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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Feb 02. 2024

모두 함께 [끼리끼리]가 걱정이랍니다.

어미새의 고민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제 생일은 3월입니다. 


박병금 시인도 참나무 삭정이, 매화꽃, 산수유꽃, 연분홍 진달래, 하얀 조팝나무 꽃이 사방에서 새 생명을 움트느라 산도 수다스럽다고 한, 그 3월입니다. 꽃도 피느라 바쁜 시기니, 봄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제 행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3월, 그것도 3월 초의 생일은 꼭 [봄방학의 끝] 또는 [개학날]이거나, [입학식] 날이 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3월의 제 생일이 참 싫었어요. 한 해 동안 가까워진 친구들이 모두 다 흩어지고 난 뒤에 맞이해야 하다 보니… 작은 생일 파티를 하기도 쉽지 않았거든요. 방학중에는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흩어져서 모으기가 쉽지 않고, 그게 아니면 입학식이나 개학식이다 새로운 시작으로 다들 들떠버려서 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봄방학에 딱 끼어버린 생일에 엄마가 파티를 열고 초대장을 만들어 주셨지만,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은 방학이라 다들 이리저리 놀러 가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초대장을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데리고 나타난 저를 보며 엄마가 엄청 황당해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 생일은 꼭 학기 중에 친구들이 많이 생긴 다음이면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각별히! 꼭 3월은 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아뿔싸.

아이가 생기고 보니...

저를 꼭 닮은 아이의 생일도 3월이 되었습니다.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역시 안 해본 일은 말을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아이는 3월이 학기 시작이 아닌 9월이 학기의 시작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3월은 정든 친구들과는 이별하고 새 친구들과 아직 어색한 시기였지만, 아이에게 3월은 반년을 같이 보내며 충분히 친해진 친구들이 많은 그런 시기가 되었죠. 이 또한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하나의 작은 행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행운과 함께 “집에서 엄마가 차린 음식들”로 하는 귀여운 형태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 고민의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4세에 다니던 Pre-K(유치부 과정) 기관의 경우 사립으로 교장님 자체가 워낙 Inclusivity(포용성)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늘, 아이 생일날 학교에서 하는 생일 파티 외에 외부에서 주말에 따로 여는 파티라고 해도 "반드시 전체 반 친구들을 다 초대할 것"을 강조하셨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Make over princess party(공주 드레스 입고 모여서 하는 티파티)나 남자아이들의 Ninja party (가라데, 태권도 등을 배우는 파티)와 같이 성별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파티라면 자연스럽게 그 숫자가 반이 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전체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하는 것이 국룰이었습니다. 덕분에, 아직 누가 같은 반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입학 이틀 만에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고 반 친구는 물론 친구의 기족들과 함께 외로움이란 느낄 새가 없는 생활이 이어졌었습니다.

이 날은, '축구' 테마의 친구 생일 파티였는데, 남자아이 여자아이 가릴 것 없이 참석률 100% 였던 날이네요.

이렇다 보니, 파티 인원을 고려할 때 [반 친구 모두+ 친구들의 엄마, 아빠+ 친구들의 형제, 남매, 자매들]까지 포함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적어도 50명 이상의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파티가 되는 것이죠. 빅 파티의 호스트가 되어야 해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스무 명 가까운 반 친구들이 각자의 생일에 모두가 모두를 초대하다 보니, 거의 매주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통해 반 친구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아이의 학교 커뮤니티는 부모인 우리에게도 또 하나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국의 엄마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빠짐없이 모든 활동에 초대되고 환영받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국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낯선 우리를 끊임없이 품어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후, 사립을 떠나 공립학교의 킨더 과정에 입학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감싸고 있던 작고 포근한 버블을 벗어나 나가야 하는 것 같아 약간의 걱정도 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교장 선생님의 요청이 저희가 다니던 학교에 국한된 것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새로 입학한 킨더(Kinder: 유치부) 과정의 담임 선생님 역시 아이들과 부모를 위한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Inclusivity(포용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며 생일 파티와 같은 학교 외의 이벤트에 있어서도 같은 반의 모든 친구들이 함께 초대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의 이야기를 남기셨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당부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는 뉴욕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두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었죠.


덕분에 이런 학교 분위기를 반영하듯,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지속적으로 성별의 차이도 크게 없이 어울렸습니다. 반마다 1-2명씩 있는 학부모 대표들도 소규모의 사모임보다는 전체 반의 학부모들의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파티나 모임을 적어도 2-3개월마다 한번씩 주선하고는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그중에는 표면적으로만 '그런 척' 하는 사람들도 문명 있었지만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어울리려 노력한다.'라는 부분을 적어도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노력했던 부분이 존재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또 궁금해졌어요.

뉴욕의 다른 학교들은 어떤가?

마침 같은 아파트에, 유치부~12학년에 이르기까지 1년 학비만 거의 1억(정확히는 65,850불)에 가까운 뉴욕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사립학교 애비뉴(Avenue)에 두 남매를 보내고 있는 요리코상이 있어서 이렇게 학비가 엄청난 고등 사립학교들의 경우 이런 측면으로는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애비뉴 역시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던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들이 빠짐없이 학교 내외 활동에 포함되도록 학교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추가로 교과적인 과정 외에 아이들의 학교에서의 '행동'만 모니터링을 하는 선생님이 따로 있어서 복도나 운동장에서 쉬는 시간 등에 발생할 수 있는 왕따나 외톨이 문제를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니터 요원에 의해서 문제가 되는 발언( 다른 학생의 외모에 대한 지적, 인종 차별적인 발언, 특정 학생을 괴롭히는 행위,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 등)을 수차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확인될 경우 퇴학조치까지 되기도 하는 가장 강한 처벌 대상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마침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시기 즈음에 당시 8학년이던 이 분의 딸아이 반 친구 중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학교에서 사라졌었는데, 다들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 모두가 보는 곳에서 있었던 한 사건이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한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타고나기를 붉은색 머리칼을 가진 다른 친구의 머리를 만지며 "넌 이런 머리색이 좋아?"라고 비아냥 거리는 모습을 지나가던 모니터 요원이 보고 그 즉시 교장실로 불려 갔었다는 거죠.


그래서, 2학년 꼬마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한국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아이가 귀국하며 다니게 된 학교는 외국인 학교였지만, 어떤 인터내셔널 스쿨이라 해도 해당 국가의 문화가 지배적으로 반영되는 면은 당연하니까요.


아직 어린 나이인데 한국에서 아이들의 친구관계는 어떻게 형성이 될까..?

아이들의 놀이 그룹에 대해서 뭔가 학교의 공통 가이드 같은 것이 있으려나??

전반적으로 상식처럼 깔려있는 문화가 있으려나?


그런데, 귀국 후 지켜본 결과 아이의 학교 생활 중 가장 크게 확인할 수 있던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놀이그룹이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여자아이들 사이에 이런 차이가 가장 크게 보였어요.


한국의 아이들의 놀이형태는, 이미 형성이 되어 있는 견고한 소규모의 플레이 그룹이 있고, 그 안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가고 나가기란 쉬워 보이지 않는 구조라고 해야 할까요.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었지만, 학교에서 가끔 행사날이면 올려주시는 이미지로도 가늠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ㅁㅁday(파자마 데이, 북 캐릭터 데이 등)라는 이벤트를 하는 날이면 각자 다른 스타일이 아니라 똑같은 색의 옷이나 아이템을 쌍둥이처럼 입는 아이들이 각 학년마다 2-3그룹 정도가 보였습니다. 저학년일수록 이런 이벤트에는 부모들-특히 엄마들-의 참여와 도움이 필요하니 친한 아이들끼리는 미리 부모님들끼리 사전에 소통을 해서 옷이나 소품을 맞추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포인트였습니다. 이벤트의 형식으로만 치자면, 똑같은 행사가 미국 학교에서도 있었는데 이렇게 [a와 b는 매우 가까운 친구입니다.]를 외형적으로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어서 매우 신기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너와 나는 같은 편, 난 널 아끼지.] [너는 나와 베스트프렌드, 우린 함께야.]

의 다른 면에 있는 이야기는

[넌 나와 친구가 아니야] [넌 우리 그룹이 아니야]

이기도 하기에... 몇 장의 사진으로 판단하기는 성급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전학생인 우리 아이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예상처럼... 새로 들어간 반에서 부단히 들어갈 그룹을 찾으며 아이 또한 좌충우돌을 거듭했지요. 롤 플레이 같은 놀이 형태를 좋아해서 늘 파트너가 필요한 여자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 그룹에 들고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는 여정이 훨씬 길고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기에 지켜보며 과연 이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제 눈에만 보이는 차이일까 궁금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모두의 경험이 같을 수 없고, 지나온 길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후에 해외에서 귀국하며 새롭게 전학 온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시는 것을 보며 이것이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느끼고 보는 특징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어요. 특히 아시아 권에서 귀국을 한 경우 (또는 한인 커뮤니티가 큰 지역)보다는, 미주권이나 유럽에서 귀국을 한 경우 이런 차이를 느끼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인스타그램에서 @fourthirty_pm 님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 후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딸과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학교와 미국 학교의 차이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되었는데요, 실제 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입장에서 미국학교와 한국 학교의 차이 중, 첫 번째로 언급 한 내용이  "한국은 여러 소규모로 아이들이 고정 그룹을 지어 노는 반면 미국은 반의 모든 아이들이 같이 논다. 미국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논다."라는 것이었어요. 신기하죠?


한국 문화의 어떤 면이 이렇게 아이들의 놀이 방식의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늘 아이들을 어른의 거울이라 하는 이유는, 가치판단이 서기 전부터 어른들의 행동과 문화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또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사고방식의 기저가 아이들의 놀이 문화, 그룹 문화를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그러던 중 읽은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한국어판 제목 : 위어드)에서 나온 “탑승자의 딜레마”라는 실험과 그 결과를 보며 이 부분이 어쩌면 이 이슈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싶었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탑승자의 딜레마 실험]

친한 친구가 운전하고 가다가
보행자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친구는, 도시 내 주행 속도 20 mph라는 규정을 위반하는 최소 35 mph이상의 속도로 주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 말고 증인은 없는 상황. 친구의 변호사는 당신이 만약 법정에서 친구가 20 mph이하로 달렸다고 증언한다면 심각한 법적 처벌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상황일 때 아래의 2가지 보기 중, 자신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선택하는 실험이었는데요. 보기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a. 친구는 당신에게 친한 친구로서 20 mph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고 증언해 주기를 기대할만한 권리가 있다.
b. 친구는 당신에게 20 mph로 달렸다고 부정한 증언을 기대할만한 권리가 없거나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한 답변이 있으시죠?

자 그럼, 전 세계의 매니저들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내가 [어느 나라]에 조금 더 가까운지 한번 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나라별 답변은 매우 상이하게 달랐습니다.


캐나다/ 스위스/ 미국의 경우 90% 이상의 사람들이 b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자신에게 그런 부정한 증언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죠.

반대로 네팔, 베네수엘라, 그리고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를 돕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선서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할 것이라 말하며 a를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단적으로 친구와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충성도를 보여주는 면으로 책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더 당연하다 답변한 지역(한국)에서는 아래와 같은 부분에 있어서도 '친구'를 돕는 선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해요. 예를 들면 이런 행동들이지요.

친구에게 기업의 내부 정보를 제공하고,

친구의 의료 검사 결과를 왜곡하여 보험료를 낮추려는 의사를 표명하며,

친구의 레스토랑 식사 품질을 과장하여 출판된 리뷰에서 언급하는 것

자신의 바운더리에 있는 '친구나 가족'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충성심을 갖고 관계를 지속하며,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생기더라도... 친구와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맞다고 고려되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선택들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간주되게 됩니다. 실제 법적인 옳고 그름보다, 문화 내에서 더 '옳은 일이다'라고 통용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친구일지라도 법정에서 거짓을 증언하지는 않으며 친구 역시 거짓 증언을 기대하지 않으리라는 답변이 훨씬 우세한 나라들 (속칭 WEIRD: Western+ Educated+Industrialized+Rich+Democratic)에서는 가족과 친구를 객관적인 원칙과 자격, 실력 같은 기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를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문화를 배경으로 하느냐에 따라 가족과 친구에게 기대하는 감정적인, 실질적인 지지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볼 수 있는 이 실험과 결과, 특히 한국의 응답 결과를 보며 저는 사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근대화'& '서구화'된 나라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미 매우 근대화되었고, 특히 외형적으로 보자면... 세계 어떤 도시보다 진화해 있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외형적인 부분 못지않게 내적인 문화도 많이 서구화되어 이제는 보다 객관적인 지표를 중심에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나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의외다 싶은 결과를 읽고 신문과 뉴스, 그리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왜 이런 답이 나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 제가 읽던 신문에는 경찰 고위직과의 친분을 앞세워 승진할 수 있도록 돕는 중개인이 활개를 친다는 기사 옆에 음대 교수가 유착관계에 있는 음악학원에 실기시험 곡을 유출하였다는 기사가 나란히 실려 있었거든요. 이렇게 여전히 사적인 친분을 활용한 문제들이 여전히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왜 책에서 작가는 한국을 집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친구를 돕는 쪽'의 선택을 했다고 이야기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사적인 관계가 가지는 중요성이 큰 곳이라는 점도요.

(후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실험에 대답한 사람들이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레벨 또는 기업을 운영하는, 그러니까 기성세대라는 점은 왜 지금 한국이 극심한 세대갈등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 같기도 합니다. 2030 세대는 5060 세대와 비교하여 전반적으로 공정성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응답*하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자주 보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문제는.  아이들의 놀이와 그룹 형성에도 이런 면들이 녹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적인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부분이겠지만, 그에 기대는 마음의 크기가 한국이 훨씬 크고 그 영향력 역시 강할 것이 한국이지요. 그러니 이런 사회 안에서는 속해있는 그룹 내에서 동의, 지지를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감정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면 "또래문화"가 가지는 힘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한국인의 정"으로 통용되는 긍정적인 면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우려스러운 부분도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대형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의 복장을 바라보다, 마치 모두 같은 곳에서 사 입고 나온 것 같은 온통 검은색인 트레이닝 복에 흰 양말, 그리고 비슷한 브랜드의 슬리퍼들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이래 서였던 것 같습니다. 

길거리의 학생들을 찍기는 어려워서 인터넷에서 "한국 고등학생 패션"이라 검색하니.. 이런 이미지가 뜨네요 ㅎㅎ

놀이공원의 대기줄에서 만난 10대 청소년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는 말의 90% 이상이 비속어인 이유 중 하나가 "친구끼리 친근감 표시"라는 점 역시 고민을 깊게 하는 이유였지요. 


유소아기부터 강조되는 그룹 문화는 일견 '나 다움'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벽이 되기도 하는 동시에 '우리와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함과 배척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는 지역별로, 성별로, 연령별로, 아이가 있고 없고로 나뉘어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대를 향한 혐오의 말들이 매 년 더욱 증가하는 배경에는 이런 '끼리끼리'의 문화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텍스트마이닝 기법을 이용한 한국 사회의 혐오 양상 분석 : 자료 2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며 흘러간 질문들은 , '그럼, 부모인 나는 어떻게 아이의 세계를 넓혀주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닿았습니다. 아이가 보는 세계의 크기는, 부모인 저가 만드는 세계보다 크기 어려우니까 더 고민이 되기도 하지 말입니다. 


일단 저는 매일 아이에게 등굣길에 미션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았습니다. 어제까지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친구와 이야기해 보고, 하굣길에 알려달라고 말이죠. 아직 교우관계가 마냥 서툰 아이라, 함께 놀고 싶은 다른 친구들의 행동도 모방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적절히 제안하는데 어설프고, 익숙한 친구하고만 하루를 보내다 오는 날들도 대부분이거든요. 하지만 제가 매일 전하는 말들이 어디까지 닿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서부 터라도 쌓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잘 같이 놀지 않는 친구와 학교 밖의 만남도 가져보며 아이가 '친구'로 인식하는 친구들의 범위를 먼저 넓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다 보면 가능한 방법들이 더 생기지 않을까 믿어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말했듯 말이죠.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료 1. 청소년들의 비속어 사용 실태

https://www.kyci.or.kr/news/2012_02/sub06.htm

청소년 91.4% 매일 욕설 쓰고 73%가 초등학생 때 처음 사용

먼저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 실태를 살펴봅시다. 2011년 9월 국립국어원이 전국 14~19세 청소년 1,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욕설사용 실태’ 설문에 따르면, '하루에 얼마나 욕설을 자주 하는가'라는 물음에 '하루 10번 이상(22.1%)' '하루 3~9번 정도(30.4%)'라는 답변이 절반가량 차지했다. '하루 1~2번 정도'는 38.9%였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8.6%에 그쳤다. 즉 청소년의 10명 중 9명은 매일 욕을 사용하는 셈이다. 또한 욕설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응답자의 73%가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답해 욕설을 접하는 시기가 점차 어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왜 청소년들은 욕설을 사용할까. 학생들이 욕설을 하는 이유는 '멋있어 보이고 재미있다' '친구끼리 친근감 표시' '습관' '화나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욕설이 진짜 나쁜 의도를 담은 경우도 있지만 또래 간 친근감의 표시도 많다고 본다. 청소년기에는 또래집단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 욕을 하지 않으면 무시당하거나 그룹에 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욕설은 자신이 세다는 것을 알리는 도구일 수 있다.


자료 2. 텍스트마이닝 기법을 이용한 한국 사회의 혐오 양상 분석

* Analyzing the Phenomena of Hate in Korea by Text Mining Techniques

https://accesson.kr/kslis/assets/pdf/27572/journal-56-4-431.pdf


자료 3. 위어드 (원제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 조셉 헨리치

자료 4. 세대와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 : 공정성을 중심으로 - 성인지통계

https://gsis.kwdi.re.kr/gsis/upload/file/202209272_1137510000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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