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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Aug 03. 2023

사랑에 대한 에세이 4 - 보드라운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는 이름이 봉봉이인데, 이름을 부를때마다 통통 튀는 기분이 되라고 오기 전부터 지어놓은 이름이다. 데리고 왔는데 과연 성격도 그러해서 매일 봉봉 뛰어다니는 아이가 왔다. 고양이는 이름 따라 사는걸까? 예전에 키우던 아이는 이름이 쿵쾅이였는데 말그대로 크게 자라서 온 집을 쿵쾅거리고 다닐 만큼 튼튼하게 자랐다. 


나의 첫 고양이는 모모였는데, 모모는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에 친구가 구조한 것을 데리고 온 아이다. 모모는 오렌지색의 고양이로 중성화를 한 후라 귀 한 쪽이 약간 잘려 있었고 찐빵같은 얼굴이 귀여운 고양이다. 내가 가장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처음 만났다. 반지하 집에서 살며 그냥 이유도 없이 하루하루가 힘들던 시절에. 그때 나는 몸은 성인이었지만 스스로가 아이 같았다. 돈도 벌 줄 모르고 내 행동에 책임을 질 줄도 몰랐다.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모모는 엄마네 집으로 들어갔다. 모모는 이제 15살이 되었고, 아직도 그 집에서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 때 내가 못난 보호자였다는 죄책감은 아직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리고 쿵쾅이가 왔다. 당시 남자친구와 같이 지낼 때 데려온 아이인데, 범백에 걸려서 꼬챙이처럼 마른 아이를 누가 구조한 것을 데리고 왔다. 그때 남자친구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조금 멀어져 가는 사이를 어떻게든 봉합해보고자 데려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자꾸 주저하던 나에게,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생명체랑 같이 사는게 싫다고? 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고양이 얼굴만 보러 가려고 했는데, 작고 빼빼 마르고 못생긴 고양이가 파들파들 기어서 남자친구 다리 속에 폭 안기는 바람에 우리는 얼떨떨하게 운동화 박스에 고양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방 두 개 짜리 아파트 바닥에 덩그러니 앉은 새끼고양이가 어찌나 작아보이던지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지나가다 밟으면 어떡하지, 자다가 뒤척거리며 얘를 덮쳐버리면 어떡하지 머리는 살얼음판의 연속이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사랑이 아닌 것으로 사랑을 고쳐 쓸 순 없으니까 그 남자친구와는 헤어지게 됐다. 고양이는 나의 몫이 됐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내가 유일한 보호자라는 생각이 들자 쿵쾅이를 더 사랑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동물병원에 항상 걔를 데리고 다닌 것은 나였다 처음부터도. 그런데 그냥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쩔 땐 사랑을 진짜 사랑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계획하면서, 쿵쾅이와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맨 처음에는 쿵쾅이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약 1년에서 2년 정도, 친구에게 쿵쾅이를 봐달라고 하고 자리가 좀 잡히면 데려가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방 한칸만 렌트할 셈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양이를 데려가는게 현실적으로 무리라 생각했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놀다 집에서 다같이 술먹고 널부러져 자고 갈 때도 항상 잠을 푹 자지 못하는지 일찍 일어나 침구정리를 해놓고 먼저 사라져있던 친구. 친했지만 모든 자리가 아주 편해보이지만은 않았던 친구였는데 희한하게 우리집 쿵쾅이 옆에서는 새근새근 낮잠을 잤다. 아마 그 친구가 낮잠자는 걸 그 때 처음 본 것 같았다. 그 친구라면 쿵쾅이를 잘 보살펴줄 것 같았다. 


출국 5일 전에 미리 쿵쾅이를 보내줄 셈이었다. 원래는 병원에 가려고 가방에 넣을때도 너무 순해서 안 잡혀준 적이 없던 고양이였는데, 그날 아침에는 왠지 잡혀주지도 않았고, 부엌 싱크 밑으로 도망가서 덜덜 떨고 있었다. 얘도 아나봐, 이제부터는 우리는 같이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잠깐 시간을 줬다. 우리 둘 다에게 너무 힘들 일이니까. 고작 삼 분이나 지났을까, 쿵쾅이가 알아서 걸어 나왔다. 나는 아직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사이의 그것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정확하다고 믿는다. 


쿵쾅이는 친구집에 가자마자 긴장해서 코가 분홍색으로 축축하게 젖어 코에서 땀까지 흘렸다. 나는 쿵쾅이가 어떻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너무너무 걱정이 됐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작은 원룸이 너무 큰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그때까진 쿵쾅이가 외롭진 않을까 새 환경에서 잘 적응할까 걱정이 됐는데 정작 혼자가 된 건 나였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잔인한 짓을 하나? 여태까지 느꼈던 진정한 사랑은 쿵쾅이 뿐인 것 같았는데 대체 뭘 얻자고 나는 이민을 가며 이 아이를 떼놓고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그 질문은 그 이후 몇년간 내 마음속에 남아있으면서 나에게 계속 캐물었다. 대체 사랑을 버리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게 뭔지. 


이민 초반기는 코로나가 겹쳐 많이 힘들었다. 그 질문 뿐만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거리들이 수없이 산적해 있었다. 취업, 비자, 졸업, 집,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쿵쾅이를 맡겨놓기로 한 시간인 1년도 2년도 지나고 거의 3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내 집을 구했다.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확인전화를 했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이제 쿵쾅이는 그 곳에 지내는 것이 모두에게도 좋다는 걸. 그래도 그 날은 슬펐다.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내가 못나서 자식을 못 지킨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다시는,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어떤 사랑이 내 인생에 나타나더라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 공간이 생기자마자 봉봉이가 왔다. 봉봉이는 지인의 지인의 집에서 온 아이인데 상처라곤 없고 아주 천방지축에다 목소리도 크고 하고싶은 말도 많고 아주 씩씩한 여자아이다. 밥을 먹을 때 내가 쳐다봐주는 것을 좋아하며, 실내에 인간이 4명 이상 있어서 모두 그녀에게 예쁘다는 찬사를 보내줘야 성이 차는 관심종자다. 내가 화장실에 갈 때 항상 문 앞에서 망을 봐주는 의리도 있는 친구다. 유투브 새 영상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봉봉이에게 “우리 딸” 이라고 한 번 불러봤다. 그리고 바로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보고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싶어서. 나는 세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동안 조금씩 더 나은 부모가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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