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대하는 베트남의 자세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해외여행을 가면 미술관을 꼭 들른다. 한 사회와 문화,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감수성을 엿보는데 이만한 장소가 많지 않아서다. 이해받고 싶어 발버둥치는 표현, 예술을 읽고 즐기는 맛은 덤이다. 이따금 프레임 너머 작가의 시선을 마주할 땐 미술이 지닌 힘에 감탄하게도 된다. 결국 제 언어를 빚어 통하려 드는 건 미술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특히 동남아 미술은 널리 알려지진 않은 데 비해 그 멋이 상당하다. 미술은 제가 가진 고유의 자산에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이 이뤄질 때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특성이 있다. 지난 몇 세기를 놓고보면 동남아 국가들만큼 풍성한 자극을 맞이한 지역도 흔치는 않은 것이다. 동서를 잇는 말라카 해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중국은 물론 일본, 서구 열강들과 자주 교역했고 프랑스의 식민지를 오래 지내기까지 하였으니 다양한 문화를 겪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던 일이다.


서구 미술을 재해석한 작품도 상당한 수준이다. 베트남식 피카소, 베트남식 모네, 베트남식 르누아르, 베트남식 터너 등이 아류를 벗어난 변형이며 변주까지 나아간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국과 몽골, 프랑스, 일본, 미국 같은 당대 강대국의 침략을 거듭 물리친 나라답게 미술에서도 드센 저항의지와 실용적 변형의 자세가 두루 읽힌다.


그러나 미술이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한층 깊게 마련이다. 전쟁에 나선 군인들, 자식과 남편을 잃은 여인들을 지탱하는 내면의 힘을 섬세하면서도 확실하게 포집해 올리는 건 대단한 솜씨다. 또 전쟁을 겪은 이들의 상처를 은근하면서도 우아하게 어루만지는 작품도 여럿이다. 베트남 미술을 보고 있자면 이들은 정면으로 제 역사를 껴안고 부대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결코 흔하게 마주할 수 없는 것이다.



2022. 9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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