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이 달라진 심리상담
상담과 상담 사이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의 틈이 있었다. 첫 상담을 시작했던 초봄, 아직 꽃이 피기엔 조금은 일렀던 시간을 지나 두 번의 상담을 거치니 세상은 녹음으로 가득 찼다. 벚꽃잎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안양천의 퇴근길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상담을 마친 밤이면 반은 후련해진 마음으로, 반은 못다 한 말들을 안고 총총걸음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시 다니던 회사와 집은 도보 20분 거리로 가까웠고 상담소는 회사 바로 옆 건물에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상담소를 들어가는 것이 회사 사람들에게 발각될까 봐 군사 보안 작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다. 식당가도 많은 건물이었기에 혹시라도 마주쳤을 경우 웃으며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는 계획도 짜야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문제가 있는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첫 입사를 하고, 이렇게 큰 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음에 자랑스러웠다. 또한 내가 원했던 직종이며 기업이었다. 모든 것이 밝고 장밋빛 미래만 꿈꾸던 시절이었다. 신입사원 연수, 인턴 모두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그러나 정식팀에 배치받고 나서부터 그 모든 미래는 깨지고 어둠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회사는 공채와 비공채로 나눠져 있었다. 공채는 4년제 대졸이었고 비공채는 고졸과 초대졸을 뽑았다. 학력과 나이도 달랐고 서로 맡은 바와 업무도 달라 사실상 남남에 가까웠다. 그러던 것이 조직 개편으로 이들이 한 팀에 배정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서로 같아질 수 없는 이들이 한 팀이 되고 업무가 같아지면서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비공채 출신들은 공채 출신을 미워했다. 팀이 같아지면서 업무는 동일해졌는데 급여와 진급은 공채가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공채 출신들도 불만이 있었다. 나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공채 출신인데 왜 비공채 출신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지, 공채가 왜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갈등이 이어져 오다 폭발할 쯤에 들어온 마지막 공채 출신이 나였고, 나는 이미 곪아버린 양쪽의 모든 울화를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비공채 출신들의 미움을 받아야 했고 아무 합의도 없던 채로 공채들의 편이 되어야 했다. 어느 쪽의 지시도 무시하기 어려웠던 나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말하지 못하고 입에서 맴돌던 화는 나를 삼켰고 나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무슨 말만 해도 말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거다, 이건 돌려서 말하는 거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이름만 불러도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A를 말하면 A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B, C, D... Z까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
선생님은 사람은 세상을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며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선글라스나 안경을 끼듯이 무언가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그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틀이다. 이 틀은 오랜 기간 만들어진 나의 가치관이나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데 때로는 짧은 시간 강한 충격으로 인해서도 이 틀이 변형될 수 있다. 이 틀이 변형되면 변형된 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당시 나는 '뭐해요?'라는 말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뭐가 화난 거지? 내 업무에 실수가 있었는데 그걸 돌려서 얘기하는 건가? 실수했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잘 받아들여질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면 혼날까? 이런 식의 수 만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정작 타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내 생각을 타인의 말에 얹어버린 것이다. 말이 말로 안 들리니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이 왜곡되어 보이고 들렸고 나는 점차 미쳐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고는 어렵겠지만 사람들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보자고 했다. 휘어진 틀을 바로 잡는 과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상태에서 계속 나를 방치했다면 조현병이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공격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점차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내 머릿속의 생각을 의식적으로 읽어내려 노력했다. '안녕'이라는 말에는 '너는 왜 아직도 출근하고 있니? 퇴사 안 했니? 너 같은 애만 없어도 우리 팀이 잘 굴러갈 텐데'를 떠올렸고 '이거 했어?'라는 말에는 '내가 너 모든 업무를 다 뒤져봤고 지금 난 모든 걸 알고 너를 혼낼 참이야, 넌 오늘 죽도록 혼날 거야'를 떠올렸다. '집에 안 가?'라는 말에는 '일도 못하는 애가 자리는 왜 축내고 있대? 집으로 꺼지던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를 떠올렸다.
그런데 내 선글라스를 벗고 다시 바라보니 안녕은 정말로 그냥 큰 감정 없는 형식적 인사말인 안녕이었고, 이거 했어? 는 이거 했는지 사실 확인을 그냥 물어본 거였고, 집에 안 가? 는 혼자 퇴근하기 머쓱하니 그냥 의례적으로 한 말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고 욕하지 않았다. 그냥 그건 내 머릿속에서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그걸 안 순간, 나는 급속도로 빠르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선글라스 벗기' 라고 내 스스로 이름붙인, 말에서 내 '상상'을 빼는 방법은 정말로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