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모삼천지교 Mar 20. 2019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기란.

내 아이의 독립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들.


Mohonk Mountain House로 휴가 아닌 휴가를 함께 떠나 Galit과 함께 한 하루. 아이들이 키즈 캠프에 가있는 시간 같이 커피 마시며 눈 덮인 설원을 내려다보고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었다.

   

같은 학교를 보내다가 교육 커리큘럼이 힘들기로 유명한 Jewish school로 작년부터 전학한 이 친구와 함께... [독립적인 아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산 전, 아이의 육아에 대한 여러 가지 다큐나 영상을 찾아보던.... 햇병아리도 아니고 알도 깨고 나오기 전의 마음만 앞선 [완벽 육아 워너비 예비맘] 시절. 그때, 유튜브에 떠돌던 "한국 유치원생의 아침"과 "영국 유치원생의 아침"을 비교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밥 먹기, 양말 신기 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서 문밖을 나서는 한국의 엄마들을 보며 “한국에서는 왜 저렇게 의존적이지?”하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왜냐면 같은 나이의 영국 아이는 혼자 일어나 이불 정리 후 밥도 알아서 잘 먹고, 옷도 알아서 잘 입고 모든 것을 혼자 해 나가고 있었으니. 그래서... 아이를 나도 저렇게 "외국식"으로 "독립적"으로 키울 것이라며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을 건너뛰어 그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게 된 지금 나의 아침은 저 두 나라 사이 어디즈음 있는 듯하다. 당연히, 한국에 있을 때 나의 아침은, 내가 먼저 준비하고 그다음 깨지 않은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걸려 나온다기보다는, 거의 칭얼거리는 아이를 들쳐 메거나 앞에서 끌다시피 해서 가는 등원 길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라 하지 않아도 아이가 일어나고, 차려둔 아침을 와서 먹고, 전날 골라 둔 옷을 입고 나간다.


아, 물론 매우 큰 대전제에 차이가 있다.

그때는 아이가 더 어렸고... 지금의 아이는 벌써 유아기를 지난 만 5세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고, 그때의 나는 일하는 엄마 였기에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지금의 나는 온전히 아이 양육에만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 그러니 이런 변화는 어쩌면 아이의 성장과 우리의 환경변화에 따라 당연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아이가 "독립적"으로 자라나는 것은... 부모가 기다려주기만 하면 자연스레 되는 부분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곳에서 주변 가정의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훈육하는 모습들을 보다 보면, 아직도 내가 생각하는 [독립적인 아이]의 개념은 좀 더 나아가야 하지 않나.. 싶을 때가 많다.                              

모습 1.

아침 등원 길에, 앞에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등에 몸통만 한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부모가 옆에 걸어가더라도, 대부분 아이들의 가방은 아이가 직접 메고 걷는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소지품들이나 준비물들도 대부분 아이들이 직접 들고 간다.


모습 2.

학교가 끝나고 하교하는 아이들의 소지품과 물건은 모두 아이들이 직접 챙긴다. 부모가 교실에 들어가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대부분 아이가 도와달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도움을 주고 챙겨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알려줄 뿐, 아이의 일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모습 3.

학교에 따라 약간씩은 분위기가 다를 수 있지만,

5세 이후부터 Kindergarten 과정으로 입학 가능한 사/공교육 시설에서는 대부분 아침에 부모와 운동장이나 교문에서 간단히 인사하고 바로 학교로 척척 걸어 들어간다. 학교 교실 안까지 부모가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즉, 만 5세부터 본인이 직접 선생의 지시사항을 이해하고, 점심시간에 알아서 밥을 챙겨 먹는 것과 같은 모든 일련의 활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된다고 보고 있는 셈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입학 후, 부모들이 하원길에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오는 아이들 (특히 남아) 중 반이 겉옷은 안 입고 나온다고 하는 그런 상황은 안 벌어지는 듯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보다 “엄격한” 교육 과정을 강조하는 사립학교나 Jewish school내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 데이트의 경우에도, 4세가 지나면 현관에서 인사하고 바로 부모와 헤어져서 들어가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습 4.

만 4세부터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drop off class에 참여할 수 있다. (Drop off class  -> 부모가 수업 시작 전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아이만 수업에 참여하는 형태). 동시에... 아이가 만 4세가 넘어서도 의존적일 경우.. 기본적으로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선 역시 존재하는 듯하다. 그래서, 분리가 어려운 아이들의 경우, 일부러라도 부모와의 분리되는 상황을 연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경우(베이비시터를 일부러 고용하던가, 2-3시간 정도의 짧은 캠프나 클래스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들을 일부러라도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분위기.

                                 

작년 한 해 , 해외에서 새로운 문화권으로 툭 뛰어들어와.... 그 불안함에 "엄마"만 24시간 찾아대던 만 4세가 넘었던 우리 딸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은.

'어서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없이도 알아서 척척 해 낼 수 있어야 할 텐데.'라는 마음과

'그래도... 다른 나라에 와서 얼마나 불안할까. 조금 더 유예기간을 두어야지' 하는 마음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갔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언어가 자유로워진 지금은, [조금 더 독립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순간순간 아이에게 녹아버려 우쭈쭈쭈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는 경우가 더 허다한 듯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 같은 한국 엄마들은 아이를 쉽게 떼어놓거나 독립적으로 키우기 더 어려워하는 걸까?

우선, 간단히 [등원/ 등교] 상황에서 보이는.... 환경적인 요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도.


1) 취침/기상시간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훨씬 늦은 아이들의 취침시간으로 비롯되는 늦은 기상 시간, 그리고 그로 인해 마찬가지로 촉박하게 준비할 시간에 시달리는 환경. 대부분의 학교 시작 시간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한데, 아이들의 평균적인 취침 시간은 한국이 훨씬 늦은 편이다.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늦는 것이 당연 (수면 시간을 확보한다면). 그럼 서둘러 준비해야 하고... 급한 부모는 아이에게 준비할 시간의 여지를 주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 주변의 시선

간혹 아이가 스스로 준비를 하고 나갈 때 보면, 옷 모양새나 머리 모양새가 내 눈에는 엉망일 때가 있다. 정성껏 빗질을 했다고 하지만 영... 아닌 모습. 하지만 적어도 본인이 열심히 시간을 들여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등교하도록 놔둔다.  어쩌면 이럴 수 있는 것은 [남이사 뭘 했건 신경 안 쓰는]이 곳의 문화도 도움 아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내가 아이를 반 산발머리처럼 해서 데리고 나간다면 "저 집 애 엄마는 애 머리도 안 빗기고 나오네"라는 소리를 먼저 듣는 것과 다르달까. 주변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쓸 이유도, 그러는 사람도 없는 사회 문화기 때문에, 아이들이 커 나가는 과정에서 어른의 눈에는 서툴고 어설프더라도 그냥 내 둘 수 있고... 동시에 그에 대해서 부모가 주변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역시 ZERO.


3) '빨리빨리'가 없는 세상.

다른 미국 내의 지역에 비해서... 맨해튼은 너무 모든 것이 빨라 삶의 속도에 질려버린다는 이야기를 한다. (By 미국인들. 특히 서부에서 온 미국인들) 하지만, 이들의 빠른 속도라는 것은.... 한국에서 온 내 눈에는 '어디가 빠른데....?'라는 생각이 더 드는 것도 사실. 그래서 사는 데 불편한 것은 물론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대도시가 그러하니... 중소 도시나 다른 지역에서 사시는 분들은 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이런 여유 아닌 여유가, 아이를 키우는 데는 참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이 어른보다 느리고, 더디고, 빠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아이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는 환경인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큰 장점인지 느끼게 된다. 속도전이 필요한 성인들의 시장에서는, "빠른 한국"이 더 치고 나갈 수 있는 부분이 많을 수 있겠으나...."천천히 여러 가지를 둘러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시간의 여유]가 주는 강점은 어마어마하다.   **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한국의 엄마와 아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이 [시간 부자]로 살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주변의 상황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나의 아이에게 맞는 시간'을 찾는 다면 이 부분은 어쩌면 조금은 해결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아이와의 분리에 대한 부모의 심리.

어린아이들이 처음에 부모와 분리되면서 엄청난 불안과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다. 아침마다 적응하느라 각 유치원과 학교에서 울고불고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이 곳도 마찬가지니까. 베이비시터나 다른 사설기관에 단기간 아이를 맡기는 경우도 낯설어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어쩌면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 곳 미국 부모들 마음 밑바닥에 어딘가 이런 말이 숨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아이니까, 그게 좀 빠르다고 나쁘지 않아]

[아이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성인인 우리의 인생도 중요해. 아이를 사랑하고 같이 있어주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의 배우자와 갖는 우리만의 시간도 중요해]


그리고, 아이와의 분리를 '가슴 저리게 아파하는' 느낌은 아닌 듯 한... 다소 '쿨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느낌. 그리고, 이러한 '아이와의 분리에 대한 부모의 심리적 저항감'은 미국을 넘어 유럽권으로 가게 되면 더 낮아진다. 그리고 그 지표가 낮아질수록  "부모로서의 행복감"은 반비례하여 높아지는 듯하다.

이건 "부모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책에도 언급된 것처럼 한국과는 아예 다른 문화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전반적으로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 내에서 "독립적인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부모에게 또 다른 숙제를 하나 더 안겨주는 듯하다. 되지 않는 환경에서 될 수 없는 목표를 꿈꾸는 건, 그 담당자들에게는 버겁기만 할 뿐. 하지만, 동시에, 유아기부터 끝없는 [빨리빨리]를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남들 눈에 보기 좋게] 살기 위해서, 결혼 후에까지도 부모의 삶에 [포함] 된 채 살아가는 한국의 수많은 성인들을 보면서.... 분명 성장기의 어느 시점엔가 그 고리를 끊어내야만 하는 것은 확실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 사실.


그리고, 당장 나는

우리 가정 내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새싹을

어떻게 잘 훈련시켜서 양지에 잘 독립시킬지 먼저 고민해야겠다 싶어 졌던 한 낮이었다.


아, 물론... 잠시 후 키즈클럽에서

"아이가 계속 울면서 엄마를 찾네요"라는 소식에  쿨하지 못한 한국 엄마인 나는,

고민이 무색하게 발에 불이 나게 뛰어갔지만 말이다.








이전 09화 할로윈은 그 할로윈이 아니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