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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Oct 06. 2021

이모는 사랑이었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

예전 캐나다 친구에게 영어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첫날은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나는 열심히 대본을 준비해서 영어로 말했고 그 친구는 표정이 짐짓 진지해지는 것이 꽤나 감동받은 눈치였다. 내 영어실력이 이 정도야,라고 으쓱하고 있던 나에게 그 친구는 물었다. "나는 꽤 많은 아시안들에게 영어 과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소개할 때 그들은 항상 성과 위주로 자신을 표현하더라고. 좋은 대학에 간 게 어릴 적 물장구치며 놀았던 행복한 추억보다 더 자랑스러운 거야?"


다시 내 대본을 보았다. 몇 살 때 어떤 위기가 있었고,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위주로 말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0살 때 아버지 회사가 위기였는데 우리 가족들이 열심히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던가, 원래 공부를 못했던 내가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다던가. 서양에서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9살 때 부모님과 여행을 가서 즐거웠던 추억, 10살 때 친구들과 모험을 갔던 이야기, 13살 때 첫사랑 이야기라던가.


성과 위주와 감정 위주로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 차이만큼이나 동양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인생을 감정 위주로 표현한다면 어떤 서사를 가지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끔찍한 잔혹동화가 세상에 또 나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 책에는 자신의 행동이 자식을 괴롭히는 줄도 모르고 채찍질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나에게도 행복한 기억들은 당연히 있다. 상담 선생님은 누구와 있을 때 가장 마음 편한지 물어보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는 없다, 고 답했다. 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않거든요. 항상 가면을 쓰고 있어요. 항상 착하게, 부담스럽지 않게. 싫어도 좋다고 해주고, 피곤해도 맞춰줘야 해요. 내 진정한 본모습은 별로인 것 같아요. 날카롭고 감정적이고 상스러워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요. 


가끔 그런 본모습을 보여주는 친구가 있긴 한데, 저 스스로가 내가 이런 괴물이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져요. 그런 날이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떠날까 봐 두려워져서 집에서 혼자 자책하곤 해요. 전 항상 남들의 얘기를 들어줘요. 그리고 내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아요. 누가 내 어두운 모습까지 사랑해주고, 누가 내 깊은 모습까지 듣고 싶어 하겠어요. 이해를 바라기보단,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선생님은 알겠다며, 그러면 누구와 대화할 때 가장 편하게 대화를 했는지 다시 물었다. 나는 작은 이모,라고 답했다. 이모는 우리 상담에서 처음 나오는 인물이었다. 선생님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미소를 지으며 좀 더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했다. 나는 신이 난 아이처럼 재잘재잘 얘기를 시작했다.


작은 이모는 지워진 사람이었다.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집안에서 지워졌다.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이모는 좋은 대학교에 나왔고, 그 길로 석사 학위를 위해 해외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 여자가 4년제 대학 다니기도 쉽지 않았던 당시에 석사로, 해외 유학까지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연히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러던 이모는 덜컥 그곳에서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것도 흑인 남자와. 아직도 깜둥이라는 말이 만연했던 시대에 깜둥이와 애까지 가져버린 것이었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이모는 순식간에 치욕이 되었다. 당연히 결혼은 불가능했고 집안과 연을 끊어가며 이모는 그곳에서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고, 그 남자에게 이모는 잠시 스쳐갔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기나긴 이혼 소송 끝에 이모는 벌어놓은 돈을 모두 써버리고 마음까지 피폐해져 버렸다.


그러나 돌아올 수도 없었다. 결국 그곳에서 이모는 악착같이 일해서 성공했고 백인 남자와 재혼도 하며 다시 집안과의 관계도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에서 이모 얘기는 금기시되었고 나는 20살이 넘어서야 나에게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모는 20년이 넘어서야 우리를 초대할 수 있었다. 이모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지 계속 상상해보았다. 숨겨진 엄마가 있었다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모는 쾌활했다. 웃음이 넘쳤고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았다. 이모는 어릴 적에 나를 무척이나 아꼈다고 한다. 일찍 결혼한 언니의 아이였던 만큼 모든 이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20년의 공백이 있던 것이 다행이었던지, 이모는 나를 그때 사랑받던 아이로 바라봐주었다. 무슨 말을 해도 지지해주고 칭찬해주었다. 이모 스스로의 삶도 힘들었을 텐데 내 삶의 이야기는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고 받아주었다.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만날 때마다 행복해지는 사람이었다. 이모는 정신과 의사였다. 나는 언젠가 이모에게 내 모든 걸 털어놓고 상담받고자 마음먹었다. 이모와는 내 모든 고통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이 얘기를 듣더니, 지금 우리가 만난 이후로 가장 행복한 모습인 것 같다고 웃었다. 제가 어떻게 말하고 있죠?라고 묻자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고 있네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모는 짧은 인생을 얼마 전 마감했다.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에 의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환자는 자신을 도와주려던 사람에게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어느 날 밤, 나는 이모에게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이모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나 아팠을지, 그리고 가족들이 숨기고 있는 어떤 얘기들이 있는지. 그러나 나는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많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밤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안양천의 어느 다리 앞에서, 나는 잊고 싶었던 이모에 대해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억지로 차단막을 내리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다시 무너진 기분이었다. 유난히 밝았던 달빛 아래에서 나는 이모가 줬던 온기가 지금껏 나를 살아가게 했음을 느끼면서, 고마웠다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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