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할 수 없기에 망가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구걸하여 얻을 수도 있고,
거리에서 주워 얻을 수도 있지만,
결코 강탈 할 수 없는 거예요.
-시타르타-
나는 사랑을 강탈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는, 강탈이 아니라 ‘설득’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그를 이해하는지, 얼마나 잘 맞춰주는지, 얼마나 오래 기다릴수 있는지 증명하면—그는 결국 내게로 올 거라고. 그러나 그믿음은 사실 사랑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불안에 대한 미신이었다. 불안은 늘 “노력하면 통제할 수 있다”는 주문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품위를 잃는다. 그의 다정한 말 한마디를 갈구하며 자존심을 꺾는 행위는 구걸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 구걸은 비천함이 아니라,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가장 정직한 심리적 태도다. 내가 가진 모든 사회적 직위와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오직 그에게 존재의 허락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
사랑하는 자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구걸의 언어다. “나를 버리지 마”, “나를 봐줘”, “대답해줘”. 이 모든 말들은 요청이고 간청이다. 그리고 그 간청 속에는 깊은 취약함이 있다.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결핍을 드러낸다. 나는 그 없이 완전하지 않다고, 그가 필요하다고 고백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 아닐까..
강탈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잔인하지만, 그 잔인함 덕분에 사랑은 오히려 망가지지 않는다. 나는 닿을 수 없는 그의 특권 앞에서 무력해지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특권을 더 동경하게 된다. 사랑의 세계에서 그는 명백한 강자이다. 그래서 그는 나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만약 내가 그 특권을 그에게서 강탈할 수 있다면, 어쩌면 나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평등이 아니라 비대칭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가 넘을 수 없는 어떤 높이가 그를 빛나게 만든다.
결국 강탈할 수 없는 사랑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만약 사랑을 강제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타자의 자유로운 의지가 나라는 우연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기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를 묶어둘 수 없다. 오직 그가 내 곁에 머물기를 선택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불확실성이 사랑을 가장 슬픈 도박으로 만든다.
슬픔은 여기서 기인한다.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사실. 이 명확한 진리 앞에서 사랑하는 자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강탈하지 않기에, 소유하지 않기에, 그는 영원히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내 안에서 빛난다. 사랑은 소유의 기술이 아니라, 부재를 견디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