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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Cloud Feb 21. 2023

마천루

초고층 건축

높은 곳에 서있기를 좋아한다. 산 정상을 좋아하고, 건물 옥상에 오르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가서 높은 곳이 있으면 왠지 올라가 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높은 곳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난 이 감정이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본능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위에 서있으면 지금 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이 올라온다. 혹시나 실수로 떨어지지 않을지 무지 조심하면서.. 그리고 나의 의지로 뛰어내리지 않는 나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도 생각하며, 난 내 의지를 가진 존재야.. 생각하기도 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 청평에서 했던 두 번째 번지점프에서 이런 떨어짐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이 선택이 너무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초고층 건축 설계,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와서 당시 미국에서는 한물 건너갔다고 하지 말리는 초고층 건축 설계로 석사 논문을 쓰고 졸업하고 같은 도시에 있는 초고층을 주로 하는 설계회사에 입사해서 16년을 꾸역꾸역 야근하며 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처음 이런 내 마음속의 본능을 따라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초고층빌딩 전성기는 존행콕(John Hancock), 시어스(Sears, 현재 윌리스(Willis)) 타워들이 들어섰던 1970년대였다. 입사했을 당시 미국 내에서는 9/11(월드트레이드 센터 붕괴)의 영향으로 초고층 빌딩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중동의 시장이 한창이었을 때라 많은 초고층 프로젝트를 접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세계최고 높이의 건물인 버즈 두바이(버즈 칼리파)가 한창 공사 중이었고, 대부분의 건축설계 관련 일들은 끝이 났지만 인테리어 쪽 일들이 남아 있어 도와주었던 기억이 있다.


초고층 건축은 엄청난 욕망의 결정체이다.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고, 각각의 주체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또한 돈을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결국 최종 결정자로서 자신의 욕망을 넣으려 한다. 개인 주택 하나만 지으려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생각해 보면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생각과 형태를 클라이언트의 돈을 가지고 해야 하는 건축가는 언제나 그 주어진 한계로 인해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게 된다. 또한 그 속에서 대표 건축가가 아닌 나의 위치는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항상 나의 회사 대표 건축가가 나의 클라이언트라는 마음으로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지시/선택에 울컥거리는 마음을 다스려 왔던 것 같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항상 무언가를 찾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건축과 학생들은 많은 밤샘작업을 한다. 설계수업 전날은 주로 학교 설계실 혹은 작업실이란 공간에서 밤을 새웠던 기억이 있다. 졸업 후 건축실무에서도 자신이 쓴 시간 대비 금전적 보상을 생각하면 편의점 시급만큼도 못 받으면서도 남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좀 다른 쪽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은 일을 통한 성취감이 다른 어느 직업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머릿속에 생각했던 것들이 눈앞에 세워지는 모습, 그것이 초고층 건축이라면 더욱더 강력하다. 또한 모든 프로젝트들이 각각 다른 요구와 제한으로 인해 반복되지 않는 늘 새로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항상 아픈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와는 달리 항상 꿈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벽에 부딧치며 하나씩 떨어져 나가 결국 다른 분야 혹은 건축 관련 업무로 전향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진행 중인 고민들이고.. 그래서 건축은 경제적 고민이 없는 사람들이 할 때 제일 좋은 직업이란 푸념을 한다.


나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고, 아직까지는 내가 원했던, 많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초고층 설계 디자인에 16년을 버티면서, 때로는 없는 재능을 자책하며, 그리고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


Sears(Willis) Tower 옥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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