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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토 Oct 20. 2021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경찰로 버티고 있을까?[1]

모르셨군요. 경찰관도 사람이라는 걸


이번엔 경찰이 아닌 어떤 여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에다 도자기를 굽는 예술인이다. 생활자기는 물론 예술 자기도 구우신다. 누님은 술과 독서, 도자기와 니토를 좋아한다. 심지어 싱글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누나와 나는 이상하고 통속적인 관계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만나면 술 마시고 세상 얘기하고 최근 읽은 책으로 안주를 삼다가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헤어지는 게 전부다. 누나가 엄청 강해 보여도 누구보다 약하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누나 모르게 살피며 돌보는 거다. 혹시라도 실의에 빠져 삶을 포기하지 않을까 해서. 누나가 혼자 된 지 5년째라서.


누나와 사별한 남편, 그러니까 내가 형님이라 불렀던 분은 유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였다. 형님의 그림은 깊고 예리하고 고요했다. 사물의 본질을 극한까지 꿰뚫고 들어가 명료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그런데도 그림 속에는 늘 사람이 녹아 있었다. 자본으로 점철된 사물보다 사람이 돋보였다.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두 분 사이에 자녀는 없다. 빌딩 숲에 사슴 한 쌍처럼 서로만을 의지하고 살았다. 유화를 그리고 도자기 굽는 것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웠다. 안주를 만드는 형님 손맛이 좋아 터미널 근처 골목에다 주막을 열었다. 주막에는 근동의 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화가, 도예인은 물론 소설가, 시인, 사물놀이패의 아지트였다. 물론 내 놀이터이기도 했다. 주막에 처음 갔을 때 책장은 물론 선반까지 빼곡히 들어찬 인문학 서적을 보고 한순간에 매료되었다. 부담 없는 술값에 도자기 잔에다 마시는 막걸리 맛은 그야말로 일품. 더구나 수더분한 형님과 누님과의 대화가 술맛을 북돋았다. 예술가 특유의 첨예함과 까칠함 따위는 없었다. 괜히 경계할까 봐 내가 경찰이라는 걸 처음엔 밝히지 않았는데 그런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손님과 주인 이상의 끈끈한 관계로 발전했다.        


11년 전 누나와의 첫 만남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모 봉사 단체 기념회였는데 여차저차 하여 내가 축사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밤새 끙끙거리며 겨우 두어 장을 준비해 순서를 기다렸다. 어찌나 심장이 벌렁거리던지. 당시에는 건물 내 흡연이 허용되는 분위기였고 나도 담배를 태우던 때였다. 계단에 마련된 재떨이 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긴장을 식히고 있는데 하이힐에 사자머리처럼 파마를 한 여성이 담배를 물고 다가왔다. 낯선 여성과 마주보며 담배 태우는 것도 어색한데 그녀는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헐렁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축사를 마쳤을 때 하필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고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

      

누나와 형님은 경찰에 대해 매우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시절 누구보다 데모를 많이 했고 경찰에게 진압 당한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이었다. 술 마실 때마다 가끔 ‘짭새’라는 비속어가 추임새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내가 경찰관이라는 걸 선뜻 밝히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분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내 정체를 스스로 실토하고 말았다. 너무 의외라는, “정말이니?”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이 기존에 품고 있던 경찰 이미지와 정현수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너처럼 섬세한 놈이 어떻게 경찰이 되었냐는 물음이 날아왔다. 예술가들을 사찰하러 온 정보과 형사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내가 쓴 몇 편의 옹색한 글을 내민 후에야 진심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누나보다 형님이 내 글을 더 좋아했다. 당시에 나는 모 신문사에 정기적으로 칼럼(시론)을 연재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글을 보내고 나면 숙제 검사를 맡듯 형님에게 보여드렸다. 형님은 담배를 물고 미간을 찌푸려 내천(川) 자를 만들어 가며 내 글을 집중해 읽었다. 형님의 합평은 꼭 한 박자가 늦었다. 막걸리 몇 잔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비로소 ‘현수야’ 하면서 내 글에다 형님의 입장을 슬쩍 얹었다. 어차피 내 글은 시론이니까, 시대에 대한 이야기니까 옳고 그름에 대한 다툼이 아니라 관점과 사유에 대한 교환이었다. 그랬던 형님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형님은 공개하지 않은 유화 수십 점과 오래된 이젤, 미소와 그리움을 유품으로 남겼다.     


누나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히피를 연상시키는 사자머리에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파이고 헐렁한 옷, 십 분에 한 대씩 피워대는 줄 담배. 초면에 어려운 상대 앞에서도 조심하고 삼가는 법이 없다. 그러니 어찌 좋은 소리가 나오겠나. 그러면 나는 누나의 인간적인 면과 예술가로서의 자유분방함, 솔직함과 정의로움까지 나열하며 적극 변호하고 나섰다.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술손님이 경찰에 대해 좋지 않게 얘기를 하면 여기 현수를 좀 보라고, 얘가 경찰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못된 경찰과는 너무 다르지 않느냐고, 경찰에 대한 굴절된 시선을 이제는 거둘 때가 되지 않았냐고, 경찰도 비극적 현대사의 희생자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럴 때면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다. 경찰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천형(天刑)이 엄연히 존재하니까. 누나와 형님은 내 앞에서 더 이상 짭새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누나가 술을 너무 집착해서 걱정이 크다. 형님이 계실 때는 술을 즐기는 정도, 친교를 위한 방편 수준이었는데 혼자 된 후로는 매일 술에 의지해 산다. 뭇 사내들의 음험한 시선이 싫어 주막을 정리한 뒤로 오히려 술이 늘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누나는 내게 술을 좀 사오라고 시켰다. 무학시장에서 순대와 머리 고기를 사 들고 갔다. 누님의 도예 작업실에서 마시는 줄 알았는데 자꾸 방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남녀가 유별하므로 방안에서 단 둘이 마시는 건 부담스럽다며 거부해도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이 누님 방으로 들어갔는데 앉자마자 대뜸 “너는 내가 술 마시는 거 동네 사람들이 다 봤으면 좋겠냐?” 이러셨다. 다른 사람 눈은 전혀 신경 안 쓰고 평생을 자유인으로만 살 줄 알았는데 몇 년 새 많이 약해졌다.      


말은 하지 않으나 형님이 계시지 않으니 주눅이 드는 모양이었다. 최근에는 앞이 파인 헐렁한 옷을 아예 입지 않는다. 밖에서는 담배도 함부로 태우지 않는다. 혐경(嫌警)에서 친경(親警)으로 전향한 쓸쓸한 사슴 한 마리. 누나가 쓰러지지 않게 옆에서 지켜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은근슬쩍. 무심한 듯 티 나지 않게. 그게 먼저 떠난 형님에 대한 나만의 조문 방식이다. 누나와 마시는 술은 여흥이 아니라 뻗치기 근무다. 그래서 이 근무는 종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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