐도 오지 않아 덩그러니 셋이 앉아 사은품으로 받은 밥그릇에 짜장면을 나누어 먹던 날이 그 이후의 수많은 외식보다 더 자주 생각나는 이유도, 그날의 그 시간의 우리를, 그때의 현실에 집중하며 열심히 눈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_패트릭 브릴리 지음 p.152 / 웅진 지식하우스 출판


그래서 더더욱 아무 무늬 없는 흐릿한 삶의 구간은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졌다. 기억나지 않는 고등학교 시절 화학선생님의 이름처럼, 훗날 돌아보았을 때 남지 않을 일들에 쓸 에너지를 아끼고 더 중요한 일들에 쓰기에도 내 시간들이 부족하기에. 이미 지난 과거에 '했어야 할' 일들에 보낼 아쉬움보다는 지금 흘러가고 있는 현재를 본다.


그러자, 미친 듯이 빠르게 흐르던 시계가

다시 제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매 분 매 초를 나의 의지로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알록달록하고 풍성한 긴 추억의 회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보들보들 하얗고 보드라운 털로 내 곁에 앉아 가만히 날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하굣길에 오늘 누구랑 뭘 하고 놀았는지 이야기하는 종알거리는 아이를 눈에 꾹 눌러 담는다. 일상이지만 일상이 아닌 특별한 하루로 만드는 것은 나, 그렇게 시간을 잡는 것도 나였다. 미래의 우리에 대한 걱정도,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접어두고 눈앞의 지금의 이곳에 나를 둔다.









참고 자료

https://youtu.be/aIx2N-viNwY?si=amjVZ9XM7l2rwjyx



* 시간의 놀라운 발견 - 시간의 미스터리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사용설명서

: 슈테판 클라인 지음 , 유영미 옮김 / 출판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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