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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Mar 09. 2022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연애

그냥 하나의 점으로 남기에는.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열거하는 중에  남자 친구가 빠질  있을까. 연애하던 사이의 사람이  인생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는 힘들다.

아니,  사람은 더더욱 힘들다.


서른이 되면서 나는  번의 연애를 거쳐 왔다. 그중에서도  사람과의 연애는 잔상이 남는 연애였다. 헤어지고도  사람은   시간 동안 문득문득이 아닌 아주 눅지  하게 눌러앉아있었다.

트로이 시반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담뱃갑을  때마다, 가르마를 넘긴 남자를  때마다, 지나가는 특정 브랜드의 하얀 자동차를  때마다. 그리고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까무잡잡한 남자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존재였다.


 전까지는 보통 내가 연애를 주도해 왔다. 나는 줄곧 새로운 장소를 가는 것을 즐겨하는 입장이었고 상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조금 달랐다.

20 후반에 들어서며 시작했던  연애에는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었고  순간  눈은 휘둥그레 변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고 재밌었다. 내가 모르는 즐거운 자극으로 가득  세상을 보게 되었을  왠지 나는 어른이  것만 같았다.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남자 친구들과는 다르게 30 초중반의  사람은 여유로웠다. 번듯한 집에서 독립해 살면서 커피를 내려마시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남자였다. 계절에 맞춰 괜찮은 옷을 구매하고 운동화를 수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안에서는 항상 트로이 시반의 노래가 섞인 여러 노래들이 재생되었고 도로에서 그의 드림카가 지나갈 때면  차의 뒤를 따르며 열심히 차에 대한 설명을 듣곤 했다.

 사람은 말에도 여유가 있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농담을 잘했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귀는 언제나 신선했다.

그의 무기는 솔직함이었다. 그는 언제나 느낀 그대로를 얘기했고 참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1  가장 좋아하는 날인 크리스마스(필자는 무교이다.) 우리는 만났다.

역시 멀리서부터 나를 데리러  그가  보자마자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게 뭐야? 저거 봐 주연아."

"응? 뭐? 뭐야 저거?"


어디선가 흰색 차가 루돌프 뿔을 창문에 매달고 빨간 코까지 범퍼에 달고 있던 게 아닌가.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나의 반응과 그걸 뿌듯해하던  사람의 표정 그리고 조수석에 놓여 있던 크리스마스 오브제들과 꽃다발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이벤트들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정하기까지 했다. 차로 1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를 두고 살고 있는 나를 위해 그는 주말마다 운전을 했다.

나는 언제나 기차를 타고 그가 있는 곳에 갔고, 그는 마중 나와 나를 맛있는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올라탄 그의  앞자리에는  자주 나를 위한 깜짝 선물들이 놓여있기도 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화장실 가는 길이라며 연락하던 그는 

화장실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

라는 말을 들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바로 하나의 일로 시작되었다.


그와 나는 모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는 근무 패턴을 바꾸어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때였다. 우리는 우리를 만나지 않는 순간에 더더욱이 바빠졌고 힘들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여유를 찾기보다 바쁨을 찾았고 서로의 상황은 무기가 되었다. 누가  힘든지, 누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지 경쟁하는 듯했다.

나는 그때 회사뿐만이 아니라 늙은 강아지와 개인적인 어떤  때문에 특히 예민했었는데,  상황이  사람에게는 그저 하나의 투정 거림일 인듯 보였다. 서로는 서로에게  날카로워졌고 그는 바뀐 근무 패턴에 서울까지 왕복 거리를 운전하는 것에 피곤함을 느꼈다. 아니, 서로가 이제는  이상 봐줄  없었다.

헤어지던 날에  사람은 누구보다 치사했고 누구보다 못난 모습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날에, 생각지도 못한 말로 헤어진  사람은 각자의 삶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법처럼 나는  사람과 헤어진  정확히 3 이후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복지가 탄탄한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업무환경이 자유로워졌고 독립을 하여 생활 또한 자유로워졌다.

내가 3일이라는 시간만  차분히 기다릴  있었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는  3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글쎄,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같다.

나는  이후에  사람에게서 흡수한  시간들을 마음껏 표출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독립적 이어졌고   취향이 깊어졌다. 차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았다.   세련되었고   겸손해졌다. 운전면허를 땄고 드라이브 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서의 데이트도 즐기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함께 걷다 어두운 터널 속에 있었을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터널을 빠져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즐거운 세상을 다시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관계의 터널은 바로 앞에 출구가 있다 해도  한줄기 보이지 못하게 하는 냉정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가 나와 헤어지고 나서도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대부분은)

그는 내가  사람들  가장 당당했고 가장 예민했으며 가장 포기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만난 어떤 사람들 보다도 나에게 있어 입체적이었다. 그저 점으로 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는 하나의 면이 되어  인생의 일부분을 창조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이렇게 일방향적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던 그 연애는, 내가 그 세상에 들어왔을 때 그리고 또 다른 나만의 세상에 들어온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새롭지 아니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세상은 내가 지나쳐온 입구처럼 남을 것이다.

내 세상이 어느 누군가에게 또 다른 입구가 되는 것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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