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한국 밖에서 들어 본 적이 없다.
2012년 대선 이후에 투표 전자개표기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이 무성했다. 은행에서 단순하게 지폐의 수를 세는 기계처럼, 전자개표기가 외부장치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투표용지만 세는 단순한 형태였다면, 해킹이나 조작의 위험에 대해 고려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전자개표기가 컴퓨터와 같은 외부장치와 연결되어 있거나 누군가의 프로그래밍 코드를 기반으로 작동한다면, 프로그래머로서 나는 한 가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자 개표기를 위한 보안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프로그래밍 코드는 단순하게 짜여 있지 않을 것이지만, 전자개표기가 표를 세기 위해 사용하는 알고리즘 부분은 의외로 간단한 형태로 되어 있을지 모른다. 전자개표기를 위한 알고리즘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가정해서 단순화하자면, 투표용지의 1번 후보 자리에 도장이 찍혀 있다면 1번 후보에게 1을 더하고, 2번 후보 자리에 도장이 찍혀 있다면 2번 후보에게 1을 더해 주고, 무효표가 발견되면 지나가는 형태일 것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대학교에서 기본 프로그래밍을 들은 사람도 손댈 수 있을 정도로 단수한 형태이다. 만약에 전자개표기를 해킹하는 것이 가능하고 누군가 전자개표기 알고리즘에 손을 댄다면, 전자개표기는 미묘하게 투표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투표지의 후보 자리에 도장이 찍혀 있으면 상응하는 후보에게 1을 더하고, 매 10번째 투표용지마다 특정 후보에게 1을 더해주거나, 특정 후보의 표를 무효표로 만드는 명령을 프로그래밍 코드에서 한 줄만 넣어준다면, 투표 결과에서 큰 표시는 나지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결과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단순화된 이야기에 단순하게 생각한 주장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2013년 즈음에 대학원으로 세미나 발표를 하러 온 학자들 중에서 전자개표기의 위험성에 대한 주장을 나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최신식의 전자개표기를 사용할 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 쪽을 모두 철저하게 통제할 수 없다면, 수개표를 하는 것이 결과의 공정성을 위하는 길일 것이라는 연구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치면 기계들 중에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기계가 어디 있겠나 싶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동화의 편리함 때문에, 더 큰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와 관련해서, 2017년 대선 후보자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주장했던 내용들을 다시 찾아봤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사물 인터넷망, 자율주행자와 코딩 교육 실시에 관한 공약을 내걸었다. 다른 후보들도 자율주행이나 융합 과학에 관련된 공약을 내세웠다. 모든 공약들이 긍정적이고 힘찬 내용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후보들 중에서 누구도 인공지능의 양면성에 대한 경계는 보이지 않았다. 약간 비약하자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을 시키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겠다는 모습으로 보였다. 모든 후보가 코딩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의미 있는 내용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한 바가 없었다. 아직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 확립된 상황은 아니고, 인공지능 기술을 통한 실질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나의 생각을 한마디 덧붙이면, 4차 산업혁명은 실제로 대중적인 용어는 아니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모두 컴퓨터과학 전공을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교직원이나 학생을 본 적이 없었다. 2017년, 우리나라 대선 후보 공약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서 나에게 각인되었을 뿐, 나에게는 개념조차 모호한 혁명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스마트폰이라는 개별적인 용어가 훨씬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