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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미 Sep 26. 2021

내면의 목소리를 듣다

숲 한 모금, 쉼 한 조각 _ 프롤로그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어."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건 숲이었다.

숲에 가면 낫겠지라니, 진부하네. 학업과 일을 쉰 적이 없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새벽에 일어나 논문을 썼다.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에 뱃속의 아이에게 "인생에는 희망과 고통이 함께 존재하는데 지금은 고통 쪽을 듣게 될 거야"라고 말해 놓으면 아이는 신기하게 발길질을 덜 하였다. 신생아 옆에서 쪽잠을 자다 나와 집에서 3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3년 6개월 동안 강의를 했다. 대학부터 시작한 학업을 끝내는 데 20년이 걸렸으니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며 살기 위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대가 덕분일까. 지금의 나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만을 실컷 하며 사는 삶을 살고 있다. 전문가의 삶이란 전반기를 희생해서 후반기를 확보하는 삶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가득 찬 내 삶은 그래서 행복한가?



"무엇을 잃었다는 건데?

네가 잃은 게 한 번이라도 네가 가져본 적이 있던 거야?"


거참 따지는 거 좋아하는 목소리네. 그건 잘 모르겠고 숲에 가야 할 것 같아.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런 감성을 타고났다면 나도 시를 쓸 수 있을까? 동경하는 마음에는 호감과 선망이 함께 따라붙는다. 메리 올리버가 프로빈스 타운에서 지낸 이유가 있겠지. 타샤 튜더 할머니는 아예 자기만의 숲을 만들었잖아. 이쯤 되면 헷갈린다. 숲에 대한 동경인지, 숲에 머물며 예리하면서도 원시적인 감성을 발휘했던 예술가에 대한 동경인지. 어느 쪽에 대한 동경인지는 몰라도 그 동경이 나의 거처를 큰 숲 근처로 정해 버렸다. 누군가가 어디 사냐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숲의 이름을 댄다. 그 땅이 마치 나의 소유물인 것처럼.



"올해 네가 그 숲을 몇 번이나 걸었더라..."


아이를 숲에 있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안락한 집을 유지하는데도,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느라 차를 굴리기 위해서도, 하다 못해 돌아다니며 글을 쓰기 위해 화면 크고 가벼운 노트북을 사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가 없다고.

숲도 있고, 집은 가깝고, 차도 있고, 걷기 멀쩡한 다리도 있는데, 시간만 없어서 못 갔네. 내가 낼 수 없는 시간이 과연 나의 시간일까. 내가 변형할 수 없는 소유물이 과연 나의 소유물일까. 못 질 한 번에도 눈치를 보는 게 임차인의 심정이라면 나는 내 시간의 임차인이다.



"그토록 원한다면 매일 가봐. 일하러 가듯이."


넌 참 일을 좋아하는구나. 하긴 노동은 인간의 존재양식이니까. 언제부터 우리는 한 곳에 모여 시간을 할애하고 다음 날 다시 만나는 일상을 일이라고 부른 걸까. 퇴근할 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을 하잖아.

수고: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 또는 그런 어려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맞아. 나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고 있지. 수고의 끝은 있는 걸까? 사실 수고가 어렵지만은 않다. 피학 성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렵기만 했다면 지속하지 않았을 거야.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다루는 일을 통해 얻은 깨달음 하나는,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하지 않은 행동은 지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고가 주는 즐거움은 분명 있다. 이를 테면 나아지는 기분이라던가, 뿌듯함이라던가, 몰입이라던가, 인정이라던가, 수고 자체에 대한 즐거움의 발견이라던가. 문제는 마음은 본래 즐거움에는 역치 값이 높아지고, 고통에는 역치 값이 낮아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고로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새롭거나 양적으로 아주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즐거움의 중독성이 고통보다 강하다. 중독은 고통법칙이 아니라 쾌락법칙을 따르니까. 중독을 치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상위의 가치로의 중독이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간다.



"숲에 가고 싶다는 거 아니었어?"

     

이렇다니까. 고마워, 다시 집중하게 해줘서. 욕구에 집중하지 않고 사유에 집중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잃은 게 즐거움일까? 아직 모르겠지만 숲에 가서 직접 찾아보려 한다. 잃은 걸 찾던, 휴식을 취하던 일단 가보려고. 출근하듯이. 내 몸을 이끌어 힘과 애를 쓰는 게 수고라면, 그 수고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숲에 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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