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시티 아니죠, 사이공 맞습니다

단상

by 김성호

"호찌민시티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어디인가요?"하고 물으니 "사이공에선 전쟁박물관에 가야해요"하고 답한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비슷한 일이 거듭되니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보면 이 도시는 항만도 사이공항(Cảng Sài Gòn)이고 기차역도 사이공역(Ga Sài Gòn)이다. 국제코드 역시 SGN으로 도시의 정체성이 사이공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찌민시티란 이름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국을 물리치고 베트남을 통일한 북베트남이 1976년에 붙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베트남의 역사는 북에서 남으로의 팽창의 기록이라 보아도 될 정도인데, 따지자면 쟈딘(가정)이었고 사이공이었던 남방이 북방과 동일한 문화권으로 합병된 게 겨우 3세기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쟈롱의 응우옌 왕조와 프랑스 식민시대를 거쳐 응오딘지엠의 베트남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남부는 북베트남과는 독자적 길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곳을 점령하자마자 도시 이름을 바꾸고, 그것도 북부 출신 지도자인 호찌민의 이름을 박아넣었으니 남방의 자존심이 뭉개지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이 패했다고 서울을 일성시라고 한다거나 아무리 존경받는 지도자라도 대구를 김대중시티로 명명한다면 그 반감이 엄청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베트남을 통일한 놈들은 그러한 생각에 이르지 못할 만큼 저들의 성취에 도취돼 있었던 듯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하루아침에 레닌그라드로 바꾼 소련놈들처럼 사이공과 쟈딘을 호찌민시티로 만든 걸 보면 말이다. 삼백년 묵은 느티나무에서 하루가 맑았다고 우는 까치를 보며 함민복 시인은 잡것이라 이르지 않았던가. 돌아보니 시인의 말이 참으로 옳다.


베트남은 여전히 북방 출신 인사들이 우세를 보이고 한동안은 그 경향이 두드러질 듯하다. 장단은 통하는 것이어서 통합과 패권의 정치도 과하면 반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호찌민이 살아있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짓을 그 추종자들이 저지르는 꼴을 보자니 같지만 같지 않은 사이비가 어떻게 태동하고 번성하는지를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럼에도 사이공의 민중이 제 도시의 이름을 잊지 않은 건 고무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제 도시의 이름을 되찾았듯 사이공 시민들도 제게 걸맞는 이름을 찾고야 말리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 나는 호찌민시티를 사이공이라 부르려 한다. 그건 내가 본 도시의 빛깔과 향기가 사이공이란 이름과 꼭 알맞기 때문이다. 그럼에 사이공이여, 내가 그대를 사이공이라 부를테니 부디 내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어주오.



2022. 9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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