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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Sep 28. 2021

엄마는 지옥이었다

애착관계의 부재가 만드는 회피형 인간

오후 두 시의 나른한 햇살. 구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른한 목소리. 나는 식탁에 앉아 있었고 엄마는 갓 구운 빵을 오븐에서 꺼냈다. 엄마는 막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새로 배웠다며 맛있는 음식들을 해주었고 그 시간은 따스한 햇살 속 나와 엄마만 있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따스했던 여덟 살의 기억, 엄마와 나 둘만의 비밀의 행복이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나는 나지막이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슬픈 건 그것 외에는 엄마와의 행복했던 추억이 없네요. 나머지는 온통 핏빛 추억들 뿐이었다. 기억 속 엄마는 항상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고 있었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상과는 달랐다. 착하고 조용하기보다는 억세고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집에 있기보다는 밖에서 일을 하거나 나가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엄마의 부재는 내 유년시절의 팔 할이었다. 방학 때 집에 있어야 할 때면 엄마는 출근을 하며 교육용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엄마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후다닥 만화 비디오로 바꿨던 기억이 난다. 출근하며 손에 꼭 쥐어준 돈으로 항상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료한 시간을 견디고 나면 엄마가 돌아왔다. 지금 같으면 늘어지게 잠을 자고 나면 엄마가 올 시간일 텐데 그때는 잠도 왜 이리 없었는지.


엄마는 바빴다. 가끔 열쇠가 없을 때면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문 앞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문 앞 그 자리에서만 기다렸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그곳을 벗어나면 엄마가 날 찾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걸까.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문 앞에서 실례를 한 적도 종종 있어 혼이 나곤 했다. 하루는 옆집 아줌마가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날 보며 본인 집에 초대하더니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곳은 다른 세계였다. 투박한 인테리어의 우리 집과 달리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우아함을 더했다. 아주머니는 주스와 쿠키를 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눈물이 났다. 나도 이런 예쁘고 따뜻한 엄마가 있었으면. 그 집만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돌아온 우리 집은 해가 저물었는지 너무나도 차가웠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따뜻한 말과 칭찬을 해주던 그 다정함이 그리웠다. 그러나 우리 집은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모두가 거칠었다.


돌아온 집은 전쟁터였다. 모두 천박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xx 년, xx새끼' 엄마와 아빠는 또 다투었다. 엄마는 우리를 자주 체벌했다.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주먹으로 치거나 회초리를 들었다. 왜 나는 이런 집에 살아야 하는 거지?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럴 때면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혼자 낙서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가족들은 내 낙서장을 훔쳐보고는 미술가가 될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며 비웃었다. 그럴수록 나는 움츠러들었고 낙서는 강박이 되었다. 그곳은 빛이 없는 교도소였다.


그럴수록 나는 자주 엇나갔다. 맞벌이 가정과 지옥 같은 집, 이 두 가지가 있는데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처음 또래들을 보게 된 초등학교에서 사회성을 잘 몰랐던 나는 집에서 항상 하던 대로 친구들을 대했다. 머리를 잡아당기고 주먹으로 치고 돈을 달라고 했다. 돈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본 세상은 그것뿐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호감이 그것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고 부러워했지만 어떻게 다가가는지 몰랐다.


갓 입학한 초등학생이 폭력과 강탈이라니. 당연히 그쪽 부모들이 난리가 났고 나는 엄마에게 불러가 혼이 났다.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사건을 크게 얘기하면서 나를 때렸다. 맞는 건 괜찮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떠벌리는 건 죽도록 싫었다.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받아쓰기 시험을 낙제한 날에도 그랬다.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내 점수를 떠벌리며 혼냈다. 그냥 패지. 차라리 죽도록 패지. 맞는 건 자신 있지만 부끄러움은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엄마에게만 말한 부끄러운 비밀이 있었는데, 하루는 엄마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며 그 비밀을 말하며 깔깔 웃는 모습을 훔쳐보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치솟았고 나는 앞으로 절대로 엄마에게 내 속마음을 말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엄마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나에게 엄마는 미움이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미웠다. 가장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모욕을 받았기에 삶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그 아픔은 밖에서는 타인을 향해 찌르고 안에서는 나를 파괴시켰다. 나의 인간관계는 그 덕에 불안의 연속이었다.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마음을 주면 나를 배신하겠지 라는 불안이 먼저였고 그럼에도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한 좌절감,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들에 대한 질투와 혐오가 이어졌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숨을 깊게 들이신 후 나는 다시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나는 더 깊은 얘기를, 잔인해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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