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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Sep 29. 2021

엄마는 지옥이었다(2)

애착관계의 부재가 만드는 회피형 인간

상담실의 카우치는 안락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선생님은 인자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었기에 나도 속에 있는 깊은 얘기들을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을 꺼내는 건 싫었다. 오랫동안 나만 간직하고 있었던 비밀이었고 그걸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말로 정확히 표현이 되지 않아 실제 단어로 만드는 데는 꽤 힘든 노력이 필요했다. 그냥 살아도 문제없는데 굳이 이렇게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야 하는 건지 거부감이 들었다.


'사실은... 어릴 적 칼을 들고... 안방 문 앞을 서성인 적도 있었..어요'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 헛구역질이 계속 나오는 것 마냥 무언가가 걸려서 나오질 않았다. 계속 얘기해볼 수 있을까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다시 말했다.


엄마는 끊임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의 자존감에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다. 어릴 적 장래희망 숙제에서 '만화가'를 적은 것을 보고는 엄마는 말없이 '판사'로 고쳐버렸다. 판사가 뭘까? 분명히 뭔가 흥미롭고 대단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엄마가 이렇게 나의 팔을 꺾어가면서 억지로 고쳐 쓰게 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루는 내가 몇 년을 모아둔 잡지책이 모두 사라졌다. 매달 용돈을 받으면 아껴서 게임 잡지를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삶의 이유였는데, 그것이 모두 사라졌다. 울며 잡지를 찾는 나에게 엄마는 버렸다고 말하며 그런 것좀 보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화를 냈다. 엄마는 의미도 이해 못할 잡지책들이 엄마를 화나게 했던 걸까요? 얼마나 내가 더 망가져야 엄마는 만족했을까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손찌검이 일상이었다. 나이가 들고 키가 커지면서 회초리보다는 손을 썼다. 구레나룻을 잡아당기거나 주먹을 세워 머리를 찍거나 뒤통수를 치는 식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한 번은 주먹이 나갈 뻔한 적도 있었다. 제발 머리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살인 충동을 느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일기장에 적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소심한 아이가 되어갔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며 말 좀 하라며 놀렸다. 보는 사람들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얘는 말이 없는 애예요 말 안 할 거예요'라고 이미 단정 지어 버렸다. 누구보다 말이 많고 장난기 많았던 나는 그 뒤로 말을 잃어버렸다. 그 트라우마는 아직도 남아서 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말을 안 하면 불안해지는 강박이 생겼다.


좀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엄마는 음악 하는 내가 싫어졌던 모양이다. 급식비를 아껴 산 기타가 집에 와보니 사라졌다. 몇 날 며칠을 찾아도 없어진 기타를 엄마에게 물어보자 숨겼다고 대답했다. 나는 힘으로라도 뺴올 생각이었으나 어딨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죽이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이 삶의 목적인데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나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행복을 진정으로 방해하고 내 삶을 파괴하는 사람이라면 없어져야 하는 게 맞는 길이 아닌가?


떨리며 얘기하는 나를 선생님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패륜아가 된 듯한 기분에 미안함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 아들이 부모를 찔러 살해한 기사를 봤는데 나는 그게 너무 이해가 되더라, 라며 입술을 꽉 깨물며 한 번도 얘기하지 못한 말을 꺼내놓았다. 그 기사를 봤을 때 나는 그 당사자로 빙의한 것처럼 그 사람의 머릿속 생각과 단어 하나하나까지 떠올랐다. 마치 그가 된 것처럼. 사건 당시의 상황, 기분까지도 몸으로 느껴졌다. 그는 또 다른 나였다.


이제는 조금 편해진 건지, 아니면 이런 얘기를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선생님의 모습에 승리감을 느낀 것인지 나는 더 깊숙한 얘기까지 털어놓게 되었다. 저는 성교하는 꿈에서 상대방이 가끔 엄마로 나와요. 몸은 엄마가 아닌데 상황 속에서 나는 이 사람이 엄마라는 걸 느껴요. 그리고 꿈에서 깨고 나면 아련함과 죄책감이 밀려와요. 도대체 이건 이유가 뭐죠? 전 칼을 들고 안방 문 앞까지 갔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 그런 나쁜 녀석인데 왜 꿈에는 엄마를 찾는 걸까요, 허탈하게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얼굴은 발개져서 상기되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있었다. 선생님은 프로이트와 융의 어떤 심리학 이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의 이런 헝클어진 마음을 학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로를 주었다.


어릴 때 학교 마치고 비가 오면 교문 앞에서 부모님들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찾고 있어요. 누구야, 누구야 하면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근데 엄마는 없었어요. 마지막 남은 친구랑 둘이서 기다리는데, 그 친구 엄마도 왔어요. 엄마 안 오면 같이 갈래?라는 말에 나는 화를 냈어요. 우리 엄마는 올 거야. 몇 시간을 기다렸어요.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무도 안 볼 때 장대비를 뚫고 혼자 집에 갔어요.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어른이 다됐다며 칭찬해주었어요.


그 뒤로 비가 와도 절대 엄마를 부르지 않았어요. 그게 내가 받은 유일한 칭찬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엄마는 얘는 비가 와도 안 와도 된다고 하는 애야,라고 하더군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엄마는 몰랐겠죠. 나는 어른이 아니었는데. 그때 엄마가 왔더라면, 우산을 들고 기다려주었다면 나는 엄마를 위해서 뭐든지 다 했을 텐데.


절대 쓰지 않을 것 같았던 상담실 책상 앞 휴지가 왜 이곳에 있었는지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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