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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May 24. 2019

아이를 존중하는 선생님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

뉴욕 맨해튼 유치원 수업 관찰기

가장 전문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분들.

사실 직접적인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만큼, 그 사회가 어린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얼마전에 미국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어른들에 대해서 지난번에 다루었는데, 직접적인 교육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선생님"들의 아이를 대하는 방식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이유. 


그리고 나 역시도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좀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된 이번 프로젝트. 


그 시작점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몬테소리"와  유사하지만 더 진화한 것으로 고려되는 [레지오 에밀리아 Regio Emilia 철학]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아이 학교에 먼저  연락해서, 아이들과 선생님의 interaction(상호작용)을 관찰할 수 있을지 문의했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 방식에 대한 관찰뿐만 아니라, 한국과 비교하여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상호 작용 방식도 비교 분석해보고 싶다는 내 이유를 듣고는 학교 측에서도 허가가 떨어져 진행해 볼 수 있었다. 


교육부장과 논의하여, 5세 정도의 아이들 대상 Pre-Kindergarten 클래스와, 만 3세~4세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는 3B 클래스를 각각 1시간씩 총 2시간 관찰해 보기로! 이 나이가 상대적으로 다른 영유아 반보다는 아이들의 의사 표현이나 활동이 좀 더 활발한 연령이라 이 2가지 클래스를 지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찰하러 가기 전에 주요 관찰 포인트를 정리해볼까... 하다가.

아무런 선입견이나 의도된 관찰 포인트가 없는 상태로 우선 진행해 보기로 했다. 

그 편이 아무래도 더 유의미할 것 같아서. 그리고 하기 시작.


우선, 이번 관찰의 대상이된 학교의 교육 철학에 대해서 먼저 짚어보자면...

Regio Emilia Philosophy는, 주로 Preschool  프리스쿨(6세 미만의 아이들)과 primary school(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육 철학 중의 하나. 

아이들의 창작활동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도구들.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만들기, 그리기를 위한 것들.

모든 교육 활동에 있어서 "학생을 중심에(Student- Centered)"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 교육철학의 핵심이다. 상호 존중, 책임감, 탐험 과정을 통한 생활방식, 아이들 스스로 만든 커리큘럼을 기초로 한 발견 등을 기본으로 하는 이 교육 철학의 근간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형성되는 아이들의 퍼스낼리티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백 개의 언어"들로 형성이 된다고 보는 점. 아주 어린 아이들도 가능한 "아이들의 특별한 언어 (예를 들면, 그림 그리기, 만들기, 역할놀이 등등)"를 더 활발히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교육방식의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 환경 자체가 "the Third Teacher(제3의 선생님)"라고 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찾아가게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실 자체를 일컬어 또 하나의 다른 선생님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것 같다. 

 **레지오 에밀리아에는 몬테소리와 달리 정해진 교육 커리큘럼이 없다. 그리고 교실 환경 내에서 아이들이 스스로의 재미와 아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커리큘럼을 만들어 가도록 유도한다. 몬테소리와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 방식이 가진 공통점은, 아이들이 가진 감각을 통해서 주변 환경을 탐험하고 교육적인 경험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자 이제, 실제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로 넘어가 보자면...


마침 내가 방문한 오전 10시 5세반 아이들의 교실에서는 Free play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들 모두 각자 원하는 놀이를 하는 시간.  교실 곳곳에 준비되어 있는 각기 다른 만들기, 그리기, 관찰하기, 구성하기 같은 놀이들을 여러 그룹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어 즐기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한편에서는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 행사에 가야 하는 아이가, 졸업식을 위한 연습은 왜 해야만 하는지 선생님에게 묻고 있었다. 학교 행사니 당연히 참여하는 것이 응당한 것이 아닌 “why”라는 질문이 기본이 되어 있는 아이들과 그에 대해서 설명 중인 선생님을 보며, 나의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반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 그 선생님은, 같은 질문을 두 번 듣는 것도 싫어하시는 유형이었다. 세상만사 별것이 다 궁금하고 이유가 알고 싶은 9살 아이에게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가당한 말이었나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집중.


선생님의 역할이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놀이와 관심을 Provocation(유발) 하는 것이 중요한 이곳에서는, 아이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하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Observing(관찰) 하는 것이 주된 선생님의 역할.


아이들의 활동을 관찰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주로 이랬다.

“That’s beautiful!”(와우, 아름답다!!)

“Oh, there you go” ( 잘했어~)

“I really love your handwriting!” (네 손글씨가 너무 좋다)

대부분의 말들이 아이들이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격려, 응원을 포함한 긍정적인 반응의 표현들.


그리고, 뭘 해야 할지 애매해 하며 가만히 있는 아이들에게는

 “what do you need?” 

”What do you want to do?”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 아이들의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들이 오갔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있는데. 블록 쌓기를 하고 있던 그룹 중 한 아이가 다른 곳에서 그림 그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다가가 이쪽으로 좀 오라며 부르고 있었다. 


이유인즉... 블록을 쌓아올리다가 원하는 모양대로 잘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했는데, 그 이유에 대한 아이들 각자의 해석이 달랐던 것. 그래서 전혀 다른 플레이를 하고 있던 친구들을 불러 각자 설명하며 누구 생각이 맞는지 봐 달라고 하고 있는 상황. 일종의 배심원으로 친구를 불러 놓고 둘러서서 문제점을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 


그 곁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은, 아이들 각자의 논리에 맞기도, 안 맞기도 한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What makes you think?(왜 그렇게 생각했니?)”

 “I like that(그거 좋은데?)”

“ I just want to hear your opinion(네 의견이 들어보고 싶구나)” 

‘옳다 그르다’ 같은 판단을 내놓는 주체가 아닌 아이들의 의견 그대로를 이끌어내는 역할이 그 공간에 있던 선생님의 몫이었던 것.


다른 활동으로의 전환은 어떤 방식으로?

한참 아이들이 각자 흩어져 놀던 중, 

[레모네이드 만들기]를 할 준비를 선생님들이 하기 시작했다. 


보통.. 나 같은 육아 초보이자 유아교육 비 전공자들이 집에서 아이와 무엇인가를 할 때, 보통 “이리 와봐, 여기 앉아, 이거 해”같은 지시 또는 통보형의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는데... 아이들의 관심을 돌리고 새로운 활동으로 옮겨가게 하기 위한 선생님들의 방법은 이러했다.


“(레몬과 라임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어 올리며)   자~~레모네이드 만들 사람?!!”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반응을 유도하는 질문. 

그리고 이어 너도나도 손드는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


“자. 그럼 이곳에서 만들기를 해야 하니, 지금까지 놀던 것을 정리하면 어떨까?” 

이미 레모네이드 만들기를 빨리해보고 싶은 아이들은 정리와 함께 다음 놀이로 자발적으로 이동했다.이렇게 빨리 많은 아이들의 행동의 전환을, 강압적으로 지시하지 않아도 된다니. 놀라울 정도.....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 마법 같은 단어 "Friends"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를 때, 이름을 제외하고 

가장 흔하게 듣는 호칭은.

“Hey Friends” 

“Hey Buddies” 

"Yes my love"

그리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이 아닌 “이름”


이러한 방식의 호칭 자체가, 원래부터 미국 문화에 있던 것인지... 아니면 최근의 트렌드인지, 

그것도 아니면 일부러 이러한 호칭을 쓰도록 노력하는 것인지 궁금해 물어봤다.


교육부장의 말에 따르면..

모든 내용과 진행에 아이들을 가장 최우선으로 놓고, 아이들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교육 방식에서는 아이들을 성인과 똑같은 독립적인 “주체”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호칭 자체도 [equality 평등함]를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노력 중이라고 한다. 

영어 자체가 동양처럼 존칭이나 높임말이 없는 언어체계지만, 과거 미국에서는 그 안에도 선생님에 대해서는 존칭을 썼던 적이 있었단다. 하지만 요즘의 미국은 전반적으로 과거와 달리 "아이들"과 "선생님"을 상하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서로 존중하고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좀 더 노력 중이고 그 차이를 호칭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었다. 그리고 교육부장은, 이것은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 철학을 따르는 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여러 교육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라는 부연 설명도 이어갔다. 


마침, 얼마 전에 수십 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은퇴하신 친구 부모님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었는데, 그 당시 이 어른의 말씀도 "미국 역시도 과거에는 선생님을 Mr.000/ Mrs, 000와 같은 방식으로 존칭을 쓰도록 했었지만 최근에는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변화 중이다"라는 설명을 들었었는데 그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 


지시나 명령이 아닌. 부탁.

아무리 작은 어른들인 아이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어른이 잡아줘야 하는 바운더리는 존재한다. 다 같이 행동해야 하는 집단에서 지켜야 할 규율이 있고, 위험한 일에 대해서는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


이 과정에서 이들이 쓰는 언어들이 내 귀에 쏙쏙 꽂혔다.

"Can you spread this paint?(이 페인트칠 해 볼 수 있겠니?)"

어떠한 행동을 아이에게 하자고 이야기할 때, 그냥 "이거 하자"가 아닌 "이것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볼까?" 와 같은 권유, 또는 의문형의 동기부여.


그리고, 아이가 했으면 하는 행동과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을 이야기할 때는.

"I would like to see you clean your hands." (선생님은 네가 손을 씻는다면 좋겠어) 

 "And don't would like to see you paint on a table" (그리고, 테이블에 색칠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아이가 해야 할 행동의 바람직한 예시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들에 대한 예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서 아이가 그 안에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서 이해가 쉽게 하는 것은 물론,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



아주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활동들


마침, 내가 간 날,

3B 클래스에서는 종이로 만든 큰 공룡을 색칠 중이었다. 반 아이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실제 조각가로 활동 중인 현업 아티스트이신데...

아이들이 공룡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철사와 나무를 이용해서 공룡 모형 만들기 골조를 만들어 주셨던 것. 그리고 그 위에 종이를 붙이고 말리고 반복하여 실제 공룡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 색을 입히고 있던 중이었다.


신이 나서 색칠 중인 아이들을 보다가 옆을 보니, 보드에 여러 가지 색상과 그에 대해서 투표를 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색상을 정할 때 아이들과 다 같이 투표로 정한 것인지 물어보니, 그렇단다. 거기에 어떤 파란색을 할 지도 다 같이 모여서 여러 가지 계열의 파란색 물감을 다 같이 섞어가며 완성한 것이 지금 공룡을 색칠 중인 색상이라는 것.


모든 선택에 참여하고 주체가 되어 결정한 아이들이 더 신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


잠시 후, soccer class가 있어 아이들이 기존에 하던 활동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5분 후 알람을 설정해 둔 시계가 울리기 시작하자, 선생님이 알람 시계와 탬버린을 들고 아이들 곁으로 왔다.  


그중 한 아이에게 선생님이 부탁한 것 2가지는.

1) 울리고 있는 알람을 꺼줄 것.

2) 탬버린을 흔들어 시간이 되었음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기.


보통 나도 집에서 타이머를 맞추어 두고 아이에게 잘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행동은 하는데, "알람을 직접 아이가 끄고" "이를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는" 사소한 행동까지 아이들이 참여하게 하다니.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 이런 사소하고 소소한 활동 속에까지 아이들이 모두 관여하고 있는 일상. 그래서 덕분에 나 스스로가 굳이 아이가 안 해도 되는 활동이라며 배제시킨 것들이 없는지 돌아보게 되기도 한 모습이었다. 


아주아주 작은 무엇으로 이렇게 무엇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가 으쓱 거리는 아이들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만든 교실속 생활 규칙 차트. 각자의 의견 옆에 손도장을 찍어 벽에 걸어두었다.

두어시간을 내리 서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기록하고 나오니 꽤 피곤했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 배우고 얻은 것이 많았던 시간.


"아이들을 존중한다"

라는 이야기는. 일견 쉬워 보였던 명제였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쉽게 생각했던 이유느, [좋은 말로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이들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결정에 참여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던 것은 진정한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라기 보다 표면적으로 부드럽게 대하는 수준의 "친절함" 정도가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교사 역시도

 "이렇게 아이를 모든 과정에 우선으로 두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데는 나도 한참 걸렸답니다.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다 자란 어른들인 우리에게 '아이들을 존중하는 행동과 사고'는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이미 교사인지 오래인 그녀 역시 매일매일 노력 중인 만큼. 


하지만, 그렇게 존중받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있는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이 너무나 예쁘게 크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나도, 그리고 한국의 어린이들을 대하는 모든 어른들도 매일매일 더 많이 노력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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