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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통역사 Jul 25. 2024

한국 사람은 밥에 설탕 뿌려 먹어?

카자흐스탄에서 대학 다닐 때 나는 외국인 기숙사에 살았다. 끼니는 대부분 학교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해결했다. 밥보단 감자와 당근, 고기와 위주의 식단이었다. 그땐 한국 음식이 특별히 그립진 않았다. 성인이 되기 전 이민을 간 탓에서 입맛이 현지에 적응되어서일 수도 있다. 기숙사  작은 냉장고도 있었지만, 김치 같은 한국 음식 넣어 둘 일없었다.


냉장고엔 자주 마시 요구르트와 빵에 발라 먹을 버터, 아는 아줌마가 만들어  같은 들어 있었다. 거긴 기본 15 브릭스는 족히 넘고도 남을 당도 높은 과일이 종류도 많고 저렴했다. 사람들은 이 과일들을 그냥 먹기도 하고, 말려서 먹기도 하고, 잼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집집마다 살구잼, 산딸기잼, 블루베리 잼, 장미열매 잼 같은 각색의 잼들이 기본으로 쟁여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의 냉장고에도 늘 선물 받은 잼이 한 두병씩은 있었던 거다.   


그날은 산딸기 잼을 빵에 발라 먹고 있었다. 아이잔이 방 문을 연 건 그때였다. 아이잔은 세미팔라틴스크라는 데서 대학에 가려고 상경한 애였는데, 그 지역 유지였는진 몰라도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애여서 우린 가끔 '아우치' '지저스' 이런 말은 영어로 하곤 했다. 키는 작달만해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가슴이 당당해지는 애였다. 그날도 아이잔은 가슴을 조금 내밀더니 말했다.


야, 너 밥에 설탕 뿌려 먹어?

아니?

우리도 똑같아. 잼은 디저트 먹을 때나 먹고. 이 빵은 식사용이라고.


선홍빛 산딸기 잼을 듬뿍 바른 빵을 우걱거리던 입이 한껏 옹졸해졌다. 하긴, 밥에 설탕 뿌려 먹는 할머니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적이 있지, 그럼 빵을 밥으로 받아들이는 네 입장에서 이상할 수도 있겠다, 생각 거기에 이르렀고, 나는 마침 다 먹었다는 듯 잼 병뚜껑을 닫았다. 설탕의 '낄끼빠빠'에 대 나름 확고한 규칙이 있는 민족 앞에 예의를 차린 것. 그러 보면 불고기를 먹었을 때도 맛있다고 했다가, '너흰 고기 양념에도 설탕을 넣는구나' 했던 기억이 났다. 달달하게 먹어야 하는 건 디저트에 한정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그럼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식사 빵이란 뭘까? 주식으로 먹는 빵은 밀이나 호밀, 물과 약간의 소금만으로 반죽해서 구워낸 크고 부피감 있는 종류의 빵들이다. 대표적으로 바똔, 초르늬흘롑, 리뾰시까가 있다.


'바똔'은 타원 모양에 칼집이 나있는 전형적인 만화에서 보던 빵의 모습이고, 자르면 안은 하얗고 식감은 부드럽다. 토마토, 오이 같은 채소와 치즈, 훈제 소시지, 햄 또는 생선 알을 올려서 식사 대신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메인 음식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초르늬 흘롑'은 호밀을 발효시켜 만든 빵으로 초르늬(Чёрный), 즉 검은색을 띠어서 '흑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밀도가 높고 무거운 빵이다. 식감은 쫄깃하고 약간 촉촉한 질감에 특유의 시큼한 맛이 있어 호불호가 갈린다. 버터 발라 먹으면 맛있다. 중독성 있다.


'리뾰시까'는 방석 빵이라고 불릴 정도로 원형 방석같이 크고 납작하다. 칼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뜯어먹어야 복이 달아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런 식사 빵은 주로 바구니에 담겨 식탁이나 주방 한켠에 놓여 있다가 식사 시간에 나오는데, 고기나 생선 등 메인 음식을 먹을 때 포크를 쥔 손 반대편에 들고 먹는다. 그러다 음식에서 맛있는 국물이 나오면 빵으로 적시거나 국물을 찍어가며 먹기도 하는데, 나는 그게 우리가  고깃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빵이나 밥이나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우리들 같다. 오랜 시간 함께 한 건 떼어내기 어려워하는 모습이 닮았다.


한 번은 한국에 출장온 중앙아시아인들을 통역하다가 여긴 어디서 빵을 사냐기에 별생각 없이 프랜차이즈 파리 그 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 그런데 빵을 한 보따리 사 들고 나올 거란 예상과 달리 얼마 사지 않고 나오는 거다. 어차피 둘 다 밀로 만들어 오븐에 구운 건 마찬가진데 대충 사 먹으면 안될까 싶었지만, 그들에게도 본식은 본식이요, 후식은 후식인지라, 그게 안 됐다.


그럼 밥이라도 좀 먹으면 좋을 텐데, 그네들이 말하길 '너희가 먹는 밥은 낱알로 이루어져 있어 배가 쉬 꺼지고, 빵은 진득하게 뭉쳐있으니 오랫동안 힘을 낼 수 있기에 대체가 쉽지 않다'며 우리와 정확하게 반대로 생각하기에 놀란 적이 있다. 밥과 반찬, 요리가 있어도 빵이 없는 식사는 허전하다는 거였다. 밥 먹겠다는 사람을 디저트 집에 데려간 것도 그렇고, 빵 값도 현지에선 몇 백 원이면 사는 걸 한국에서 배 이상을 주고 사라 했으니, 이래저래 헛헛하게 만들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빵만 먹고도 잘 살았던 지난날의 나도 이제 한국에 돌아와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지다 보니 잠시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한 번은 꼭 밥을 먹어야 한다. 얼마 전 유럽에 갔을  한참 걷다가 한식당을 찾아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수액으로 급속 충전하는 느낌 들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과 동시에 해외여행 가서도 밥 찾는 촌스런 여자가 된 것 같아 조금 찜찜하기도 했다.


그렇게 밥에 휘둘무력감을 느끼는 날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떠오다. 마음에 드는 처자를 만난 야쿠자는 그녀를 납치해 스키야키를 곤죽이 되도록 먹인다던가. 그러면 처자는 스키야키가 입맛에 완전히 배어버려 야쿠자를 절대 떠날 수가 없다. 영양 공급을 넘어 문화적 상징이 돼 버린 밥과 , 그에 얽매여 사는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인이 배기도록 육신에 새겨진  여간해 벗겨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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