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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Nov 16. 2024

가죽 재킷에 도취된 남자,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

오마이뉴스 게재, <디어스킨>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24] <디어스킨>


▲디어스킨포스터엠엔엠인터내셔널(주)

 

여기 자아도취된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헤어지고 프랑스 외딴 시골마을을 찾은 중년 사내 조르주(장 뒤자르댕 분)다.


조르주는 가진 돈을 전부 털다시피 해서 재킷 한 벌을 산다. 100% 사슴가죽으로, 술장식이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산으로 만들어진 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보관상태도 깨나 좋다. 얼마나 비싸게 샀는지 판매자는 대뜸 캠코더를 선물로 안긴다.


조르주는 미친놈이다. 재킷과 그 재킷을 입은 제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여 다른 모든 이의 재킷을 벗기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니 말이다. 재킷을 어찌나 사랑했던지 마치 재킷에 인격이 있는 듯 수시로 대화를 나눈다. 재킷의 꿈은 세상에서 유일한 재킷이 되는 것이고, 조르주의 꿈은 재킷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다.


영화는 조르주가 재킷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벌이는 온갖 일들을 뒤쫓는다. 조르주는 영화촬영을 빙자해 다른 이의 재킷을 모으고 없애는 데 온 노력을 쏟는다. 술집에서 만난 바텐더(아델 에넬 분)가 그런 조르주를 돕는다. 활동비를 대고 그가 찍은 영상을 편집하고 응원을 건넨다.

 

▲디어스킨스틸컷엠엔엠인터내셔널(주)

 

100% 프랑스 부조리극


<디어스킨>은 100% 사슴가죽 재킷에 도취된 사내가 벌이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사건을 다룬다. 제 재킷에 반해 다른 이들의 재킷을 벗기고 없애다 급기야는 재킷을 벗지 않는 이들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을 마치 예술인 것처럼 캠코더에 담고 편집하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고자 한다. 살인은 한 건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으로 벌어지며, 100% 사슴가죽 옷도 재킷에 그치지 않고 모자와 바지, 장갑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이자 컬트적인 부조리극이다. 조르주가 재킷을 사랑하여 다른 이의 옷을 벗기고 마침내는 연쇄살인행각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합리적인 잣대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의 연속이다. 100% 사슴가죽에 집착하고, 모든 행위를 영화로 찍고, 별 의미도 없는 영상으로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그 같은 과정은 도리어 영화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어째서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벌이는가, 감독은 이로부터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부조리한 상황으로부터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의도, 부조리극이 만들어지는 이유이며 가치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어스킨스틸컷엠엔엠인터내셔널(주)

 

도식적인 부조리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


만약 조르주가 인간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해보자. 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취향과 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재킷을 벗기고 괴롭히다 목숨까지 빼앗기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 읽히는가.


카리브해에서 등지느러미만 자르고 몸통은 바다에 버려진다는 상어들과 수출용 새우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동남아시아의 맹그로브숲을 생각한다. 죽이는 시간도 아까워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수천만마리 밍크들과 쓸개에 빨대가 꼽혀 필요할 때마다 즙을 빨리는 곰들을 떠올린다.


조르주와 인간은, 조르주에게 옷이 벗겨지고 마침내는 처단된 사람들과 수많은 안타까운 생명들은 얼마나 비슷한가. 남들에겐 별 의미도 없는 100% 사슴 가죽에 미쳐버린 조르주와 돈을 더 벌겠다며 제 터전을 황폐하게 하는 인간은 과연 얼마만큼 닮아있나.

 

▲디어스킨스틸컷엠엔엠인터내셔널(주)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은 사슴재킷, 그 강요는 부당하다


우리네 일상 속에도 조르주로 환원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의 기준으로 다른 이를 괴롭히고 급기야는 그 삶을 망치는 것들이 말이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 많은 가치가 있을 수 있다지만, 그들 모두를 아우를 만큼 큰 영향력을 갖는 건 언제나 한 둘 뿐이 아니던가.


<디어스킨>은 너무나 도식적이고 일차원적인 나머지 재미가 덜해 아쉽다. 부조리극 특성상 이해되지 않는 인물과 사건들, 급작스럽게 맺음 짓는 결말이 과연 부조리극의 고장인 프랑스 영화답구나 싶다. 아무 곳에서나 칼질을 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피를 튀기는 컬트적 요소로 극복하기엔 취향이 맞지 않는 이들은 깨나 고전을 할밖에 없을 듯하다. 부조리극이나 블랙코미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감독이 줄이고 줄인 것처럼 보이는 77분의 러닝타임도 버겁기 짝이 없을 것이다.


다만 생각하길 좋아하는 이라면, 이미 수없이 나온 주제일지라도 명화퍼즐처럼 차분히 맞춰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디어스킨>만한 영화도 찾기가 쉽지는 않을 테다. 누군가에겐 시시한 퍼즐이 다른 이에겐 흥미진진한 오락이 되는 것이니. 조르주에게 100% 사슴가죽 재킷이 그러했듯.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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