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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Oct 27. 2019

할로윈은 그 할로윈이 아니었구나

기기괴괴 분장하는 날이 아니라. 온 동네 축제의 날.

작년 가을.

학교가 시작하고.. 정신없이 첫 달이 가고 나니 학교에서 아이들이 매일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선생님의 공지가 날아왔다. 각자 가장 좋아하는 것을 정하고, 디자인을 하고 만들고 꾸미고 있단다. 이와 함께 흰색 무지 티셔츠와, 마음껏 무언가 붙여도 되는 털모자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코멘트도 함께.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할로윈 퍼레이드를 위한 각자의 의상을 만드는 중이란다.


4-5세의 아이들이지만 각자 좋아하는 것을 투표해서 반 전체 테마를 선정했고.... 그렇게 선정된 것이 "Popsicle(팝시클)"(팝시클은 딱 한국의 돼지바 같이 나무 막대기로 들고 먹는 형태의 아이스크림이나 파운드케이크를 의미한다). 아이들 다운 주제 선정도 재미있었지만,  복장할로윈을 직접 아이들이 만든다는 것과... 그것을 입고 퍼레이드를 한다는 부분에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image from Pixabay


'할로윈은 원래... 귀신 분장이나, 캐릭터 분장을 하는 것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도 잠시, 곧 선생님으로부터 [ 할로윈 데이 10월 31일 오전에 1시간 정도 핼러윈 퍼레이드를 할 예정이니, 가능하면 부모님들도 잠시 들려서 함께 해주세요]라는 메일을 받고 내가 알던 핼로윈과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할로윈 데이 당일.

아침에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각자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코스츔을 하나씩 꺼내서 입고 준비하는데.

Oh. My. God.

이 작은 아티스트들이 색칠하고 붙이고 꼬매고.. 거의 한 달을 준비한 복장을 입고 아이들은 걸어 다니는 팝시클이 되어 우릴 향해 웃고 있었다.

각자의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한 핼로윈 팝시클 복장

'아. 꼭 캐릭터 분장만이 핼러윈에 가능한 복장인 것이 아니구나. 아이들이 사랑하고, 상상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할로윈의 테마가 될 수 있구나!' 라며 감탄하며 이 작은 팝시클들의 손을 꼭 잡고, 그 후 학교 주변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만든 복장을 자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퍼레이드는, 단순히 아이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방문하는 로스쿨 건물, 장난감 가게, 미용실, 소방서.... 등등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담당자분들이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외치고 있었다.

Happy Halloween!! Welcome!!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사탕과 초콜릿, 작은 장난감, 풍선 등을 선물로 증정하는 것이 아닌가.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도 아니고... Happy Thanksgiving도 아니고.

해피 할로윈이라니?

모두가 무엇을 축하하는 것이지?

원래 이런 축제의 분위기인 건가...?


어안이 벙벙했다.


미용실의 사장님도, 장난감 가게의 직원도... 소방서의 소방관 아저씨들도 모두 모두 해피 핼러윈을 외치며 아이들을 환영하는 이런 분위기라니. 격하게 환영받는 분위기와 더불어 이런저런 달달한 음식과 선물을 가득 받은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는 기분으로 퍼레이드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꿀벌이 되신 로스쿨 학장님과 아이들에게 선물로 풍선을 나누어 주시던 장난감 가게 사장님


아.. 할로윈이 이런 행복한 날인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할로윈은...
사람들이 놀랄만한 기괴한 복장을 하고 홍대나 이태원에서 파티하는 날인데.

원래 이렇게 아이, 어른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고 따뜻한 느낌의 날이었던가??
퍼레이드 중 방문한 소방서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을 환영해주시는 소방관 아저씨들과 차에 타보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침의 즐거움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하교 후 오후 3시 반을 넘어서자 거리에 공주는 기본, 각종 히어로들과 공룡, 외계인, 마녀... 등 코스츔을 입은 아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오전의 퍼레이드가 각 학교나 기관별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진행되었다면... 모든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는, 이제 본격적인 온 마을 할로윈 파티의 시작이었던 것.

온 동네의 매장들이, 집들이 문을 열고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부모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베이커리, 의류 매장, 카드 매장, 슈퍼, 레스토랑 등 거의 대부분의 지역상권들이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이 방문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크를 준비하고 있는 곳도, 초콜릿을 준비한 곳도, 사탕과 컵케이크를 가득 준비하고 기다리는 곳들도. 아이들은 "HAPPY HALLOWEEN!"을 큰 소리로 외치며 작은 호박 바구니를 내밀고... 아이들을 기다리던 어른들은 기꺼이 그 바구니에 초콜릿과 사탕을 채워주었다.

소매 상점뿐 아니라, 고급 매장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입구에서 직원들이 사탕을 들고 아이들에게 인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저녁에는 아파트 내에서 Trick or Treating이 또 진행되었다. 아파트 측으로부터 사전에 미리 참여할지 아닌지에 따라 작은 표시를 집 앞에 해둘 수 있도록 안내받았었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부재중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 앞에 사탕 바구니를 비치해두거나 벨을 누르면 나와서 집 앞에 기다리고 있는 작은 아이들에게 달달한 음식을 건네주었다.


오전부터 퍼레이드에, 오후는 온 동네의 가게들을 돌고, 저녁에는 같은 빌딩의 집집을 돌아다니던 아이 뒤를 지키며 보낸 하루를 통해, 난 이 할로윈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10월 31일 핼로윈은.

기괴한 분장을 누가누가 잘하나 자랑하는 파티를 위한 날이 아니라.

개인주의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오늘만은.... 온 마을이 함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작은 주민인 아이들을 향해
'너희들을 환영한다, 너희들을 아낀다. 너희들을 사랑한다'라고 온 마을이 외치는 날이었던 것.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가게 주인에게도 환영받고,

같은 동네에 살지만 평소에는 얼굴 보기 어려웠던 이웃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웃으며

그 어느 날 보다 신이 났고, 즐거웠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부모인 우리 역시 신이 났다. 행복했고 감사했다.

평소에 오가던 거리는 축제의 장소가 되었고, 몰랐던 이웃과도 이날은 인사하고 웃고 떠드는 그런 날이었다.


바로 이런 동네 축제의 분위기가 할로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왜 한국에는 [분장]을 하고 즐기는 [파티]로서의 의미만 남았을까?


무엇이, 왜, 문제일까?


우선, 할로윈의 중요한 주체인 '아이들'과 '마을 공동의 축제'라는 개념은 쏙 빠져있는 것.

어른들만 입장 가능한 격렬한 파티는 논외로 하더라도, 아이들이 참여 가능한 할로윈 행사 역시 주로 영어 유치원이나 호텔, 리조트 등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진행하는 핼러윈 이벤트들 역시... [분장할 수 있는 날]의 의미가 전부인 상황.


이는, 일반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경로나 장소는 아닌 것은 물론, 대상 역시 한정된 멤버만을 대상으로 진행하기에... 완전한 타인과 인사하고 친구가 되어 웃음을 나누는 결과는 얻기 힘든 것이 사실. 그 결과 핼러윈은 또 하나의 '프리미엄 키즈 파티'를 위한 테마 그 이상 이하도 아닌 형태로 진화 중인 듯하다.


또한, 비틀어진 형태로 도입된 할로윈을 대체할만한 우리만의 적절한 놀이의 계기가 없다는 것.

이렇게 '할로윈'에 대한 관심과 파티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즐기고 싶어 하는'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한데, 지금의 한국에는 외국의 명절을 빌리지 않고서 그럴만한 계기나 환경이 충분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축제라면 축제인 한국의 구정/ 추석과 같은 명절은 어느새부터인가, 가족들이 다 모이고 옛 고향을 찾아가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큰 '스트레스'의 계기가 되었고.... 이런 명절의 휴일에 가급적 한국을 떠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현실. 그리고 그 명절에서조차,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즐거운 이벤트나 콘텐츠는 거의 전무하다. 물론.. 이는 대상을 넓혀 20-30대를 기준으로 이야기해보더라도 마찬가지.



어쩌면, 우리에게도 어떤 분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계기를 '핼러윈'과 '분장'이라는 것을 통해서 쏟아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파티를 즐기고 싶은 20-30대가 온 힘으로 끝나가는 가을에 신나게 놀만한 계기가..있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한국의 할로윈은 앞으로도 쭉 점점 더 그 문화가 확산되지 않을까 싶다. 가을의 끝에서 신나고 즐거운 추억을 위해서라도, 3/4분기까지 잘 버틴 스스로에게 신나는 주말을 선물하고 싶어서라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기고 싶은 이벤트로 퍼져나가리라 예상된다. 그래서, 더더욱 기왕지사 널리 퍼진다면... 그 본래의 의미와 대상과 방식도 같이 전해지길 바라게 된다. 아이들도 즐겁고 어른들도 즐거운 시간이 되고, 그 즐거움이 개개인에 머물지 않고 같은 아파트로, 동네로 퍼져나가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모두 모두에게 Happy Halloween이 되도록 말이다.


좀 더 궁극적으로는.

 

한국만의 소중한 문화를 살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을에 행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즐겁게 꾸며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일테면... 단오에 널뛰리를 할 수도, 새해에 한복을 입고 신나게 놀러갈만한 파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복날에 삼계탕을 먹으러 몰려가듯 무언가 신나게 놀 수 있는 그런 우리만의 날들 말이다. 

그렇게 기왕이면 한국만의 어떤 것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주체에 우리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원인 '아이들'의 위한 내용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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