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가는 시선

법칙의 순종자이자 시선의 창조자

by soominC

우리는 때로 삶을 설명해야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을 엮어 하나의 서사를 만든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다만 불완전할 뿐이다. 인과법칙적 시선은 우리에게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이 방식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구조다. 우리는 이 구조 없이는 타인과 소통할 수도, 자신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삶의 어떤 순간들은 설명을 거부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 예술작품 앞에서 멈춰선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그 찰나. 이런 순간들은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아니, 답할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양자역학적 시선이다. 관찰하는 나의 존재 자체가 관찰되는 것을 변화시킨다는 그 통찰. 나는 세계를 파악하는 주체가 아니라, 세계와 함께 생성되는 존재다. 이 시선 속에서 삶은 예측 가능한 궤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능성의 장이 된다.


문제는 우리가 두 시선 중 하나만을 절대화할 때 발생한다. 오직 인과법칙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삶을 과도하게 통제하려 들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 앞에서 무력해진다. 반대로 오직 불확정성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표류한다. 둘 다 삶을 살아내는 방식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시선을 오가는 유연성이다. 때로는 선을 긋고 구조를 만들며, 때로는 그 모든 구조를 내려놓고 순간의 강도에 자신을 맡기는 것.


이 두 시선 사이를 오갈 때 삶은 비로소 입체적이 된다. 인과가 주는 서사적 안정감에 기대어 쉬다가도, 현실이 너무 무거워질 때면 양자적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관찰한다. 고정된 결과란 없으며,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믿음은 숨 막히는 필연성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나는 법칙의 순종자인 동시에 시선의 창조자가 된다.


결국 유연한 삶이란, '무엇이 일어났는가'라는 인과적 물음과 '나는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양자적 선택 사이의 리듬을 타는 과정이다. 과거를 반성할 때는 인과의 엄격함을 빌려오고, 미래를 꿈꿀 때는 시선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두 인식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만이 삶의 비극 앞에서는 의연함을, 평범한 일상 앞에서는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