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첫 평일은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렇다. 학교와 기관을 다니는 아이들과 엄마에게 1년의 첫 시작은 1월이 아니라 3월이다.
치료실에서 근무할 때에도 1월부터 부모님들과 아이들의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2~3월 초에 정점을 찍고, 점차 새 기관에 적응하면서 내려오는 패턴을 많이 경험했었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몇 달 사이에 새로 등록하는 케이스도 많아진다. 주로 적응 과정에서 발견되는 발달적 어려움으로 치료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
치료사일 때는 간접 경험이었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실제로 체감되는 스트레스가 꽤 높다. 일주일 내내 너무 신경을 써서 정작 주말에는 잦은 배뭉침으로 누워 있어야 했다. 오늘 등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조금 숨을 돌렸다(아직 미취학 연령인데도 이러할진대, 도대체 초등학교 이상 학부모들은 어떻게 새 학기를 맞이하고 있는 걸까!).
첫째 아이는 안타깝게도 저출생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직격으로 맞은 세대에 속한다. 요즘 초등학교 입학인구의 감소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고 있지만, 2019년생 아이를 키우는 나는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아이가 입학한 어린이집 중 두 곳이 폐원했다. 오늘 아이가 등원한 곳도 이전 어린이집이 폐원하고 나서 새로 가게 된 어린이집이다. 아이 인생에 네 번째 어린이집인 셈이다.
아이가 만 2세가 되었을 때 첫 어린이집을 보냈다. 아이가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이라, 가정어린이집은 잘 맞지 않겠다고 판단했었고, 집 근처에 만 5세(7세)까지 다니는 나름 규모가 큰 교회 부설 어린이집을 보냈다. 지역사회에서 역사도 오래된 곳이었는데, 1년 등원 후 폐원 결정이 내려졌다.
1년 남짓이었지만 선생님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었었는데... 초보 엄마였던 나는 첫 기관의 폐원에 놀라고 또 아쉬웠다. 오히려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였던지라 반응이 덤덤했다.
두 번째 기관은 첫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공공형 어린이집이었고, 주택가에 우뚝 솟은 무지갯빛 건물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이곳도 역시 만 5세(7세) 반까지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어 등하원이 쉽지는 않았다. 차량 신청을 하려고 했으나 동선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맘때쯤 나는 복직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직장과 어린이집이 15분 거리라는 점과 연장반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믿고 등록했다. 날씨가 궂은 날이나 추운 겨울철에는 등하원에 애를 좀 먹긴 했지만, 아이는 씩씩하게 잘 다녀주었다.
연고가 없던 타지의 워킹맘으로서, 어린이집은 없어서는 안될 육아 파트너였다. 만 3세부터 만 4세 중반까지 다니다가, 둘째 임신으로 나와 아이가 친정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작별인사를 하게 되었다.
세 번째 기관은 친정 근처에 있는 큰 어린이집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도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유서 깊은 기관이었고, 규모도 매우 컸다. 원래 중도입소는 정원에서 빈자리가 날 때에 가능한데, 다행히 이 어린이집에 이사로 인한 결원이 있어 바로 입소할 수 있었다. 아이도 큰 단독건물에 마당 앞에 놀이터가 있는 이곳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입소한 지 몇 달 후, 그러니까 올해 1월 중순에 갑자기 이곳이 폐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신입생 모집 현황을 지켜보며 끝까지 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름 첫 번째 기관의 트라우마(?)로 인해 가급적 큰 어린이집을 선택했었는데, 규모가 클수록 유지도 쉽지 않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코로나 시기도 버텼지만 결국 몇십 년간 운영했던 기관을 접게 된 원장 선생님, 직장이 한순간에 사라진 선생님들, 새로운 원을 찾아야 하는 아이들...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회의에 잠길 틈도 없이, 3월부터 등원할 기관을 찾아야 했다.
유치원 같은 경우에는 정식 모집 절차가 이미 끝난 상황이라 결원이 없었고, 다행히 근처 공공형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건너, 오늘 아이는 4번째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다.
정말 다행인 점이라면, 아이의 성향상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면서 적응기간이 짧고 분리가 잘 되는 성향이면 그 자체로 양육자의 걱정을 많이 덜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어렸을 때부터 분리만큼은 어려움이 없어서, 1년에 1번꼴로 기관이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적응해 주었다.
다만 이번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는 다소 반응이 달랐다. 이전에는 마치 키즈카페에 가는 것처럼 새 어린이집의 장난감이나 교구 등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자라면서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새로운 어린이집의) 친구들 이름을 모르는데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OT자료에 있던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려주자 조금은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아이의 사회생활은 엄마에게 마치균형잡기 같다. 엄마가 앞장서서 챙겨야 할 때도 있고, 먼발치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어야 할 때도 있다. 비록 의도치 않게 사회적 무대가 몇 번씩 바뀌면서 집에는 어린이집 가방과 원복만 4개가 쌓였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나름의 몫을 다 하고 그 안에서 성장해 왔다. 물론 초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나저나 이번 어린이집이 학교 입학 전 마지막 기관이 될 수 있을까? 마음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정작 아이는 7살에는 유치원에도 가보고 싶다고 한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