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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Dec 29. 2022

잃어버린 뮤즈를 찾아서

[김유경의 책씻이] <케이크와 맥주> (서머싯 몸, 민음사, 2021) 


<케이크와 맥주>는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이 1930년에 발표한 문단 풍자 소설이다. 여기서 풍자는 당대의 사회적 굴레인 구체제 가치관에 갇힌 인물들을 겨냥한다. 그 과정에서 빅토리아기 후반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격변을 서로 대척되는 언행들이 어우러지게 해 유쾌하고 부드럽게 소개한다. 비판적 날이 은근한 스토리텔링의 재미와 반전이 뛰어나다.      


서문은 <케이크와 맥주>가 일으킨 사회적 파문이 당시에 상당했음을 암시한다. 작품 속 인물인 에드워드 그리필드와 앨로이 키어가 당대 유명 소설가인 토마스 하디나 휴 월폴 등을 본떴다는 반응들이 많아서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창조한 모든 인물은 우리 자신의 복사본과 다름없다”고 일축한다. 암튼 작품 속 두 캐릭터는 사실주의적 형상화로 인해 생생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중심 이미지는 드리필드의 첫 번째 부인 로지로 드러난다. 다양한 시점의 에피소드들로써 확산시킨 그녀의 이미지 조각들을 작품 말미에서 수렴해 완성하는 식이다. 로지가 ‘케이크와 맥주’의 상징인 거다. ‘케이크와 맥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 이후 쓰이는 문단의 관용구다. 삶의 유희와 쾌락을 뜻하는.     

 

몸의 아바타일 어셴든은 로지의 자유분방함을 단순한 쾌락 너머의 것으로 묘사한다. 구체제의 수혜자인 어셴든이 로지를 헐뜯는 상대에게 응수한 결말 부분의 묘사 총집합은, 로지가 드리필드의 뮤즈였음을 다각도로 밝히는 인물평이다. 정조와 체면을 중시하는 당대의 통념에 어긋나지만, 이해타산 없이 속에서 우러나는 대로 사는 로지에게 박수 보내는.   

         


“백인 검둥이는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새벽처럼 순수한 여자였어요. 헤베 같은 여자, 월계화 같은 여자였지요.”(273쪽)     


“정말 좋은 여자였어. 나는 그 여자가 성질을 부리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들어주는 여자였어. 누구의 험담 한 번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네.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었어.”(273쪽)   

  

“그녀는 아주 단순한 여자였어요. 건강하고 천진한 본능을 가진 여자 말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죠. 사랑을 사랑했어요.”(274쪽)  

   

“그럼 그냥 사랑의 행위하고 해 두죠. 천성이 정이 많은 여자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두 번 생각하는 법이 없었죠. 그건 악덕도 아니고 음탕한 것도 아닙니다. 천성일 뿐이죠.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어 준 거예요. 그녀 자신에게 기쁜 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였어요.”(274~275쪽)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그녀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는 아니었어요. 애정만 끌어냈죠. 그런 여자를 두고 질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숲 속의 빈터에 있는 맑고 깊은 샘물 같은 여자였어요. 뛰어들면 참으로 황홀한 떠돌이, 집시, 사냥터 관리인이 나보다 먼저 뛰어들었다고 해도 그 물이 덜 시원하거나 덜 깨끗할 리가 없잖습니까.”(275쪽)     



어찌 보면, 로지 캐릭터는 통념적인 삶의 유희와 쾌락과 다른 차원이어서  대개의 창작자들에게 아쉬운 뮤즈일 수 있다. 한편 그건 당시 왜곡되어 외면된 드리필드의 사실주의적 작품에 대한 옹호와도 닿아 있다. 이래저래 난 독자로서 <케이크와 맥주>의 줄거리에 대해 굳이 전하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의 묘미는 그걸 모르고 읽을 때 훨씬 팽창되니까.  

    

특히 그래야 파산해서 도망가는 조지 켐프를 따라나선 로지의 이유 중 하나, “그리고 난 일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와 맞닥뜨렸을 때 나처럼 비로소 어셴든의 평가를 제대로 음미할 수도 있으니까. 또한 줄거리 요약에 쓰일 맥락 없는 특정 어휘나 문장은, <케이크와 맥주>가 가리키는 바를 밋밋한 견해로 통용시킬 수도 있으니까. 일테면, ‘초월적 세계관’ 같은.  

   

<케이크와 맥주>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찌든 지금 이곳의 내게 본래적 인간의 냄새를 맡게 한다. 아울러 한 작가나 특정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의도적 잣대나 대중적 무지에 의해 쉽게 도태될 수 있음을 강조한 점에도 나는 주목한다. 그렇기에 꾸준히 작품을 출간하여 장수한 ‘위대한 작가’ 명단에 서머싯 몸을 기껍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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