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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부단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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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오늘의윈디 Oct 01. 2023

오늘의 에너지는 0입니다.

다른 이들보다 충전시간이 좀 더 자주, 오래 필요합니다.

아무리 쉬어도 금방 방전되는 오래된 배터리 같다.

예민한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자극이 더 민감하고, 깊숙이 다가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에이,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신경 쓰냐. 진짜 너도 피곤하게 산다."라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리 쉽게 넘길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세세한 것들, 작은 소리를 하나의 뭉치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 자동으로 세세히 쪼개 하나씩 살펴보고, 분석하며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의 실타래를 엮어 놓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졌지?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불편한 게 있으신가?', '놀이기구에서 탄내가 나는데? 운행을 멈춰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지?', '밖에서 별로 친하지 않은데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이야기하지? 내가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 안 마주치게 조심해야겠다.' 감정과 생각의 공감을 잘하고, 오감이 좀 더 발달해 있기 때문에 예고 없이 흘러들어오는 대부분의 감정과 감각이 불편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상황들에 미리 대처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거나 회피하려 싶어 한다.

이런 피로와 긴장감에 두통을 자주 느끼고, 어깨는 뭉쳐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끝없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고, 엉킨 실타래가 가득하여 뇌의 과부하를 일으키는 것이다. 수명이 다다른 배터리처럼 순식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간다. 나름의 충전방법이라 함은 살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을 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긴장과 스트레스, 힐링, 그리고 회피가 필요할 때, 침대의 힘을 빌린다. 누군가는 게으름의 극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나 근육을 이완시키는 누운 자세를 통해 지친 내면을 돌보는 시간이다.

< 예민한 사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은 습관 >의 저자 니시와키 슌지는 DOES지표로 예민한 사람들의 특성을 정리했다. 1) 복잡한 생각과 사려 깊음(Depth of processing), 2) 과잉 자극(Overstimulation), 3) 감정이입과 공감성(Emotional reactivity and high Empathy), 4) 예민한 오감(Sensitivity to subtle simuli)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 어렵습니다.

시각적인 정보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 타인에게 세심히 신경 쓰고, 지나친 배려를 제공하는 경우, 상황 하나하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 등 게임에서 장애물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예민한 사람들에겐 도전이고, 마주치면 피로도가 적립되는 구조이다.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 후, 버스를 타고, 옆동네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등굣길 버스정류장을 보고, 많이 놀랐다.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이 한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주춤주춤 뒷걸음치는 나를 보고,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이거 안 타면 학교 늦어." 말을 툭 뱉고, 군중들을 헤쳐 버스에 올라탔다.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지만 그 후론 좀 더 일찍 나오거나 친구네 차를 함께 타고 등교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흔한 동네카페에 혼자 가지 못했다. 아무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데 타인의 시선, 카페에서 일어나는 낯선 자극들을 감당해 내기 어려워했기에 더 집 안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주위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 후, 내 행동을 산출하기까지
겉으로 보기엔 아무 조치도 안하고 째깍째깍 움직이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머릿속을 보여줄 수 있다면 1로 시작해 10000배로 불어버린 생각뭉태기를 보여주고 싶다.
복잡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분 매초 생각을 처리해내느라 행동으로 결과가 나오기까지 더딘 것 뿐이라고.

사람의 머릿속을 열어 생각을 볼 수 있다면 예민한 우리를 조금은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까?

살면서 조금 더딘 행동에 힐난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 반면
멈추지 않도록 이해해주고, 손을 내밀어주신 분들이 있다.

힐난과 이해 사이,
그 당시엔 쏟아지는 힐난에 지치고, 우울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기에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버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