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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윈디 Oct 22. 2023

매일 해내야지만 꾸준히인가요?

나의 꾸준히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부단함입니다.

나는 살면서 총 4번의 마라톤에 참여했다. 참여사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 5km 마라톤은 멋모르고 부모님을 따라서 참여했다. (완주시간 : 38분)

두 번째, 5km 마라톤은 내 의지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마라톤에서 쉬지 않고 달려 결승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완주시간 : 32분)

세 번째, 작년에 참여한 5km 마라톤은 잦은 야근을 핑계로 연습을 못했지만 5년 만에 참여하는 마라톤이기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완주시간 : 34분)

네 번째, 내 한계를 깨보고 싶어서 10km 마라톤을 지난주에 참여했다. (완주시간 : 5km 29분, 10km 63분)


마라톤은 우리네 인생을 시각화로 형상화한 것만 같다.

첫출발은 모두 속도를 내며 발을 힘차게 구른다. 처음엔 앞선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배가 당기고, 숨이 가빠 오면서 점차 나와 맞지 않는 속도임을 깨닫게 된다. 잘못된 체력안배는 결승지점과 멀어지는 지름길임에도 세 번째 마라톤까지는 내뱉는 호흡, 속도, 자세도 규칙적이기보다 내 마음대로 달렸다.



나의 속도 + 앞서 가는 사람의 속도 = 페이스 오버

앞을 보고 달리다 보면 금세 숨이 차오르고,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마라톤까진 가빠지는 숨을 멈추고 싶단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오히려 뛰다가 걷는 것이 더 힘이 든다. 세 번째 마라톤에서 1km를 남기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열이 확 뻗치면서 두통을 동반하여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세 번의 마라톤을 통해 앞서 뛰어가는 사람들만 보고 달리면 몸보다 마음이 앞서 금방 지치고,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번째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할 때, 해방감을 잊지 못한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며 쌓인 스트레스와 걱정, 근심이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온통 나와 현재에 집중해서 달린다. 완주했을 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다음 네 번째 마라톤까지 1년이란 공백 속, 나를 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근간이 되어주었다.



네 번째 마라톤, 욕심을 덜어내다.


네 번째 마라톤, 첫 10km 참여에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완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2023년의 내 원씽은 체력증진이었고, 커다란 두 가지 목표는 브런치 공모전과 마라톤 10km 완주였다. 나름 내게 올해의 빅 이벤트인 셈이다.


올해 3월 첫 퇴사 후, 아빠와 함께 새벽 5시 30분 집을 나서 꼬박 4개월간 1시간 30분씩 헬스장을 처음으로 다녀봤다. 백수가 된 후, 크게 신경 쓸 일도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기에 운동이라도 안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장마를 핑계로 나가지 않은 이후에서야 아침운동을 꾸준히 다닌 3월, 4월, 5월, 6월의 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알바를 시작하면서 헬스를 안 다닐 땐 퇴근 후, 집 앞 하천을 따라 5km씩 달리기를 연습했다. 연습하는 날도 들쑥날쑥하고, 5km를 10분 단위로 달렸다 빠르게 걸었다 반복하는데 지쳐 '내가 과연 1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반팔에서 긴팔로 넘어갈 때 쯤, 대회 아침날이 밝아왔다.


전날 목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완주가 아닌 '쉬지 않고, 달려서 완주해 보기'다. 처음 도전해 보는 미지의 세계였기에 '하.. 이게 가능한 건가..?'의심이 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해봐야지! 살짝 긴장했지만 출발 전, 1km 달리기 연습으로 긴장감을 풀었다.



앞이 아닌 함께 달리는 내 그림자를 보며 달리다.

그동안의 마라톤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기에 급급했다.

앞이 아닌 옆을 보고 달리는 건 어떤 점이 다를까?


1km까지는 아빠와 함께 달리고, 그 이후에는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려 결승선에서 만나기로 했다. 3km까진 앞서질러가는 사람도 있고, 달리다 지친 사람을 지나쳐 내가 앞서기도 하며 엎치락뒤치락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복식호흡이 불안정해지자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왼쪽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쉼 없이 달리는 내 그림자가 보였다. 4km 지점쯤 갔을 때, 이미 반환점을 돌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아빠에게 "아빠 파이팅!"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이 제공되는 급수대, 5km 반환지점을 찍고, 돌아서서 달렸다. 점점 지쳐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나는 의지가 있다.", "나는 부단한 사람이다." 중얼중얼 혼잣말로 외쳐본다. 비장의 무기 부스터를 중간중간 써보기도 했다. 나의 부스터는 양팔을 V자로 드는 것이다.


승자의 자세를 들어보았는가?

승자의 자세의 유래는 이렇다. 마사이족 사냥꾼들은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먹이를 먹는 사자에게 다가가 양팔을 크게 뻗어 몸집이 커 보이는 동작을 취한다. 겁먹은 사자는 일단 도망가고, 나중에야 속았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이, 마사이족은 동물의 사체에서 좋은 부분을 잘라내어 가족들의 식량으로 가져가 생존을 유지한다. ‘승자의 자세’는 일종의 ‘힘의 자세’로, 2010년 에이미 커디와 동료들이 후에 논란이 된 하버드 대학교 연구를 통해 만든 개념이라고 한다.

욕심을 덜어내고, 부단히 뛰어본 결과는 놀라웠다.

출전하기 전, 하천에서 러닝연습을 하다 5km도 힘든데 10km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종종 아빠에게 장난 삼아 "아~ 아빠 10km 안 되겠는데? 전화해서 5km로 바꿔달라 해야겠어~"이야기하곤 했는데 스스로 해낼 줄 몰랐다.


오히려 작년에 1km를 남기고 쉬다 걷다를 반복한 5km보다 10km를 쉬지 않고, 부단히 달려 결승선을 넘어 도착한 것이 덜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작년에 결승선을 넘어서고 느꼈던 성취감과 해방감을 대신 고른 숨을 내쉬며 금세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할만한데..? 뭐지?'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달리는 것이 습관이 됐을 때, 이런 느낌이구나. 아무렇지 않게 달릴 수 있는 거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달리며 내뱉은 말 그대로 '나는 의지가 있는 부단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준 덕분에 10km를 완주할 수 있었고,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었다. 이번 마라톤을 계기로 작심삼일형 인간인 나는 다소 지키기 어려운 매일의 '꾸준함'보다 단발적인 하루, 이틀을 잇는 '부단함'을 키워보기로 했다.


남들보다 초라해 보이고, 나 자신이 못나 보일 때가 있다.
비교는 끝이 없고,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날카롭기 그지없다.

현상과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걸 해석하는 건
그 순간의 내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자기 파멸적 대화를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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