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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잇 Sep 27. 2021

사랑스러운 4개월 아기가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순간

육퇴(육아 퇴근) 후 찾아오는 나만의 시간. 아기가 잠들고 온전히 나만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저녁 단 몇 시간. 이 시간이 바로 내가 하루하루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 12시에 가까운 야심한 시간, 출산 후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복부에 힘을 주며 열심히 유튜브 요가 동작을 따라 한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이제 몇 동작만 더 하면 곧 모든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키며 휴식하는 송장 자세인 ‘사바사나’ 시간이다. 달콤한 사바사나를 기대하며 요가 동작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기방에서 ‘끙’ 하는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온 신경이 곤두세워졌지만 요가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생각에 간혹 하는 잠꼬대겠거니 믿어버리기로 한다. 그러나 몇 초 후 좀 더 선명한 ‘끙끙’ 소리가 들려온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휴대폰으로 홈캠 어플을 켰다. 엎드린 채 고개를 번쩍 들고 있는 아기의 뒤통수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다. ‘안 돼’를 연신 속삭이며 달려간다. 


쪽쪽이가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잠이 깬 모양이다. 가끔 잠결에 뒤척이다 저렇게 엎드린 포즈가 되기도 하는데, 눈을 반 감은 채 꿈나라를 헤매고 있으면 수습이 가능하다. 입에 쪽쪽이를 쏙 넣어주기만 하면 바로 잠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글렀다. 눈이 굉장히 말똥말똥하게 빛난다. 이불 위를 더듬거리며 겨우 찾은 쪽쪽이를 재빨리 입에 넣어 보지만, 어둠 속에서 엄마를 발견한 아기는 이미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고 보는 나도 절로 웃음이 나지만 동시에 등골이 서늘하다.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기지만,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순간이다. 


평소 같으면 바로 아기 침대로 뛰어들어가 옆에 누워 토닥여줄 텐데, 하필 오늘 운동 후 옷이 흥건해질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오늘 막 빨래한 아기 이불에 도무지 들어가 누울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기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한다. 입으로 자장가를 흥얼거리지만 머릿속으로는 첫 번째 신호에 바로 방으로 달려가지 않았던 몇 분 전의 나 자신을 탓하고 있다. 아기는 이미 신이 날대로 나서 어둠 속에서 ‘꺅! 꺅!’ 외쳐대고 있다.


‘안 돼… 다시 자야 해… 지금 밤이라고…’


그런데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난다. 기저귀를 뚫고 엉덩이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시큼한 냄새… 불길한 예감에 살짝 기저귀를 들쳐보자 노란색이다. 


아기를 옆구리에 끼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화장실 조명을 켜면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릴까 봐 복도등만 켜고 엉덩이를 물로 헹군다. 


깨끗한 기저귀로 갈아주자 아기의 기분은 하늘을 찌른다. 흥분한 아기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입에 쪽쪽이를 물린 후 자장가를 튼다.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기 등을 토닥거리며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쉬~’ 소리를 반복한다. 아기들은 자궁 속에서 듣는 소리와 비슷한 백색소음을 편안하게 느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 먹히나 싶었지만 30분 넘게 반복하자 드디어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잠에 든 것이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울지 않고 웃으며 잠에서 깨 주고 비교적 수월하게 다시 잠들어준 아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기 얼굴에 뽀뽀를 한다. 뭘 해도 사랑스럽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잠잘 때 가장 사랑스럽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이 참 공감 간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한편에 왠지 모를 죄책감도 든다. 아기와의 모든 순간을 후회 없이 소중하게 보내야 하는데, 오늘 하루도 육아가 지친다는 핑계로 아기가 잠들 때 만을 기다리지는 않았나. 에너지 넘치게 놀아주고 싶은 마음만은 세계 1등인데, 아기와 둘이 온종일 시간을 보내면 체력이 바닥나고 지치기 마련이다. 나 자신을 잊고 아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가끔 우울한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한다. 그래서 육퇴 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해서 재충전하는 건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아기방으로 달려가며 잠시 동안 일시 정지해두었던 요가 영상을 다시 마무리하기로 한다. 


사바사나.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고요해지는 시간, 몸의 모든 근육을 이완시키고 호흡에만 집중하는 시간. 비록 평화로운 흐름은 이미 끊겼고 나의 의식은 온갖 생각을 다 헤집으며 날뛰고 있지만 육아로 보낸 하루의 끝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인 만큼, 참 행복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즐겁게 놀아줘야지!'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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