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모삼천지교 Mar 24. 2019

네가 어떤 삶을 살더라도. 우리는 널 사랑한단다.

아이들이 선택한 '성(gender)'을 인정해 준다는 것.

Gender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이 곳에 와서 참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성적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도 물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영화로, 책으로, 그리고 내가 속해서 일했던 곳이 "뷰티"였다 보니.. 메이크업 아티스트 또는 홍보를 담당하시는 분들 중에서 심심치 않게 뵐 수 있었다. 특히, 해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들의 경우 대부분 게이인 경우가 많아서, 한국의 아티스트 분들은 "남성"으로의 정체성이 매우 매우 확실하심에도 불구하고 해외 출장을 갈 경우 게이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도 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늘 모두에게 적용해야 하는 명제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자체가 어떤 개인이 다른 개인을 가치 판단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성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스스로를 '깨어있는 성인'이라 생각했던 나도 이 곳에서 지내면서 아직도 가끔 “아......??” 싶어 지는 경우들이 생긴다. 인종의 Melting pot이라 불리는 곳이니 성별 즈음이야... 싶었으나 막상 마주하면 당황스러운 경우들


예를 들면...

-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화해 가는 중이고, 수술이라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예정인 “약물치료만 지속 중인 트랜스젠더”인 너무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훌륭한 선생님.

- 분명히 작년까지는 여자아이였지만, 남자아이가 입는 옷을 더 좋아하고 이름도 남자아이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부모.  또는 그 반대로 남자아이로 태어났지만, 여자 아이로 자라길 원하는 아이들.

- 아이의 새로운 성을 따라 "Gender Reveal Party"를 열어주는 부모들.

- 게이 부모를 둔 아이가 자기는 "(두 아이중 한 아빠의 이름을 대며) 뱃속에서 나왔어요"라고 이야기할 때.


이 모든 케이스들이 실제 바로 매일 접하는 우리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경험한 일들이다.

아들이었던 아이 이름의 어미를 조금 바꾸어 (예: Milo-> Mila 같은 식으로) 예쁜 여자 이름으로 불러주며 아이가 입고 싶어 하는 치마와 머리핀으로 꾸며주고, 아이가 그로 인해 상처 받지 않도록 학교에 이름을 바꾸어 불러달라 요청하고, 그 모든 상황에서 아이가 위축되거나 힘들어하지 않도록 애쓰는 아이 엄마를 보며...'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그리고, 남편과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다른 성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홍석천]씨와 [하리수]씨를 통해서 깨지기 시작했지만,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또는 충분히 다른 성향으로 사려되더라도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던 이들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에...'실제 내가 온전히 그 문화를,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던 부분은, "성"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도 [아동]이 가지고 있는 주체성이 존중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어쩌면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었다. 이미 다 큰 성인에 대해서는 "개인의 선택" 또는 "이미 타고난 성향"으로 보지만.... 아이들의 경우에도 그 선택에 문제가 없다고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런 나의 생각은 아이들을 [주체성 있는 작은 성인]으로 보는 시각과 배치되는 것인가? 등등 여러 가지 생각과 논리들로 머릿속이 한가득일 때.


미국을 베이스로 한 육아 관련 인스타그램에서 바로 이와 같은 "자식들의 성 변화"를 마주한 부모들의 케이스를 종종 보게 되었다.


9살인 아들이, 2년 전부터 "사만다"라는 이름을 써왔고 (즉, 여성으로 자신을 인정)... 가끔 학교에서 아직도 예전 남자아이 이름으로 된 고지물이 온 것을 보고, "새로운 생일" 증명서를 끊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단다.

20살이 되어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자녀에게... 20살 생일날  "새로운 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주었다는 것. 마치 처음부터 지금과는 '다른 성'으로 뱃속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듯 기념사진을 찍어 올린 부모의 포스팅도 있었다.


이를 보면서 어쩌면, 이 부모는.... 자녀가 무엇을 하던, 어떤 상황을 마주하던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었겠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었다.

단지.. 이 가족에게는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이슈가 "트랜스젠더"였을 뿐.


이제 겨우 다섯 살이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면, '도대체 왜 이러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되돌이켜 보면... 나의 예상이나, 방향과 맞지 않게 행동하거나 이야기할 때였던 듯하다. 그리고 결국 그 '이해가 가지 않는' 작은 생명체를 보며 화를 내게 되기도 했었고.

그래서 이런 포스팅들을 보면... 스스로를 되짚어보게 된다.


고작 이런 작은 차이에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는데...

내가 낳을 때와 다른 "성별"을 아이가 원한다고 이야기할 때  내가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다른 누가 아닌 "엄마, 아빠"에게 가장 먼저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부모여야 하는가?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가정과, 대입, 그리고 질문들은.


어쩌면, 한국에 있었다면 접할 수도 없는 경우들이고, 생각해 볼 일 없는 이슈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이 곳은 "성"이나 "성역할"에 대한 다양한 상황과 개인의 취향들이 가감 없이 드러나고 있는 곳이어서 우리도... 자의 반 타의 반 스스로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되었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말하기는 [아이를 나와는 다른 객체로 인정]한다 말하던 나의 어설픈 이상향인 [각자 독립적인 아이와 부모의 모습]도 진짜 잘 가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이라 해서 이 모든 케이스들이 100% 긍정적으로만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아닌 것도 사실이다. 보수적인 상류층 일부나, 유태인 친구들 중에는 "He"나 "SHE"가 아닌 "THE"로 칭해야 하는 이러한 다른 성별을 택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썩 편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위와 같은 문화가 쉽게 노출되지 않는 특정 종교 계열의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보고, 생각하면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아이를 나의 '부속'이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모든 사고의 시작이어야 할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가끔 이렇게 되새기게 되었다.


아가.


예쁜 딸로 태어나, 그 자체로 너무 큰 기쁨을 주고 있는 너에게 감사한단다. 

늘 매 순간이 감사한 너이기에 그저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에...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택하는 삶의 과정을 따른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이성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만들고, 그리고 아이를 낳아 사는 그런 방식이겠지. 


지금 엄마가 너를 만나게 되었듯이 말야. 


하지만, 네가 관습적인 삶을 거부하고 '아내' 또는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그저 네 자신으로의 삶을 꿈꾸더라도. 나아가 그것이 네가 타고난 '여성'으로의 삶이 아닐지라도. 

그래서 다른 형태의 사랑을 꿈꾸거나. 네 스스로를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해도.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널 응원한단다. 


우리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모습이던.

그냥 "너"라는 자체로 사랑하고 지지한단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단다.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말해도 네가 행복한 삶이라면. 

네가 행복하다 느낀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이전 06화 아이를 존중하는 선생님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