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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Mar 22. 2019

생명을 지키는. 사회 시스템

이 사회가 나를, 우리 가족을 지켜준다고 믿나요.

집에 가만히 앉아서 허드슨강이 흐르는 것을 보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잔잔하기만 한 강에서도 2009년 매우 큰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실화를 영화로 만든 "Sully"


새떼와의 충돌로 생긴 기체결함으로 인해 허드슨강 위로 비상 착륙한 비행기에서, 승객 전원이 아무 이상 없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돕고, 가장 마지막까지 비행기를 지켰던 기장 Mr. Sully에 대한 이 이야기를 다룬 영화. 

2009년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화하여 2016년 한국에서도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155명의 승객이 기장의 책임하에 안전히 살아났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탈출 후에도 끊임없이 그것이 가장 최선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사회 시스템과 기장 Sully가 본인의 선택을 계속 스스로 되돌아보는 상황을 통해, 미국의 "안전"에 대한 시스템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매일 그 강 위를 지난하게 오가는 수상 택시들과 경찰정들이 영화 속에도 계속 등장해서 더 실감 나게 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사실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세월호 사건이었다.


한국의 우리가 경험한 사건과 매우 다르게, 허드슨 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설리는 [기장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했고, 본인이 한 판단에 따라 비행기를 물 위에 착륙시킨 후에도 기내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치고 수 없이 기내를 오가며 훑어낸다. 비행기가 강 위에 착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이는 승무원들의 지휘에 따라 승객들은 기체 외로 빠져나와 구조를 기다리고... 허드슨 강을 오가던 수상택시와 경찰정들은 매우 신속히 다가와 승객 전원을 빠짐없이 구조해낸다. 


당시 미국 내에서 화제가 된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노련한 조종실력으로 비행기를 물 위에 안착시킨 설리의 대처였다.

하지만, 나에게 놀라운 것은. 

1. 승객을 지키는 '역할'을 그대로 해내는 기장의 모습.

   즉 자기가 할 일은 아주 담담히 해 내는 그 당.연.한. 모습.

2. 영웅으로만 치부될 수 있는 그에게 더 나은 선택은 있을 수 없었는지 묻는 사람들과,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지며 더 나은 솔루션이 있지는 않았는지 되짚는 사회. 

3. 그리고, 재빠르게 이루어지는 비상시 대처에 대한 이 나라의 시스템.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머릿속으로는.

이 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에서 언급된 세월호 당시의 사고 직후 해상의 풍경이 오버랩될 수밖에 없었다.


[이국종 '골든아워 2' / chapt. 기울어진 배 중.]

뒤집어진 배 주위를 선회하며 배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이상민이 갑자기 사고 해역 상공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사고 해역 상공은 해양경찰이 관할하고 있었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불안정한 무선에서는 영공에서 나가라는 지시만 계속 튀어나왔다.

..... 핏발 선 눈가로부터 김승룡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지금 각 정부 부처마다 정보 공유가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여객선 규모로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탓을 것 같은데 몇 명이 타고 있었는지, 몇 명이 구조됐는지 전혀 정보가 없습니다. 

....... 많은 헬리콥터가 '비행하지 않고' 착륙해 있었다. 앉아 있는 헬리콥터들이 마치 철새 도래지에 집결해 있는 철새들 같이 보였다. 

...... 사고 해역 근처에서는 한 대도 보이지 않던 기체들이 항구 옆 나대지에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도열한 헬리콥터들의 값을 합치면 수천억 원어치가 넘을 것이고, 그 수는 대한민국 소방항공대 전력의 절반에 가까웠다. 

.....


그렇게 2014년 봄에 우리는 수많은 예쁜 아이들을 물속에 묻어야 했다. 

그보다 앞선 어느 날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것과는 정 반대로.


바로 그 해에 아이를 낳아 백일도 안된 아이를 돌보며 뉴스를 보았던 나에게도 아직 그 날의 공기와 햇살과 뉴스를 보며 했던 대화가 선명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해가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 그 이유는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아이를 향한 사랑만큼, 십수 년을 다 키운 아이를 하루아침에 바닷속에서 잃어버리는 그 사고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 실감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내 아이가 커 나가고 있는 현재의 한국에서 사회 시스템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보게 될 때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해결이 불가능한 것인지, 또 그런 사고가 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어떻게든 고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이 곳 미국의 시스템에 더 관심을 두고, 더 들여다보는 중이다.


사실, 비단 세월호뿐이랴... 제천 사우나에서 난 화재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나고, 펜션으로 보낸 대학 새내기들이 사고로 죽고, 유치원에서 수련원에 간 아이들이 화재로 몰살된 씨랜드 수련원 화재 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사실 써 내려가는 지금도 이런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수를 확인하며 소름이 돋아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많은 사고 과정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방식(불법, 무허가 승인/ 지켜지지 않은 법규)"과 "대형 사고 시점에 전혀 작동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중앙통제시스템의 부재)"을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그리고 세월호를 방점으로 [내 생명이 위급할 때 누군가의 지시를 따랐을 때 살아날 수 있을까? 또 누구를 따라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 [내 아이에게 부모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주변의 어른의 말을 믿고 따른다면 괜찮을 거야]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안전히 자라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연 어떤 부모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나라가 될까. 1명 이하의 출산율이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단면은 단순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려워 보인다"의 이슈만은 아닐 것이다.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그 아이가 자라는 사회 안에서 온전히 "안전하다"는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그럼.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어떠할까.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주변의 '미국인'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해본다.


"너희는. 큰 사고나 테러가 났을 때 

경찰 등.. 공공기관의 지휘를 따른다면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그 모두의 답변은. 

"응. 당연하지. 그들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안전할 수 있어"


완전한 사회란 없다. 그건 책 속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이상향이고... 특히나 이렇게 다국적, 다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모든 면이 완벽한 사회는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적어도 그 완전하지 않은 사회를 온전히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합의한 사회적인 시스템(법/ 규율)을 지키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기본 전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살면서 접하게 되는 몇 가지 상황들로 모두가 지키고자 노력하는 그 대전제 내에서도, "아이"와 "약자"에 대해서는 [같은 사회인으로서 더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기본 합의가 있구나..라는 생각 역시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보게 되는 시스템 중 몇 가지는 바로 당장 한국으로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종종 울리는 "AMBER ALERT"라는 긴급 실종자 수색 고지 메시지가 있다. 

핸드폰으로 오는 앰버 어럴트 문자 내용. 아이의 인상착의와 이름 등을 긴급 고지한다

뉴욕시 홈페이지에 공지된 '앰버 어럴트'의 정의를 보자면 아래와 같다.  

The New York State AMBER Alert plan is activated when an investigating law enforcement agency has reasonable cause to believe that an abduction of a child (under the age of 18) has occurred and the child is believed to be in danger of serious bodily harm or death, either due to the actions of another or due to a proven mental or physical condition. 

즉, 만 18세 미만의 아동이 특정 정보를 통해 신체적인 위협에 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려된 경우(예-납치, 감금, 폭행)에 대해서 경찰이 메세지를 통해서 긴급 수색 관련 공지를 띄우는 방식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지진"이나 "미세먼지"등으로 문자를 받아본 적이 있다면, 그와 비슷한 형태로 아동의 실종이나 납치 등을 문자로 경보받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요즘은 한국도 지문등록을 통해 미아 등이 되었을 경우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안내받고 하긴 했지만... 실제 사고가 생겼을 경우 인상착의를 공유받아 많은 사람들이 수색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형태의 체계는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간혹 실종 관련 사고에 애가 타는 가족들이 페이스북에 띄우는 공지를 더 자주 보았던 듯하다. 


성인보다 체구가 작고 유약한 아이들의 경우, 납치가 아닌 단순 실종 사고라고 할 지라도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여지가 크기 때문에 시각을 다투어야 하는 케이스가 더 많아 이와 같은 시스템이 발달되었을 것이다. 

도로표지판에 표시된 아동 납치 차량 관련 고지

한국에서 2016년 올림픽 공원 내의 한 키즈카페에서 성인의 보호 없이 밖으로 나간 장애 아동이 실종되어 다들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익일 공원 내의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사고를 본 적 있었다. 만약, 이 아이의 인상착의를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전송하고 함께 유심히 살펴보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결과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이들 관련 사건 사고의 경우 응급 수술 못지않은 "골든아워"가 존재한다. 그러니, 이와 같은 체계는 그대로 모방해서 시행해도 좋지 않을까. 


물론, 도입하려면 이국종 교수님 말씀대로 [나사못 하나까지 그대로] 고스란히 들여와서! 


나는. 한국 사회가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개선이 가능한 방향이 있다면 이를 위해 또 나아갈 것이라 믿고 있다. 비록 그 걸음이 더디다고 하더라도... 부디 내 작은 아이가 언젠가 커서 우리나라를 이야기할 때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Amber Alert에 대해서 좀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로▼

https://amber.ny.gov/how-i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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