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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Mar 07. 2023

사이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큐 <나는 신이다>(2023)


문제적 다큐


내게는 목사 친구 한명이 있다. 그는 아주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 덧붙인다. “에수 믿어!” 그의 말에 나는 껄껄껄 웃을 뿐이다. 아마 그는 알았을 거다. 믿으라고 권유한다고 해서 내가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 또한 그의 선교가 반농담(?)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웃음으로 응답할 뿐이다. 이처럼 신앙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문제지 설령 권유한다고 해서 가질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종교에 기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설령 죽음 이후의 문제에 답변을 준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으로 평소 종교에 관심이 없다. 



이런 종교를 향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나는 한 편의 다큐를 보고 종교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주말이 지나고 그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2023)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작품은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다룬다. JMS 정명석,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 사건이 에피소드별로 소개된다. 이들은 한때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뤘기에 몇몇 사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다큐의 첫 장을 연 <JMS, 신의 신부>를 보는 것은 처음부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했을 것 같다. 



고통과 의무


이 다큐는 처음부터 피해자의 절규에 그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져 주시하기 힘들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알고 있던 피해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성적 착취의 피해자가 몇 백명이 아니라 몇 천명까지도 되지 않을까라는 염려에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앞서 말했듯 어떤 의무감에 이 문제적 다큐를 계속 봐야 했다. 혹자는 이 다큐의 첫 편을 보고 ‘가학적’이고 심지어 ‘선정적’이라고 비판하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아마도 진실은 더 참혹하고 화면으로 전달되는 공포보다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의 불쾌감 따위를 생각하기 보다는 피해 당사자가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며 그들을 지지한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보기 바란다.



피해 여성들은 수년 내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 피해를 증언하고자 어렵게 카메라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공개하는 결단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고통을 계속 상기해야 하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댓글에 보이는 피해자를 탓하는 목소리가 우려스럽다. 그런 글의 논지는 대개 ‘어떻게 저런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설령 그 의도가 가해자를 옹호하는 주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반응은 가해자를 편드는 결과밖에 안 된다. 아마도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이비 집단에 절대 빠져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러나 JMS가 주로 서울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라. 


환상의 굴레


그런 이들에게 나는 알튀세르가 소개한 파스칼의 말을 빌려 이유를 설명하고 싶다. 파스칼은 말한다. “무릎을 꿇어라. 기도의 말을 읊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신앙을 가졌기에 교회를 방문해 무릎을 끓고 기도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오히려 파스칼은 그 도식을 뒤집는다. 신앙이 없어도 종교적 관습에 따라 물질적 실천이 반복되면 어떤 믿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이비 집단이건 어떤 집단이건 반복된 실천은 구성원을 어떤 환상에 빠져들도록 유도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저 피해자들이 일종의 세뇌를 당해 쉽게 그 집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큐 중간에 소개되는 정명석의 성경 해석을 봐도 그렇다. 성경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저런 설교에 수긍한다는 게 외부인의 눈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유사 가족이라 부를 만한 종교 공동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아우라에 푹 빠져든다. 교회에서 종종 상대를 ‘형제님’, ‘자매님’ 등과 같은 호칭으로 부른다. 이런 점에서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두는 교우인 셈이다. 이런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감 속에서 쉽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설령 그 집단을 탈출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핵심 관계자들은 이탈하려는 신도를 회유하고 협박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큐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막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행동처럼 말이다. 그러니 자신은 절대 저런 사이비 집단에 포섭될 리 없다고 자신하지 말기를 바란다. 



끝으로 용기있게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 증언자들과 아직도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저 다큐를 끝까지 보는 일이다. 그리고 가해자의 만행을 기억하고 끝까지 그들이 처벌되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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