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산업에서는 자격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국내에는 다양한 자격증이 존재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700개 이상의 국가자격이 있고, 민간자격은 5,000개가 넘어간다. 국내 산업을 모두 아우르는 자격들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숫자로만 봤을 때는 어마어마하다.
자격증은 특정 분야에서 요구되는 지식, 기술, 능력을 갖추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인증수단이다.
자격증은 국가기관이나 민간단체에서 발급할 수 있고, 직업적 자격을 보증하고 해당 직무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추었음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자격증은 취업, 승진, 자격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필요하며, 직업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디자인산업에도 11개의 관련 국가자격이 있다.
제품디자인기술사, 제품디자인기사, 제품디자인산업기사, 제품응용모델링기능사, 시각디자인기사, 시각디자인산업기사, 웹디자인개발기능사, 컬러리스트기사, 컬러리스트산업기사, 컴퓨터그래픽기능사,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 까지가 디자인산업 관련 자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중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디자이너분들은 관연 몇 가지 자격을 보유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했을 때 1가지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1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디자인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2022년 기준 검정형 국가기술자격 취득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제품 분야의 경우 취득자가 많지 않은데, 제품디자인기사는 총 3명이 취득했고, 제품디자인기술사는 8명이 취득했다. 우리 주변에 제품디자인 자격증 보유자를 보기 힘든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과연 디자이너에게 자격증이 필요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국내 디자인산업계에서는 자격증보다는 포트폴리오가 훨씬 더 중요한 평가 수단으로 쓰인다. 현업에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즉, 디자이너에게는 자격증이 필수는 아니다. 실제로 많은 디자인 기업에서 채용 시 포트폴리오를 통해 지원자의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이 드러나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올해 내가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산업 직무변화 조사에서도 많은 디자인전문기업 대표와 관리자급 실무자들이 자격증보다는 실무 경험과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참여자는 "자격증은 지원자의 학습 의지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결국 현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력"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이러한 강조는 디자인 분야에 진입하려는 많은 신입 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된다. 포트폴리오는 단순히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각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창의적인 접근을 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해외 디자인 산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2023년 겨울, 디자인과 문화콘텐츠산업 직무체계 조사를 위해 뉴질랜드에 출장을 갔었다. 당시 웨타스튜디오(Weta Studio), 플로팅 락(Floating-rock) 등 영상 콘텐츠 제작사, Yoobee School of Design, AUT University School of Art & Design 등을 방문했고 대학 교수 및 기업 관계자들을 만났다. 여기서도 디자이너 채용 과정에서 자격증보다는 포트폴리오를 통해 지원자의 능력을 판단하고 있었고, 뉴질랜드에 관련 자격증이 있는지 조차 관심이 없는 관계자들이 많았다. 포트폴리오로 1차 평가가 완료됐다면, 다음으로는 단기간 실무에 직접 투입하여 업무를 맡겨본 뒤 업무처리 능력과 기존 직원들과의 협력 과정을 지켜본 뒤 최종 채용을 확정한다고 한다. 국내의 수습직원 개념이기는 하나 국내에서의 수습직원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정식 채용으로 이어지는 반면 뉴질랜드에서는 수습과정도 하나의 면접과정처럼 활용되고 있었다.
뉴질랜드 채용 과정에서 한 가지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이력서에 본인의 추천인을 넣는 것이다.
입사 지원자는 이력서에 본인의 전 직장 상사나 동료, 지인 등 2~3명의 추천자를 함께 작성하도록 되어있다. 지원자의 태도와 팀 내에서의 협업 능력을 디자인 실력만큼이나 중요시 여기는데, 이런 요소를 추천인을 통해 한 차례 검증한다. 우리나라도 채용할 직원에 대해 사전에 알아보는 경우는 있지만 이력서에 추천인을 쓰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채용을 진행하는 디자인기업 대표나 채용 담당자에게 있어서 해당 정보는 꽤나 중요한 판단 요소일 듯하다.
그렇다고 자격증이 필요 없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본다면 자격증의 필요성이 매우 낮은 것 같지만, 자격증이 매우 중요한 산업도 많다. 건축, 기계, 전기 분야 등에서는 자격증이 자신의 커리어에 매우 유용하게 작용한다. 채용 시에도 가점 또는 채용 조건으로 들어가고 있다.
왜 자격증에 대한 산업별 중요도 차이가 있는 것일까?
뉴질랜드 출장 중 만났던 한인 디자이너 한분이 말한 내용인데 나는 그 내용이 간단하지만 아주 명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기계, 전자, 건설 등 관련 분야에서는 자격이 사용자의 안전이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것들이 많지만 디자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격증의 활용도 및 중요도는 해당 직무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
기계, 전자, 건설과 같은 분야에서는 안전성, 기술적인 표준, 법적 요구 사항 등이 직결되기 때문에 자격증이 그 분야의 필수적인 기준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자격증은 공공의 안전과 품질 보장을 위해 필요하며, 정해진 규격과 절차에 따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디자인은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핵심인 분야이다. 디자인 작업은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창의적인 성과와 경험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포트폴리오가 자격증보다 해당 역량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맞다.
그렇다면 디자인 산업에서는 자격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단순히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자격증을 없애거나 축소하자고 생각하기보다는 디자인 자격증에 대한 쓰임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디자인 자격증은 자기 계발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자격증을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의무적으로 따기보다는, 학교 수업과 마찬가지로 디자인 활동을 하기 위한 기본기를 배우고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디자인 자격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글이 있어 아래와 같이 공유한다.
https://brunch.co.kr/@iddakwon/17
기업에서는 자격증을 디자이너의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기보다는 프로젝트 성격에 맞게 기획단계부터 결과물 완성까지 기본적인 진행 프로세스와 이론적 방법을 잘 알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수단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는 2020년 시행된 이후 꾸준히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내가 진행한 디자이너 직무 변화 조사에서도 사용자조사를 통한 차별화된 전략과 사용자중심 제품/서비스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이 많았다. 고객경험 디자인에 대한 기업과 기관에서의 중요도 인식 및 이해도 또한 많이 높아졌다.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자격이기 때문에 현 산업계 트렌드에 맞는 시험기준이 갖춰져 있다. 제품디자인기사, 시각디자인기사와 같이 예전부터 있었던 자격 또한 현 산업의 수요에 맞는 방향으로 시험 내용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디자이너 직무 연구에 있어서 자격증 활용 현황 파악 및 개선 방안 도출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앞으로 디자인 자격증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자 한다.
관련글:
https://brunch.co.kr/@nomimic/5
https://brunch.co.kr/@nomimic/15
본 내용은 글을 쓴 당사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담겨있음을 밝힙니다.
[참고자료]
ㅇ민간자격정보서비스: https://www.pqi.or.kr
ㅇ한국산업인력공단: http://www.hrdkorea.or.kr
ㅇ2023 디자인문화콘텐츠산업 인력현황 보고서(2023, 한국디자인진흥원)
ㅇ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2024, 한국산업인력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