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영화만평] ‘사람 문재인’ 다큐, <문재인입니다>(2023)
대통령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국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은 개인 차원과는 다른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대통령 문재인’과 ‘사람 문재인’의 행위가 달라야 하는 이유다. 이창재 감독의 <문재인입니다>는 퇴임 후의 ‘사람 문재인’에 초점을 맞춘 다큐다. “야생화에 꽂힌 이상한 대통령”이던 ‘사람 문재인’이 “잡초를 심으셨다”는 증언 장면이 인상적인.
나중에 잘못한 줄 알고서도 ‘사람 문재인’은 아내 몫의 꽃밭 터에서 손수 잡초를 뽑지 않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을 강조하던 ‘대통령 문재인’이 불현듯 오버랩된다. 김정숙 여사의 꽃밭 구상과 어긋나는 ‘사람 문재인’의 이상한 고집스러움이 청와대에서 이미 드러난 셈이다.
물론 검찰총장 인선과 임명은 “경청하는 리더십”의 결과이고, 잡초를 심은 것은 야생화에 꽂혀서니까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윤석열 후보의 행태-변호사법 위반 의혹과 부동시로 인한 병역면제 논란-를 검증하지 않고 임명한 것은, 새로 조성하는 꽃밭에 잡초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이후 터진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은 대통령 문재인이 꽃밭(민주주의)을 잡초의 자정능력에 맡긴 탓일 수 있다. 촛불혁명이 마련한 천재일우의 개혁 기회를 놓친 ‘대통령 문재인’에 대해 “자기 역할을 아는 대통령의 모습”이라는 “갈린 칼”의 별명은 그래서 걸맞지 않다. 그가 재직 중에 얻은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환호가 간데없는 지금 더 그렇다.
다큐는 사람 문재인과 대통령 문재인이 합치되는 경우들을 부각시킨다. 그를 모셨거나 모시는 인사들이 쓰는 수식어 “너무”를 통해서. 그 강조 부사는 경외감 외에도 문재인의 고집스러움을 밝히는 일화들에 녹아 있다. “경청하는 리더십”, “사람으로서 강골”, “노잼”(=“빈틈이 없고 오버가 없다”), “너무 성실하고 정직하다”(=융통성이 없다) 등이 과유불급의 뉘앙스를 안기는.
‘대통령 문재인’의 “경청하는 리더십”의 본질은 뭘까. 사실 나는 이 다큐를 개봉일인 지난 5월 10일에 봤다. 머릿속이 더부룩해서 한 달이 넘도록 리뷰 쓰기를 망설였다. 나는 한때 ‘대통령 문재인’에 대해 호의적이었으니까. 2018년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를 맡은 군‧검합동수사단의 기소 중지와, 2021년 세월호 특검의 불기소 결론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다큐에는 퇴임길에 모여든 시민들에게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 묻는 장면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당선자 윤석열의 배웅 섞인 퇴임식도 없이 평산 마을로 향하는 전직 대통령의 질문이 나는 웃프다. 합법적인 권력을 쥔 대통령일 때 “힘들 때 참는다”의 침묵은, 권력을 제때 행사하지 않아 정무적 폐해를 심화시키는 직무유기와 연계될 수도 있다.
나는 ‘대통령 문재인’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때마다 1993년 대통령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을 떠올린다. 대통령 김영삼의 “놀랬제” 발언은, 측근 공직자들도 모르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경청하는 리더십”과는 거리 먼, 그러나 지혜로운 역사적 용단이라 여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행해질 위기에 처한 지금, ‘사람 문재인’은 “다시 출마해도 될까요?”를 외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