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베트남 여행기

by 김성호

흔히 사람들은 여행이 낯선 것과의 만남이리라 기대하곤 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어느 여행지든 우리는 각자의 고정관념을 갖고 그곳으로 향하게 마련이니까. 우리는 제가 원하는 걸 낯선 땅에서 확인하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반드시 찾고 싶은 여행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나의 여행은 대개 사람을 향한다. 마음을 울린 몇명의 인간이 나를 낯선 땅으로 이끄는 탓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찾아 거제부터 목포까지 남해안을 돌아볼 때도 그러했다. 헬무트 슈미트가 묻힌 함부르크 올스도르프 공원묘지에서 하루를 지냈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찾아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몸을 싣기도 했다. 그 끝에서 만난 건 결국 삶과 갈라진 죽어버린 것이었으나 그래서 더 가치 있는 무엇을 알게 됐단 걸 잊지 않으려 한다.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를 하나만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베트남을 들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중일 동북아시아 삼국을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가운데서 좀처럼 가까이 할 수 없는 이질적 요소를 마주할 때가 적지 않다. 그건 그들이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리와 다른 입장에 놓여왔고 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화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낼 수 있었던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두 바다를 지배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겪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순간 한국과 다른 결정을 내렸으므로 그들의 선택과 결과를 되짚어 보는 건 역사를 이해하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는 베트남에서 몇가지를 보길 원한다. 남북을 통합하고 분열의 가능성을 억누르며 오늘의 베트남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체험하길 원한다. 남부 사이공부터 북부 하노이까지를 교통의 근간인 철도로 종단하며 한국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는 중부의 두 도시 뀌년과 다낭도 들를 것이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맹호와 청룡이 상륙한 두 도시의 오늘 가운데 옛것과 새것, 못한 것과 나은 것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피려 한다.


쩐흥다오, 보 따인과 부이 티 쑤언, 레 반 주엣, 호찌민과 같은 영웅들을 베트남이 어떻게 기리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천하를 호령하며 만수를 누리거나 장렬히 산화하여 잊혀져버리거나 무덤이 파헤쳐지고 평지로 밀리거나 박제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게 된 그들의 오늘에서 베트남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베트남의 오늘을 내가 찾는 건 그곳에서 그들이 나고 살았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영웅이 있었다면 그 사실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무엇보다 죽은 영웅은 때로 산 자들보다 좋은 벗이 되고는 한다.


위대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 프리드먼 엔드레 에르뇌도 여기서 죽었다. 전 세계 전장을 오가며 종군기자의 전설이 된 그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헝가리부터 독일과 프랑스를 거쳤으나 어느 곳도 고국이라 하기는 부족했던 이 사내를 가장 잘 기리고 있는 곳이 베트남이란 것도 기억해둘 만 하다. 두 차례 전쟁에서 사망한 세계의 언론인만 수백에 이르니 카파가 오직 그 하나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베트남은 또한 맛의 나라이며 한 세계 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식민지배와 공산지배조차 짓밟지 못한 거센 기세가 자리한 땅이다. 굴하지 않는 민중의 힘이 끝끝내 분출하고 예술과 문학으로 비어져나오는 곳이다. 좋은 물과 쌀도 넘치는 곳이니 소주의 종주국이란 소문에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어디나 술이 있는 곳엔 풍류와 낭만도 있게 마련이다. 그것만으로도 기대가 크다.


반도 제일의 명산이라 하는 판시판산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칠 것이다. 높은 곳에선 언제나 귀한 것을 만나리란 기대가 있다.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