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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윈디 Oct 18. 2023

자유분방한 나의 마음, 정리가 어렵습니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나의 마음을 나타낸다.

예민한 감각 덕분에 머릿속에 다채로운 잡생각을 가진 나는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당장 코 앞에 놓인, 해야만 하는 강제성을 띈 환경일 때는 어찌어찌 일의 마무리를 지어보지만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한 것 마냥 한 번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분산하여 쏟는 것에 벅차하기 때문이다.



일을 완료했으면 된 거 아닌가?

단점은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강제적 환경일 때만 이루어진다는 것.

강제성이 없는 환경일 때가 문제다. 1부터 3까지의 일이 있으면 1을 하다 2와 3이 생각나고, 스스로 제조한 다른 걱정과 불안 덩어리가 엄습하면서 금세 손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리고선 몸의 긴장과 불안을 푼다는 핑계로 침대 혹은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전형적인 작심삼일형 인간이기에 심심치 않게 일을 마감기일까지 미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은 점점 쌓여가는 물건들에 제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정리정돈과 담을 쌓은 방과 마주할 수 있는 저녁과 주말.

퇴근 후, 밀린 서류를 해치우거나 야근으로 인해 곧장 누워서 자고 싶은 날이 많기에

흐린 눈을 하며 정리는 기약 없는 내일로 미뤄버렸다.

무언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는 듯한 나에게 실망하고, 무기력해지며 가끔은 질려버릴 때도 있다.


그리 많이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이번주에는 고생했으니까', '스트레스받아서 기분이 안 좋으니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주문한 부피만 큰 물건들이 가득 메워질 때면 새로운 스트레스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주말이면 빽빽한 물건들 사이로 도망치듯 나와 종종걸음으로 밖을 향한다.

마음 한 편에 '아.. 정리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잠시 구석에 밀어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편한 마음이 정리될 리가 있나.


결국 머무는 공간이 내 마음을 비춰준다는 것.

어차피 대면해야 할 과제를 피하고, 미뤄 스스로를 더욱 산만하고, 초조하게 만들게 된다.

알면서도 정리되지 않는 방을 놓아둔다는 것은 엉망이 돼버린 나를 방치해 두는 것과 같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 방은 쉬이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완벽한' 정리 대신 정리 '완료'를 목표로

시작이 어렵지 한 번 제대로 마음을 먹으면 뭐든 진심으로 임하는 편이다. 몇몇의 사람들이 그렇듯 정리를 하다 보면 추억물품도 구경하다가 다른 건 정리도 못하고 끝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정리를 어려워하는 내게 어린이집 근무는 정리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린이집 일과 중 놀이시간과 함께 붙어있는 정리시간이 있다. 놀이가 끝나기 10분 전, 어린 영아들에게는 "우리 10번 더 놀이하고, 정리하자~!", 시계를 볼 줄 아는 유아들에게는 "OO반~ 긴 바늘이 10에 가면 정리해 보자." 미리 정리에 대한 언급을 해준다. 아이들도 충분히 자신의 놀이시간을 가지고, 정리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한 정리시간이 되면 정리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은 놀잇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 중에도 신속정확하게 자신이 놀이했던 놀잇감을 정리하고, 다른 친구들이 놀이했던 놀잇감 정리를 도와주는 아이, 자유놀이시간이 더 필요한지 놀이를 지속하는 아이, 놀이하던 놀잇감을 내려두고, 다른 곳에 가서 친구랑 이야기를 하면 장난치는 아이로 나뉘게 된다.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고, 정리정돈을 할 수 있도록 기본생활습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하기에 정리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다양한 방법이 등장한다. "오늘의 정리대장은 누구일까?", "우리 이번엔 빨간색 놀잇감 정리해 볼까?", "얘들아~! 이 놀잇감이 집을 잃어버렸대. 집 어딘지 아는 친구~?", "오늘은 선생님이 정리를 더 부지런히 하는지~ OO반 친구들이 정리를 더 부지런히 하는지 시합해 봐야겠다. 준비~ 시작!"


마치 게임처럼 아이들의 재미와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선생님 오늘은 내가 정리대장인 것 같은데요?", "빨간색 다 정리했어요! 이번엔 초록색 정리하는 거 어때요?", "어? 나 자동차 집 어딘지 아는데. 여기잖아요." 그중에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방법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합이다. 몇 번 이야기해 주었더니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선생님이 빨리 정리하나~ 우리가 빨리 정리하나~ 시합해요!", "아니야 오늘은 남자친구가 먼저 정리하나 여자친구가 먼저 정리하나 하자요!"


정리정돈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놀잇감 하나라도 제자리를 찾게 되면 폭풍칭찬과 함께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을 해준다.


사실 그 응원은 은연중 나에게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활주제마다 놀잇감을 바꿔주고, 관련 놀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월별박스를 꺼내고, 놀잇감 보관장소에 가서 빽빽이 쌓인 놀잇감을 뒤적뒤적 원하는 놀잇감을 찾으며 다 사용한 놀잇감은 그때그때 정리를 해야만 한다.


우리 집에서는 바로바로 정리하는 게 왜 그리도 어려운지. 이 고민의 끝은 퇴사 후,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고 나서야 방 대청소가 시작이 되었고, 그 후엔 대청소까지 가지 않기 위해 조금씩 물건들이 자기 자리를 찾도록 아주 조금씩 그때그때 정리하는 습관도 자리 잡게 하려 노력했다.


아직도 잠깐사이에 물건들이 쌓일 때도 있지만 내 방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를 하는 동안 타인을 대할 때 생각하던 '예의', '존중', '배려'를 나한테는 실천한 적이 있었나? 그동안 스스로를 많이 돌보지 못한 기억들만 떠올랐다.


결국 정리는 그토록 내가 원하던 마음의 여유를 얻는데 한 가지 방법임을 이제야 체득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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