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에 오면 여길 가야 한대서 찾은 거리엔 한국놈들이 바글바글하다. 한국이 잘 먹히는 이 나라에선 한국놈들이 많은 곳에 놀 줄 아는 사람도 많다더니만 대화를 가로막는 음악이며 궁둥이 흔들기 바쁜 못난 여자들이며 삐끼며 잡상인이며 앵벌이며 허세 찌든 여행자들만 가득하여 영 놀 마음이 나지 않는다. 메뉴판엔 싸구려 위스키랑 급 낮은 칵테일이랑 이도저도 아닌 맥주들 판이지만 한국보단 훨씬 싸서 이것저것 시켜보는 걸로 재미를 삼는다. 스트립도 아닌 것이 왜 단상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건지 모르겠으나 보고 있기 민망하여 바깥이나 구경하자고 따로 나가 테라스에 자릴 잡는다.
거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말린 건어물이며 눅눅한 과자를 파는 잡상인들 사이로 애 하나씩 낀 앵벌이들이 만만해보이는 여행자를 붙들고 늘어진다. 그 곁에서 불붙은 막대기에 대고 기름을 뿜어대는 건 초등학교도 못들어갈 꼬마들이다. 술집에 들어앉은 사람들은 해피벌룬인가 뭔가 하는 풍선을 하나씩 들고 멍청한 웃음을 흘린다.
부지불식간이었다. 부채파는 여자 하나가 제 곁에 있던 아이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아이는 그대로 엎어져 팔에서 피가 흐르는데 주변 패거리는 누구 하나 나서지를 않는다. 삐끼며 여행객들은 입 벌리고 보다가는 다시 술 팔고 마시기에 바쁘다. 하긴 어쩌겠나. 여긴 대여섯 먹은 아이까지 앵벌이 도구로 팔려나가는 베트남 최대 도시 사이공의 여행자거리가 아닌가. UN 아동권리협약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비준한 베트남 한복판에서 아동앵벌이가 이뤄지는 건 정부의 묵인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이 거리에서 흥청망청 써대는 관광객들이며 그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게 자랑스런 한국인들이다. 그렇다면 빨랑 취해야지 별 수가 없다. 시끄러운 음악이 공간을 덮고 아이는 눈치만 보던 다른 여자가 채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리는 다시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불쌍한 애들로 채워진다.
딱히 나설 마음도 없었는데 애새끼 뺨따구 후려친 여자가 내게 와서 팔찌를 팔려고 든다. 기분이 엿같아 한바탕 대거리를 하였는데 서로 다른 말로 말하니 뭐가 무언지 모를 노릇이다. 삐끼가 떼어놓아 앉았는데 다른 여자 하나가 다가와 부채 하나를 펼쳐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계절별로 한시가 적힌 것이 제법 쓸 만한 놈이다. 네 편 중 두 편은 소동파와 양만리의 글로 꽤나 유명한 송시다. 다른 두 편은 당나라 문인 유종원과 두목이 썼는데 배움이 짧아 모를 뿐이지 역시 유명한 것일 테다. 마음에 들긴 해도 강매당하고 싶진 않아 주저했는데 선물이라 하고 돌아서니 내것이지 뭐. 앉아서 몇순배쯤 마시다 그 여자를 또 보게되어 불러다 술 한 잔 가격을 챙겨주었다. 부채 장사라면 이렇게 해야지, 주고 받는 멋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또 한참을 마시자니 일행 하나가 나를 찾아 밖으로 나온다. 그가 내 부채를 구경하는데 애새끼 뺨따구 돌린 년이 나타나 그에게 제 부채를 내민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녀석은 좋다고 구경을 하려는데 내가 떼어놓으니 이년이 접은 부채로 내 팔뚝을 몇대 후려친다. 꽤나 아파서 죽통을 돌릴까 싶었으나 남의 나라 앵벌이조직한테 다구리당할것이 두려워 그냥 자리를 뜨기로 한다.
빌어먹을 이 거리에서 얻은 거라곤 부채 하나에 술 일고여덟잔에 시끄러워 피곤해진 몸뚱이 뿐이다. 들어올 땐 보이지도 않던 앵벌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걷는 내내 눈에 밟힌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물건을 사고서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 그게 이 거리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러고 보면 죄다 우연이다. 풀스윙으로 따귀를 맞고 쓰러져 피를 흘리는 아이도, 여기저기서 귀여움 받으며 부채 여럿을 팔아치우는 아이도, 고사리손에 불붙은 막대기를 들고 차력쇼를 선보이는 아이도 모두가 우연의 결과란 말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면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었을까, 그들이 내 세상에 낳아졌다면 또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한다. 말하자면 엎어져 팔뚝 까진 아이가 제 상처가 아니라 과자를 떨어뜨린 데에 더 놀라서는 바닥을 허겁지겁 기어다니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는 것도 죄다 좆같은 우연의 소관이란 뜻이다. 애새끼 뺨따구 후려치는 년보다는 낫게 살아야지 하며 나는 부채에 적힌 소동파의 시나 더듬는다.
하여간 술맛 떨어지는 밤이다.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