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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Jul 04. 2021

죄의 궤적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 《죄의 궤적》을 읽은 후의 감상.

#죄의궤적

“나쁜 짓이라는 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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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남짓 남은 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1963년의 일본. 어느 날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이 터진다. 용의자는 지난 일을 금세 잊어버리곤 하는 바보 우노 간지. 경찰은 합동 수사본부를 세우고 수사를 진행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범인에게 아이의 몸값을 탈취 당하고, 살인사건까지 발생해 형사들을 괴롭힌다. 범인의 목소리를 공개하기까지 하며 전례 없는 수사를 펼치자 이제 전 국민이 이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장난 전화 같은 많은 부작용도 낳았지만, 심증만 가득했던 수사가 점점 실체에 가까워지고, 대졸 출신의 20대 경시청 형사 오치아이는 용의자 우노 간지의 동선을 쫓으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이 책은 사실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물 치고는 속 시원한 장면이 거의 없다. 수사를 풀어내는 과정의 현장감과 몰입도는 엄청나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고 답답해서 퍽퍽한 닭가슴살을 목구녕에 쑤셔 박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마침내 범인을 잡기는 하지만, 독자에게 남겨진 건 통쾌함 보다는 여름철 에어컨이 고장 난 출근길 지하철만큼의 찝찝함이다. 작가는 독자들의 우노 간지에 대한 페이소스만을 의도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정교하게 짜여둔 범죄의 궤적들을 따라 올라가면서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독자가 느낀 찝찝함만큼이나 계속하게끔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고 여기는 게 더 합리적이다.

언제나 범죄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보통 멸시와 천대로 수렴한다. 이따금 프로파일러나 심리학자 같은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어릴 적 누군가가 따뜻한 한마디만 해줬다면 이 범죄자 ○○○은 악마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라는 등 사회가 만든 악마라며 범죄의 불가항력을 어필해 약간의 동정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론 사회의 역할에 관해서 그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도 적잖이 볼 수 있다.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나는 우노 간지에게 어쩐지 긍휼한 마음 외에는 딱히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나는 저렇게 될 일 없다는 교만으로 가득 찬 생각에 기초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흉악한 범죄자가 나오면 매스컴에서는 하나 같이 사이코패스가 등장했다고 대서특필하며, 그들은 우리 인간과는 다르다는 듯 사이코패스라는 선을 긋고 애써 외면하지만, 결국 그들이나 우리나 다 같은 인간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인간과 죄를 구별할 수 있는가.

우리라고 우노 간지처럼 범죄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기구한 유년기를 보낸 스무 살의 우노 간지 조차도 도쿄로 상경해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며 나름대로 잘 살아보려 애썼다.

“나쁜 짓이라는 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담담히 꺼낸 우노 간지의 이 말은 어쩐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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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 《죄의 궤적》

*이 글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으나, 책을 덮고서 느껴진 이물감 같은 감상을 어떻게든 남겨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지루하고 긴 글을 다 읽어 내리다가 지금의 글까지 도달하셨다면 글을 참 좋아하는 분이실 거라 생각됩니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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