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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단점

2부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by 허씨씨s

약 10여 년 전, 수능을 끝마쳤을 때의 해방감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초, 중, 고등학교 총합 12년을 거쳐 단 한 번에 대학 입학이 결정되는 시험. 지금은 정시 비중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법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선택에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되는 시점과 맞물려, 삶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인 것이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대학교 새 학기 초반에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캠퍼스에는 학과 동아리뿐 아니라 중앙동아리까지 존재해서 다양한 그룹에 참여할 수 있다. 대학 연합 동아리까지 폭을 늘리면 새로 만날 수 있는 인연의 범위는 더욱더 넓어진다. 신입생은 어느 곳에서든 환영의 대상이기에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에 맞는 동아리를 골라서 가기 쉽다. 인싸력이 넘치거나 욕심이 많은 친구들은 여러 동아리를 한꺼번에 가입하기도 한다(물론 그만한 열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학생으로서 첫 만남의 시기가 지나고 새로운 모임의 구성원이 서로 익숙해질 무렵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비슷한 화두가 떠오른다. 다름 아닌 '고등학교 친구 vs 대학교 친구' 논쟁이다. 이는 기존의 인간관계와 새로운 인간관계 사이에서 겪게 되는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다녔었던 인문계 고등학교의 친구들은 거주 지역이 비슷해서 공감대 형성이 쉬운 부분이 있었고, 대입이라는 공통된 목적의식을 공유하면서 서로 경쟁과 동시에 협력을 한 경우가 많았다. 힘든 여정을 함께하다 보니 거기에서 비롯되는 끈끈한 유대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공동의 목표를 상실함에 따라 그 유대감을 지속하지 못하는 케이스도 생겨난다.

반면에 대학교 친구들은 각자의 배경이 너무나 다르고, 신입생으로서 대학생활에서 바라는 로망도 다양했다. 대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만나다 보니 특정 상황과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지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단점은 그만큼 쉽게 멀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학기 중에는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만남을 이어갈 상황과 조건 등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지만, 방학과 휴학 그리고 군입대 등의 휴지기(休止期)를 여러 번 거치다 보면 관계들이 금세 정리된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오는 친구들을 살펴보면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난 사람의 비중이 좀 더 높은 것 같다. 그중에서 나와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는 단 한 명이다. 그렇다면 나는 은연중에 대학교 친구보다 고등학교 친구가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건국대학교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대학교 친구의 범위를 대학생이 된 이후에 만난 모든 인연으로 경계를 넓힌다면 대학교 친구를 더 선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매일 정해진 시간 그리고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순간들을 여럿이서 함께 보내야만 했다. 반 별로 학기 초에 짜인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들어야만 했고, 고등학생 때는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고 나면 하루가 끝나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고, 야간 자율학습 역시 이름 그대로 '자율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정책상 고등학생까지는 지도를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되기에, 아직 생활에 여러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에 대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이다. 전공이나 교양 분야별로 졸업에 필요한 최소학점은 존재하지만 그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수강할 수 있다. 때로는 자체 휴강을 선언하며 수업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수업에 결석할 경우 출석 점수가 깎이겠지만, 스스로 그것을 감당하겠다고 하면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성인으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될 뿐이다.

대학교에서 처음 맞이하게 되는 자유의 맛은 분명 달콤하다. 그러나 본래 자유는 그만큼의 책임과 통제, 자기 규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방황을 겪게 만든다. 그래서 대학생이 된 이후에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하고 싶은 것이 다르다. 서로의 욕망이 완전히 일치하는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누군가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타협과 협상 등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앞서서 지금까지 만나오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교 친구들을 비교했지만, 사실 학교의 종류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목표나 비전 등의 존재 여부와 서로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심의 정도가, 만남을 오래 지속하는데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자신의 취향이 확실하다면 공동의 목표나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대학교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해심과 배려심의 경우 대학생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오히려 더 갖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비해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면서 인내력도 함께 줄어들게 되고, 학교 캠퍼스의 면적이 커지면서 회피 가능성 역시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언제나 불편하다. 그러나 믿음을 완전히 져버릴 정도의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직접 그 사람과 마주하여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만 한다. 그래야 만남을 계속해서 이어나갈지 혹은 인연을 정리할지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 없이 그냥 불편하고 귀찮아서 갈등을 회피해버린다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인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서 이해심과 배려심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자유란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유로울 때 나는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편한 것만을 추구하고 불편한 것은 전부 외면하는 건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선택에 따르는 불편함까지 모두 감수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자유의 단점은 다름 아닌 불편함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기에,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다른 무언가는 반드시 포기해야만 한다. 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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