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에서 손님이 와서 "네가 사는 도시를 보여줘"하고 물어올 때 느껴지는 막막함이 있다. 도시란 것은 통시적이며 복합적인 시공간 속에 놓인 것이고, 그 위엔 다종다양한 존재가 모여살고 있어서 말 한 마디, 풍경 하나로 딱 하고 내보이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버릴 것은 버리고 추릴 것은 추려서 상대와 내가 대충 만족할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지만 그런 만남이란 도시의 일면만 대하는 것이기에 한 도시를 제대로 보았다곤 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디에나 더 깊은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시를 대할 때도 표면 아래까지 더듬고자 노력한다. 바로 그 때 찾기 좋은 곳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란 말 그대로 여러 물건을 모아둔 곳이지만, 아무 물건이나 들어갈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개중에서도 도시를 대표하는 시립 박물관은 도시를 가장 효과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골몰하여 전시물을 선정하게 마련이다.
도시를 내보인다는 게 무엇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문화를, 도시를 굴리는 산업을, 그밖에 도시에 대한 이해를 넓고 깊게 하는 온갖 것들을 추려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제 도시를 깊이 이해하는 지식이 있어야 하고, 이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도 가져야 하며, 마땅히 주목해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주관까지 갖춰야만 한다. 즉 방문객의 관심과 제 지식이며 시선이며 주관이 가장 폭발적으로 결합하게끔 준비하는 것이 시 박물관의 본령이라 할 것이다.
내가 '호찌민 시립 박물관'을 찾은 것도 그래서다. 베트남과 사이공에 대해 아는 거라곤 책 몇권에서 읽은 게 전부이고 그마저도 한국에 번역된 것들 뿐이니 제대로 아는 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저들이 제 도시를 소개하는 방식을 접하고 싶었는데 응오딘지엠이 자주 찾은 유명한 건축물을 박물관으로 쓰고 있기까지 하니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엔 베트남의 다른 박물관이며 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벌인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관련 유물이 여럿 진열돼 있다. 인근에 따로 전쟁박물관이 있다지만 전 국토, 모든 시민들이 전화에 휩쓸린 과거를 빼놓고는 사이공의 오늘을 보여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테다. 일단 의도는 알겠으나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어서 이런 전시실은 건너뛰고 지나간다.
전쟁이며 혁명 관련 전시를 뭉텅이로 지나고 나니 남는 게 얼마되지 않는다. 개중 눈길을 끄는 건 역시 바다다. 중세 이후 스스로 바닷길을 폐쇄한 자랑스런 한반도인의 후예로서 베트남 최대도시 사이공이 스스로 국제항인 걸 자랑스러워 한다는 사실이 낯선 감흥을 일으킨다. 사이공은 동나이강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이를 통해 활발히 교역해 큰 부를 쌓아왔다. 대남국에 이어 프랑스가 이 도시를 중심지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늘날까지 사이공 사람들은 수도인 하노이보다 부유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그 기저엔 해운이 가져온 영향이 분명히 깔려 있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해운을 중요하게 다룬다. 나침반과 텔레그래프, 조타기 같은 선박운항장비부터 화물의 수와 성질 따위를 표기하는 목재 비표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의 해운을 알 수 있는 물건들이 여럿 전시돼 있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반도국인데다 분단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이 여적 해운의 가치와 역사를 주목하지 않고 있는 모습에 비추면 자못 현실적이며 진취적인 태도라 할 만하다.
그렇긴 한데 전시 자체는 후지다. 내게 아무때고 사이공에 대해 떠들라 해도 이 박물관보다는 나은 감상을 안겨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다. 위에서 찍어내려보는 시선엔 참신함이 하나도 없고 자부심이며 독립정신 같은 것도 그저 구호만 남은 듯 허망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차라리 같은 시간에 책 한 권을 더 보고 저잣거리를 걷다 술 한 잔 하는 것이 사이공과 베트남을 더 깊이 알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기로 하였다.
돌아가면 서울의 박물관들도 한 바퀴 휘 돌아보아야지 싶었다.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