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처음 아이의 손을 고사리 같다고 표현했을까. 오므린 작은 손을 덜컥 내밀어 놓고는 눈길도 마주치지 못할 것처럼 수줍게 피었다. 봄비가 그치고, 봄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곳에서 오밀조밀 피어오른다. 오묘하게 생겼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채취해 본 적이 없는 고사리가 길가에 널려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밴쿠버에서 채취하는 고사리는 통통해서 먹잘 것이 있다. 어린 순을 채취해서 물에 삶고 햇볕에 말려서 나물로 먹기도 하고 육개장 국거리로 좋다. 귀한 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싸 들고 가서 지인들에게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건네기도 한다.
그리움을 캐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에게 고사리는 국민 나물이다. 제사상에 올린 것을 보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도 분명하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별명이 있다. 칼륨 성분이 많아서 나트륨 배출에 도움이 되고 상처 회복이나 염증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른 봄, 보릿고개에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식물이었을 것이다. 고사리는 구황식물로서 가치가 높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는 기근이 심할 때는 백성들이 고사리를 뜯어서 먹고 굶어 죽는 것을 면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창때 말려 두었다가 가을과 겨울에도 먹을 수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채취한 고사리의 맛도 그렇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고사리를 채취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고사리를 캐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삭히는 법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br7777/83
고사리는 위험하다.
밴쿠버에서 고사리(Bracken) 채취는 불법이다. 캐나다 국립공원(National Park)과 BC 주립공원(Provincial Park)에서는 식물 채집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흔적을 남기지 말고 떠나라. (Leave No Trace)’는 권고가 적용된다. 서양 사람들이 고사리를 먹지 않는 이유는 발암물질 관련 경고 때문이다. 고사리는 티아미나아제(thiaminase), 타킬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독성 물질이 있다. 티아미나아제는 적혈구를 파괴하고 피부 조직을 약하게 만들며, 타킬로사이드는 방광암 등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다. 또한 고사리는 야생동물인 사슴이나 노루의 먹이가 된다. 불법 고사리 채취는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실제 밴쿠버 근교 미션이라는 도시에서는 빨간색의 한국어로 표기한 경고문을 작성하여 붙였던 적이 있다. 고사리를 채취할 수 없으며 적발 시에는 벌금 2,000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었다. 금방 채취한 고사리는 떫은맛이 심해서 생으로 먹을 수가 없다. 고사리의 독성이 수용성이기 때문에 삶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잎이 핀 고사리는 독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채취하지 않는다. 많은 양의 고사리 포자를 섭취할 경우 위암을 일으킬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야생에서 포자의 양이 많지 않고 얼마나 많은 양의 고사리를 섭취할 때 해로운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방목 중인 소가 고사리를 먹고 혈뇨를 쏟으며 쓰러졌다는 학계의 보고는 적절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독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위대한 심장
이렇게 치명적인 것을 누가 처음 먹으려고 생각했던 것일까. 처음 고사리를 먹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가 먹고 쓰러지는 고사리를 먹겠다고 해독을 시도했던 그 사람의 심장은 얼마나 특별했던 것일까. 동물이나 식물은 저마다의 독을 가지고 산다. 버섯은 아름다울수록 독버섯일 가능성이 크다. 앙증맞게 잉잉거리며 꿀을 찾는 벌은 독침을 지니고 산다. 풀숲에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각자의 독을 품고 산다. 위험을 감지하면 죽을힘을 다해 맹독을 쏜다. 사람에게도 독이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 무슨 독을 품고 살아왔을까. 어떻게 독을 사용하고 살았을까. 때로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서히 중독되어 쓰러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쏜 독을 견디고 내 옆에서 살아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독하는 방법을 찾았던 것일까. 어쩌면 이 사람들은 나보다 더 위대한 심장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나를 고사리처럼 삶고 말려서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