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종주국을 만나다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술 좋아하는 나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한국이지만, 한국인이 뭘 마시는지를 생각해보면 참담한 마음이 든다.


한국 술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를 거치며 명맥이 끊겼다. 소주는 증류주가 아닌 희석주로, 쉽게 말해 물에다 알코올을 탄 화학적 제조주다. 첨가되는 당은 싸구려 타피오카 전분을 들여와 쓰니 소주가 한국의 대표술이란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맥주도 마찬가지지만.


술이란 건 제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발효하고 증류해야 멋이 있는 것이다. 결국 술도 곡물로부터 출발하니 원료가 발효되고 걸러지며 덧빚고 끓여지고 숙성되는 이 놀라운 변화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취할 줄 아는 자의 기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논에서 자라는 쌀은 죄다 일본 걸 참고해 연구실서 탄생하니 술을 마시는 재미도 똑 떨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엔 최소 1451개의 쌀 품종이 있었다. 이게 독립 뒤엔 400여종만 겨우 남고 오늘날엔 전체 생산의 0.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맥이 끊겼다. 사실상 청주며 부의주며 소주의 원천들이 단절되기에 이른 거다.


만일 한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때 참고할 만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술과 글과 역사를 아는 이 사이에서 쌀을 원료로 하는 술, 요컨대 청주와 소주의 강국으로 꼽힌다. 그냥 강국이 아닌 소주의 종주국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반도에 소주 제조술을 알려준 나라는 고려 시대 몽골제국인데 농사도 양조도 모르는 놈들이 그걸 어디서 배웠겠나.


고려를 지배한 몽골제국은 대월과 세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대월은 명장 쩐흥다오를 앞세워 이를 모두 개박살내는데 다음 침공을 준비하던 쿠빌라이칸까지 병사하며 아예 남방진출을 백지화하기에 이른다. 이 세 차례 전쟁에서 몽골군은 반도인과 긴밀히 교류한다. 군 진출과정에서 현지 술 제조법을 배우는 건 흔한 일이니 몽골이 당시 곳곳에서 소주를 만들던 베트남의 기술을 배워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려가 몽골로부터 쌀 술 증류법을 배운 게 그 이후니 베트남이 한국과 일본으로 흘러간 소주의 종주국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베트남의 술사랑은 유별나다. 프랑스 식민시대 후반 일본이 베트남을 사실상 지배한 시기가 있었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고 괴뢰정권인 비시정부가 수립된 때다. 이때 일본은 쌀을 전면적으로 수탈하기 시작한다. 밀을 주식으로 삼는 프랑스 점령기엔 없던 쌀 수탈이 베트남 전역에서 이뤄지며 양조장들도 직격탄을 맞는다. 그 식량 넘치는 월나라 땅에서 1945년 한 해만 200만 명이 아사했다니 술이 문제가 아니었을테다.


그럼에도 베트남인들은 술 마시기를 멈추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도 어디서나 쉽게 술을 구할 수 있다. 한국에서처럼 공장이나 대규모 양조장에서 제조한 것이 아니다. 지역 양조장에서 그때그때 빚어 파는 술이 어디나 넘쳐난다. 현지인에게 술을 살 수 있느냐 물으면 페트병에 맑은 술을 내려주는 가게로 옷깃을 끌어당긴다. 음료 전문점이나 식당, 슈퍼에서까지 정수기 같은 것에서 술을 내려주는 일이 흔하다. 아이에게 주전자를 내어주고 “술 좀 받아오라” 시켰다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가 베트남 시골마을에선 일상이다.


베트남어로 즈어우(Rượu)를 달라 하면 다양한 술이 나온다. 찹쌀을 이용한 맑은 청주부터 사과나 바나나 등 과일을 더한 술까지 종류가 넘쳐난다. 재료와 먹는 방식에 따라 수백 종의 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기서 소주며 청주의 산업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소주를 마시는 문화가 노인네며 시골의 전유물이란 편견에 더하여 식민지 프랑스인들이 쌀 증류주인 소주보단 저들에게 익숙한 서양 증류주와 와인이며 맥주를 즐긴 이유가 컸다. 때문에 제품화돼 유통되는 베트남 소주는 쌀을 기본으로 함에도 베트남식 위스키, 베트남식 보드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식민문화가 그들의 전통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기술만 따라준다면 깊이에서 우위를 점할 소주가 위스키며 보드카에게 밟히는 것이 못내 씁쓸하다.


발효주 역시 한국 전통주보다 못하지 않은데도 물이나 음료수 페트에다 아무렇게나 내려주니 나같이 주머니 얄팍한 술쟁이들만 노난 일이다. 이보다 못한 예쁜 병에 담긴 술을 몇만원씩 주고 마시던 내가 베트남을 애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나라에 희석식 소주를 비싸게 팔아치우니 한국이 가히 거상의 나라라 해도 틀리지가 않다. #국뽕이차오른다 #가즈아



김성호

이전 03화홍콩, 베트남, 그리고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