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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Oct 18. 2024

어떤 재미는 의미를 만든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11)

어떤 재미는 직급을 넘어서기도 한다


“평양냉면 좋아하세요?”라고 시작된 이 모임은 사실 제가 시작한 모임은 아닙니다…만 어느새 제가 총대를 메고 있는 모임입니다. 평양냉면 TF로 개설된 이 모임은 최초로는 모바일 팀장님의 제안으로 시작됐습니다.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자던 모임에 한 명 두 명 자연스레 모이더니, 맛집에 진심인 사람 네 명이 모여 퇴근 후 평양냉면 집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향한 곳은 ‘진미평양냉면’. 평양냉면과 어복쟁반으로 유명한 집이었어요. 


본래 점심을 자주 같이 먹던 모바일팀장님과 모바일 팀원, 앱디자이너분 그리고 기획자분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평양냉면을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디자이너분은 처음 먹는 맛이라며 난색을 표했으며… 모바일팀장님과 기획자님은 ‘일단 먹어보면 잠들기 전에 생각날 것이다-‘라며 계속 꼬시던 장면이 떠올라요. 팀장님과 기획자님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으려 표정은 찡그리지 않았지만 겨우 거절하고 고기만 드시던 그 모습이 참 유쾌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서로 맛과 술에 대해 진심이다 보니 계속해서 먹고 또 먹으며 11시쯤 집에 갔던 것 같아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대화가 이어졌어요. 팀장님과 디자이너분은 연차로 따지면 각각 10년 이상을 업계에 종사하셨지만 편안한 모습으로 대해주셨고, 나이가 그래도 적은 편인 나머지 사람들은 유쾌하게 즐겼습니다. 


그렇게 다들 ‘맛집에 진심’이었던 사실을 느꼈던 탓인지 그 이후로도 달에 한 번은 끝나고 맛집을 가게 됐습니다. 서로 맛집을 올리거나 추천해 주면서 회사 근처의 맛집들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미슐랭 고깃집에서부터 노포까지 넓고도 깊은 곳들을 다녔죠. 다들 취향과 입맛도 맞아 한 번 갔다고 하면 기본 2차, 3차까지 가서 즐겁게 떠들고 오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그 모임에 참여했던 이유도, 지금 나름대로 총대를 메고 맛집들을 추천하는 이유도 나만 즐기던 맛집들에 대한 즐거움을 같이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간 혼자 즐기던 맛집탐방과 네이버에 쌓인 별표들이 이제 함께 즐기는 콘텐츠가 된 거죠. 그리고 거기서 만큼은 서로 조금은 놀리기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고, 장난도 쳤습니다. 


어쩌면 이 즐거움은 부수적인 효과나 이득조차 생각하고 총대를 멘 모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좋은 이야기들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즐거움들을 항상 얻어갔어요. 특히 팀장이라는 직급, 10년 차 디자이너라는 직급등을 넘어 한 사람과 대화하고 즐기는 즐거움들을 얻어갔습니다. 전혀 꼰대스럽지 않은 분위기에서 인생꿀팁부터 시작하여 사내 있었던 일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 공유(를 가장한 험담), 회사 내 가십거리들과 때때 때로 진지한 이야기까지. 같이 이야기할 때만큼은 저도 모르게 친구들과 대화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비록 나이는 다르고, 직급도 다르며, 능력도 다르지만 말이에요.


거기서 저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좋은 이야기들을 듣고, 좀 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연결을 맺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편하게 대해줬고, 저는 그분들을 편하게 대했어요. 그러므로 직급이나 나이는 허물어졌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허물어졌다-고 표현하기보다도 즐거움과 연결 앞에서 그것들이 무색하게 느껴졌어요. 그 힘은 무던하고 익숙히 혼자 즐기던 재미가 어느새 연결을 해나가며 만든 조그마한 일상들이자 단단한 힘이었습니다.


어떤 재미는 전염되기도 한다.


사실 이 재미의 시작은 어느 직원 분과의 대화에서 시작됐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점심시간이 1:30분이었는데, 그 직원분은 매주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갔다가 온다고는 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바로 머릿속에 느낌표가 피어올랐고, 그 느낌표는 곧 행동으로 옮기는 동력이 됐죠.


한강이 좋아 혼자 자취를 하기 시작할 때도 한강 부근에 자리를 잡고, 이후 자취집을 잡을 때도 '한강에 걸어갈 수 있어야만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한강에 진심이었는데요. “날 좋을 땐 혼자 따릉이를 타고 한강에 가요-“라는 말을 들은 저는 바로 실행계획을 생각했습니다. 단, 혼자보단 단연코 여럿이 중요했어요. 역시 모두 함께 하면 더 재밌었으니까요.


그렇게 바로 한강 갈 사람을 모았어요. 대화마다 “혹시 한강 어떠세요?”하고 넌지시 던졌죠. 그렇게 던졌던 점심 한강 피크닉에는 하나두 명 사람이 모였고, 그렇게 2023년 11월 2일 첫 번째 한강모임이 개최됩니다. 시간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한강에 따릉이를 타고 가곤 했어요-‘라고 말하던 개발자분은 출근시간에 샌드위치를 픽업하는 한편, 저는 전날부터 교통편을 알아보았죠.


그렇게 7명이 각각 찢어져 택시를 타고 한강에 갔고 어느샌가 돗자리까지 준비한 피크닉팀은 성공적으로 좋은 날씨를 누리고는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강하게 느꼈던 건 ‘어떤 재미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점이었어요. 단순히 일회성으로만 끝났을 것만 같은 이 한강 피크닉이 문화 아닌 문화가 된 겁니다.


그다음 주는 개발팀이 직접, 그 다다음주는 또 다른 분들이 직접 한강 피크닉을 꾸려 한강을 다녀왔습니다. 회사의 지원이 없어도 돗자리를 직접 샀고, 따로 관리하여 언제든 쓸 수 있도록 보관했어요. 메뉴도 좀 더 다채로워졌습니다. 단순히 샌드위치만 샀던 시행착오를 겪고는 미리 치킨이나 피자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했던 점은 2024년이 되어도 그 재미를 잊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2023년의 추운 겨울이 지나고 2024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강을 떠올렸고 같이 한강 갔던 재미는 그리고 건너 들었던 재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고 다시금 실행하는 하나의 아이템이자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강을 갔고, 지친 회사생활의 한줄기 여유를 누렸어요. 나들이를 다녀온 사람들의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과 무게가 달랐습니다. 가벼워 보였어요.


재미는 의미를 만든다.


제가 이 경험을 겪고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재미있는 모임은 의무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초창기 실패한 모델은 책모임이었어요. 그것도 에너지가 들어가는 책모임이요. 그 책모임은 시도조차 불가능했고,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죠. 말을 꺼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 급박하고도 답답한 시간에 책을 읽고 모이는 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축구’, ‘화요미식회’, ‘한강 나들이’는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내서 진행되었어요. 제가 꽂은 깃발은 꽤 오랫동안 유지됐고, ‘한강 나들이’ 같은 경우는 불이 번지듯 사람들이 그 재미를 공유하고 이어나갔죠. 마치 좋은 상품이나 좋은 물건을 발견한 사람들이 추천하고 추천받는 것처럼요.


이 콘텐츠들은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재미’가 있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계속 세 모임이 지속되길 원했고,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언제 하냐고 묻는 등 계속해서 해당 콘텐츠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화요미식회나 한강나들이 같은 경우, 자발적으로 아이템을 붙이거나 시행착오를 생각하고 변화를 주는 등의 변주를 만들었어요.


자발적으로 모이니 자연스레 편안한 마음도, 좋은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또한 본인들이 원하는 변화들을 넣으니 마음도 열려 모임들도 같이할 마음도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강, 화요미식회, 그리고 축구를 하며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보았던 차분한 신뢰들은 일의 밖과 안의 오묘한 경계에서 새로운 관계와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간 것 같고요.


이쯤 되니, 만약 저 스스로 주도하는 책모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들 열심히 참여는 했겠지만 적용방법, 방향, 목적등이 ‘업무에만’ 적용되는 딱딱한 결론들로 이어졌을 것 같아요. 뿐만 아니에요. 딱딱한 결론으로써 우리는 모두 경직되거나 의무적이 되어 되려 흥과 동기가 더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일이나 삶이나, 우리는 재미가 떨어지면 금방 실증을 느끼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오래 하지 못하고 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이 삶의 일부라면 일하는 공간 역시 재미있어야 그나마 삶도 재밌지 않을까-싶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저는 제 안의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는 말을 따라, 9시간씩 머무는 공간에서 재미를 좀 찾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위기가 생겼어요. 이 재미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했죠. 바로 '의미'의 업그레이드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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