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단거리 선수의 마음
엊그제 일본에서 유학 중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는 그 카톡을 보고 풋,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봐도 현재 우리집 똥강아지의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하다. 앞머리가 5:5로 내려와 눈을 반쯤 덮고, 몸은 전신 후리스을 입은 거마냥 빵실빵실해서 산책만 다녀왔다 하면 회색개가 된다. 회색의 농도를 연일 갱신하고 있는 나날이라고 해야 할까.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80년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가 지금 우리 순심이의 현상태라고 하겠다.
"바지로 온 동네 다 쓸고 다니네."
순심이의 털을 자르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견주가 된 지 3년. 여러 미용사분들의 손을 탄 뒤 운명처럼 지금의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 난데없이 라마가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언젠가 한번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이 귀밑 수염을 잔뜩 살려 요상한 투구를 쓰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것쯤이야 참아줄 수 있다. 털이야 자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아이의 미용 태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여 순심이에게 강압적으로 미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덧붙이자면 순심이는 뭐든 저지레가 없는 성격임)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놀아주며 미용을 해주는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인친 피드에서 보게 되었고, 이후로는 좀 멀어도 꼭 그 선생님에게만 맡기고 있다. 그런데 왜 순심이가 추노꾼이 되었는가 하냐면, 선생님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서두르지 않으면 예약 잡기가 힘들어져서다. (그래서 나만 알고 싶다는 푸념이 유행하는지도)
서울살이란, 늘 이렇게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단거리 선수 같다. 인기 많은 곳에 사람이 쉬이 몰리고, 예약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한 달 전에는 연락을 해두어야만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생활체육시설은 수용 인원과 신청자의 수가 늘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우리는 매번 3:1의 경쟁률 싸움을 해야 한다.
요즘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굿즈 이벤트를 많이 하는데, 나는 한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 게으름도 탓이겠지만 서둘러도 키보드 싸움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 아쉬운 대로 당근마켓에서 웃돈 주고 사는 수밖에.
소소한 것들을 필요할 때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입시 경쟁, 입사 경쟁, 부동산 경쟁만으로도 족히 치이는 우리네 인생인데 개털이나마 제때 자르고, 카페 굿즈 정도야 거뜬히 사보고 싶다. 뭐, 굿즈는 제외한다손 쳐도.
여러분 서울은 여러분에게 시간적 여유를 많이 주나요?
그렇다면 서울 어디 사시는지...
돈이면 다 된다고 말하지 말아요.
전 돈이 없으니까요.
*출판사 편집자로 종종 글을 쓰고, 왕왕 영상 편집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YWeQvVA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