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탈로스의 탄생
드넓은 초원 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반짝이는 햇살 아래, 여러 사람들이 바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득,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노인이 일어나 대중을 향해 연설을 할 태세를 취했다.
“오늘 토론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네.”
젊은이들 대부분은 경청하기 시작하고,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흙장난에 빠져 있었다.
노인이 기침을 한번 크게 하자, 아이들 중 한 두 명만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흙장난을 계속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네.”
노인 목소리를 높여 다음 문장을 이어갔다.
“나 소크라테스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고!”
대부분의 아이들 또한 흙장난을 멈추고 노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노인 살짝 흡족한 듯 다음 문장을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끝까지 흙장난을 하던 아이가 살짝 고개를 들며 끼어들었다.
“그래서, 인간인 할아버지도 결국 죽는다~라는 거죠?”
노인 멋쩍은 표정 짓고, 한 젊은이가 흙장난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푹 눌렀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아직 너무 어려서. 제가 정말 잘 타이르겠습니다.”
“괜찮네. 어린아이가 참 똑똑하군.”
“죄송합니다.”
“허허,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세. 내가 전하고 싶은 건 다 전했네.”
바위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 하나 둘 떠나고, 젊은이와 아이만 그 자리에 남았다.
“너, 선생님 말씀 중에 갑자기 끼어들고 그러면 안돼.”
“하지만, 할아버지 말씀은 결론이 너무 빤히 보이는 걸.”
“결론이 빤히 보여도, 머리로 생각할 때뿐이지. 그 과정 속에 들어가면 얼마나 복잡한데.”
아이 표정 살짝 찡그리며 고개 갸우뚱했다.
“왜 복잡해? 사람이 죽는다. 그냥 죽는 거 아냐?”
“죽음이라는 건 한 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인생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
“누워서 영원히 자는 거. 그게 죽음 아니야?”
“죽음은 영원히 자는 것과 같지만, 사실, 물에 의해, 불에 의해,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이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 좌우로 흔들며 걷기 시작했다.
“아 복잡해. 물이, 불이 왜 나와 갑자기.”
젊은이 아이를 따라가며 계속 충고했다.
“이보다 더 복잡해. 죽음이라는 건.”
“형.”
갑작스러운 아이의 부름에 젊은이는 하던 말을 멈추고, 곧이어 걸음도 멈추었다.
“왜?”
“인간의 행동이 단순하게 한 문장으로 결정되고 실행된다면 편할까?”
젊은이는 피식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형이 말했듯이, 어떤 과정 속에 들어가면 모든 게 복잡해진다면서. 그 과정들이 그냥 몇 문장만 말하면 끝난다고 생각해봐.”
“하하, 그건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래도, '집 안이 밝아진다!' 하면 저절로 불이 지펴지고”
젊은이 두 손을 아이의 어깨 위에 올렸다.
“그래, 네가 한번 해봐. 주문, 오늘 저녁 시간 전까지 집에 돌아온다.”
“아, 형~!”
걸음을 멈춘 아이는 다음 할 말을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포기한 듯 젊은이에게 말했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해. 요타 보러 가야 돼. 그럼 나중에 봐!”
“그래. 내가 준 주문 잊지 말고!”
“알아. 저녁시간 전까지 갈게.”
젊은이는 농장 쪽으로 향하고 아이는 들판으로 다시 달려갔다. 들판 위를 한참 달리던 아이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숲의 어귀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어~!”
숲 속으로 들어가며, 아이는 한 번 더 외쳤다.
“여-어~! 요타, 어디 있어?’
“여기야, 알파!”
나무껍질이 너덜너덜 벗겨지고 살짝 기울어진 나무 뒤에, 요타가 앉아서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흙 위에 그려진 큰 원 안에 사람 형태와 비슷한 형체가 그려져 있다.
“형의 잔소리가 점점 더 늘어가.”
알파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오늘 수업은 어땠는데?”
“오늘로서, 탈로스에게 넣어줄 주문이 완성된 거 같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요타는 알파를 쳐다보았다.
“말해 줘. 어떤 내용이었는데?”
“사람은 죽는다. 할아버지도 사람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도 죽는다.”
“흠, 뭔가 있어 보이지만, 좀 애매한 걸?”
“탈로스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서 그래. 탈로스는 아직 어리니까.”
알파와 요타는 땅 위에 그려진 요타의 그림을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타 퍼뜩 떠오른 듯 말했다.
“이 주문 어때?”
“어떤 거?”
“사람들은 세상을 만든다. 탈로스도 사람이다. 그러므로 탈로스도 세상을 만든다.”
알파 박수 짝 치며 감탄했다.
“오, 좋다!”
“그런데, 탈로스도 사람이지?”
“사람인 우리가 만들어줬으니, 탈로스도 사람이지.”
원 안에 인간의 형체를 한 탈로스, 탈로스라는 이름, 그리고 주문 세 문장이 쓰여 있다.
날이 어두워지고, 아이들이 떠난 뒤, 둥그런 원 안의 탈로스 혼자 달빛을 마주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파리한 달빛 아래, 인간이 떠난 숲 속은 인간이 아닌 것들이 내는 소리로 가득했다. 어둠 속을 비추는 환한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올빼미의 울음소리, 잔잔한 바람이 만들어내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소리, 한밤중에도 서로 미묘한 경계를 지키는 동물들의 숨소리. 그 한가운데 알파와 요타가 창조한 흙 위의 평면 속 탈로스는 오로지 처량한 초승달의 관심을 받으며 깨어났다.
“나를 만들어 준 사람들. 차가운 원이 떠나고, 뜨거운 원이 돌아올 때, 돌아오는 사람들”
흙 위의 원 속에서, 탈로스는 어렴풋이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고, 미약하게 들을 수는 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평면 위의 탈로스는 무언가를 쥐어 본 적도 없고, 삼차원의 세계에서 걸어 본 적도 없었다. 자유를 느껴 본 적이 없어서, 원 속에서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하지 않았고, 무언가와 쌍방으로 소통해 본 적 이 없어서 고독함이 괴롭지 않았다. 속박이 무엇인지,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인 것이었다. 다만, 탈로스는 그를 만들어준 인간들이 자신을 탈로스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다. 탈로스는 인간들이 만든 자신 또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로스는 인간으로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끝없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나를 만들어 준 사람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나날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사명을 꼭 지킬 수 있기를.”
기나긴 밤이 지나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태양이 떠올랐다. 벌레들의 울음소리, 작은 산짐승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새끼들의 먹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숲 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차가운 원과 어둠이 찾아오고, 뜨거운 원과 빛이 돌아오기를 수 번 반복해도, 알파와 요타는 탈로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탈로스는 처음으로 조급함을 느꼈다. 알파와 요타는 유일하게 세상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였다. 탈로스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명은 알파와 요타의 가르침에 의해 완수될 수 있는 것이었다. 숲 밖에선 모래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모래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던 바위를 덮었고, 사람들이 가축들을 돌보던 평원을 덮었고, 인간들이 떠나버린 평원 위에 살던 다른 생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모래폭풍은 숲 입구 근처 탈로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울창한 나무들에 막혀 탈로스가 있는 곳까지 오지 못하던 바람에 실린 모래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탈로스 위로 쌓이기 시작했다.
뜨겁고 밝은 원도 점차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인간이 아닌 것의 소리마저 멀어져 갔다. 밤새 날린 모래는 숲 속의 넓은 땅을 빈틈없이 덮었다. 지면 위로 쌓인 모래와 지면 사이, 종이 한 장의 두께도 안 되는 평평한 어둠 속에서, 탈로스는 여전히 알파와 요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가운 원이 찾아올 시간이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고, 뜨거운 원이 돌아 올 시간이면 알파와 요타가 와 있을 텐데.”
탈로스는 알파와 요타가 그려 놓은 평면의 원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원 밖을 나가기 위해 시도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 한 번도 스스로의 몸을 움직여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지난 걸까.’
탈로스는 알파와 요타가 숲 속으로 와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탈로스는 우연히 자신의 신체 왼쪽에 힘을 주었다. 평면 속에 누워 있는 자신을 위아래에서 꽉 누르고 있는 모래와 지면의 밀도를 가볍게 무시하며, 왼팔이 위로 한껏 올라갔다. 수많은 모래 알갱이들이 팔을 관통한 것인지, 탈로스의 왼팔이 모래 알갱이들을 관통한 것인지, 탈로스는 빈틈없는 모래와 땅 사이에서 손쉽게 앞뒤로, 양 옆으로, 위아래로 왼팔을 휘두를 수 있었다. 분명히 왼팔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오른팔, 왼다리, 오른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이려고 하는 팔과 다리는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외에도, 탈로스는 자신의 몸통이 모래와 흙 사이에 안정적으로 끼여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탈로스는 깨닫게 되었다. 움직이려고 하는 신체의 일부분은 주변 공간이나 사물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신체의 일부분은 주변 공간이나 사물이 지키고 있는 규칙을 같이 따르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머리를 두세 번 들썩여 본 후 탈로스는 평면 원 안에서, 양 팔을 짚고 몸을 일으켜, 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앉은 채로 몸을 일으키자, 주변은 그가 평소에 보던 울창한 숲이었다. 여전히 머리 아래 몸통은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탈로스는 알파와 요타가 하듯이 기립했다. 그 순간, 탈로스의 몸집보다 약간 큰 회색 토끼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 탈로스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도 전에 토끼는 탈로스의 몸을 관통하여 지나갔다. 회색 토끼가 빠르게 탈로스를 관통하여 지나간 뒤, 그 토끼를 추격하던 사막여우가 엄청난 속도와 함께 탈로스를 뛰어넘어갔다. 이차원 평면 세계에서 온 탈로스는 삼차원 세계의 그 무엇과도 쉽게 충돌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탈로스에게 바로 떠오른 생각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명이었다. 탈로스는 알파와 요타가 만들어 준 원 안에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탈로스는 몸을 돌려 자신이 서 있는 모래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따로 모래더미를 파낼 필요 없어 탈로스의 양팔은 쌓여 있는 모래를 관통했다. 한참 모래 속을 뒤척이던 탈로스는 마침내 자신이 태어나고 지냈던 공간인 둥글고 평평한 원을 끄집어냈다. 탈로스의 몸보다 큰 평면 원은 주변 대기보다 가벼웠고, 그 원 안에 무엇이든지 들어갈 수 있는 무한한 평면 공간이 있었다. 탈로스는 태어나서 처음 본 울창한 숲을 원 속에 담고 싶었다. 자신의 시야 속에 최대한 숲이 가득 담기게 하여, 머릿속 기억으로 남겼다. 머릿속 기억을 담은 채 탈로스는 원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평면 원 속 무한한 공간 안에 울창한 숲이 우거졌다. 이번엔 얼마 동안 자신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던 모래더미를 담고 싶었다. 모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저 위에 뜨거운 원이 보였다.
탈로스는 뜨거운 원을 먼저 담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세상을 더 보기 쉽게 해 주는 뜨거운 원이 울창한 숲이나 모래더미보다 중요했다. 탈로스는 자신의 시야 정 중앙에 세상을 보게 해 주는 뜨거운 원을 담았다. 다시 그 기억을 평면 원 속 무한한 공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공간 안에 태양과 울창한 숲이 있다. 탈로스의 시선은 지금으로서 우선순위 마지막인 모래더미로 향했다. 고개를 턱 쪽으로 끌어당겨 최대한 많은 양의 모래를 시야에 담았다. 이제 외부와 교류를 차단시켰던 모래더미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기억이 탈로스의 무한공간 안에 있다. 그다음 탈로스가 할 일은 알파와 요타를 찾아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터벅터벅 오솔길을 따라 무작정 숲 밖으로 걸어 나갔다. 숲 어귀에서 바라본 세상은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이었다. 탈로스는 모래로 뒤덮인 땅을 한참 걸었다. 차가운 원과 어둠의 시간이, 뜨거운 원과 빛의 시간이 여러 번 지나갔다.
어느 순간, 오아시스가 나왔다. 탈로스는 모래로 뒤덮인 세상과 다른 오아시스의 모습을 담았다. 탈로스의 평면공간은 점점 더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