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베트남, 그리고 커피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나는 홍콩에서 군생활을 했다. 오우삼과 왕가위를, 주윤발과 장국영을, 주성치와 성룡을, 왕조현과 임청하를 그 시절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편한 도시 부대를 마다하고 자원하여 홍콩까지 간 건 거짓말 많이 보태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화천과 철원 접경지대, 버스가 다니는 읍내로부터 아주 한참을 더 올라가야 겨우 얼굴을 보여주는 깎아지른 산 중턱에 우리의 홍콩이 있었다. 15사단 38연대 2대대 7중대 3소대, 우리가 철통 같이 경계하던 격오지 중의 격오지 20소초의 별명이 빌어먹을 홍콩소초였다. 그곳에서 다시 한참을 올라가야 나오는 땅은 홍콩의 섹터라고 불렸다.
팔팔 끓인 물도 오분이면 얼어붙는 그곳에다 어느 정신나간 새끼가 홍콩이라 이름붙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가 홍콩이 어디 붙었는지 모르는 멍청이였을 거라고, 어떻게든 더운 나라를 연상하려는 낭만적인 놈이었으리라고 반으로 나뉘어 토론하곤 하였다.
홍콩에선 잡지 맥심보다 커피 맥심이 귀했다. 누굴 쏘고 죽거나 쏘임당해 죽거나 혼자 죽거나 과로사하거나 동사하거나 운이 좋으면 전역해 사라지거나, 그중 하나 되기 십상인 그곳에서 카페인이든 뭐든 섭취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던 탓이다. 맥심 사오란 말에 커피 말고 잡지를 사오는 등신 같은 놈은 존나게 갈굼당하는 그곳에선 250개들이 커피 한 통도 며칠이면 동나기 일쑤였다. 할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 불쌍한 새끼들은 활자라면 아무거나 붙잡고 읽었는데 커피상자 뒷면 성분표기란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걸 읽고나면 누구나 내게 묻곤 했다. 나머지 원두는 어디서 왔습니까. 그럴 밖에 없는 게 믹스커피 원두 원산지는 온두라스 얼마 콜롬비아 얼마 이런 식인데 다 합쳐봐도 50%를 겨우 넘길 뿐이었다. 그럴때면 나는 대충 베트남일 걸 하고 말았다. 표기하지 않았다면 단가 싼 로부스타 원두를 때려박았을테니까.
요컨대 베트남은 커피의 나라다. 나라 안 어디서나 쉽게 커피(Caphe)와 만난다. 그런데 그 커피가 한국에서와는 제법 다르다. 베트남 주력 원두가 우리가 주로 마시는 것이 아니고, 그걸 또 저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온 탓이다. 젊은층의 서구브랜드 선호 경향에도 카페만큼은 스타벅스도 뿌리내리지 못했단 건 상징적이다.
베트남 커피 문화는 프랑스 식민시대를 거쳐 생겨났다. 제가 좋아하는 건 아무데서나 자랄 거라고 믿던 프랑스놈들은 베트남에서 와인이며 커피를 생산하려 시도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커피도, 와인도 제가 자란 토양을 반영하는 것인지라 프랑스인이 좋아하던 맛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베트남 대부분 지역에선 아라비카가 아닌 로부스타 커피나무만 기를 수 있었고, 이 커피 맛이 너무 강렬했다. 당황한 프랑스인들은 저들이 좋아하는 카페오레, 즉 우유를 타서 마시려 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으니, 베트남은 기후가 더워 신선한 우유를 유통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답이 연유였다. 우유의 수분을 날리고 설탕을 때려박은 연유는 세균 번식이 크게 억제됐다. 보존성도 높은 데다 물을 더하면 제법 우유와 비슷해지니 아열대지방에서까지 우유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연유를 커피에 타서 달달한 카페오레를 만들어 마셨다. 여기에 냉동고가 보급되며 얼음을 섞어 마시게 되니 그 결과물이 오늘의 카페쓰어다다. 카페(Caphe)는 커피, 쓰어(Sua)는 연유, 다(Da)는 얼음이다. 얼음 빼면 카페쓰어농이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진심인 프랑스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유명한 과일, 그중에서도 수분이 많은 코코넛을 커피에 투하했다. 코코넛물을 넣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코코넛 속을 갈아 올리기도 했다. 그게 무엇이든 쓴 커피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특색 있는 맛이 나왔다. 코코넛을 뜻하는 dua를 붙여 카페 두아라고 불렸다.
달걀커피도 우연히 개발됐다. 어느 호텔 바텐더가 카페쓰어다를 주문받았는데 연유가 없어 대신 달걀노른자를 올린 것이다. 이 커피가 대박을 친 덕분에 베트남 카페의 주요 메뉴가 또 하나 늘게 되니, 달걀(trung)을 붙인 카페쯩의 탄생이다.
아무 것도 타지 않은 카페덴농이나 카페다를 마시는 놈은 거의 못봤다. 무튼 베트남 쎈 커피에 달달한 거 섞으면 기 쎄고 마음 뜨끈한 섹시녀 느낌이다. 무조건 아라비카가 로부스타보다 낫다는 무식한 커피쟁이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말하자면 라프로익16년에 카페쯩 한 잔, 선지 넣은 뜨끈한 양평해장국에 친구 한 놈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말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