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 엄마 이경선

by Momanf

“음...마!”

제임스 눈이 똑바로 나를 보고 있었다.

“웜~마!”

“지금 엄마라고 했어?”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제임스를 꼭 껴안으며 되물었다.

“엄마!”

가슴 가득히 엄마라는 말이 공명이 되어 심장이 뛰었다.

29개월 만이다.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의미를 가지고 똑똑한 소리로 나를 부른 게.

제임스는 울음을 터트릴 때 마~~~~ 하는 엄마 비슷한 소리만 냈을 뿐, 여태껏 나를 부른 적이 없었다.

엄마, 엄마, 엄마...

10년 전, 나는 파란 눈을 가진 지금의 미국인 남편에게 첫눈에 반했다. 독신 주의자 였고 나보다 18살 나이가 많아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그를 오랫동안 설득해 아이 한 명만 갖자는 합의로 우리는 결혼했다. 연애와 결혼생활 약 7년 동안 자연스러운 임신은 되지 않자 시험관을 결정했고 총 네 번의 시술 실패 끝에 마침내 쌍둥이를 가지게 되었다. 체구는 작은데 배는 커질 대로 커져 임신 30주 이후에는 눕지도 못해 앉아서 자면서도 일주일에 두 번이나 대학원을 위해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했다. 자궁경부가 짧아져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등 위급한 상황도 있었지만 다행히 36주 5일이 되는 날, 딸 블레어 3.2kg, 아들 제임스를 3kg로 건강하게 낳았다.

밤 낮으로 두 아기 돌보미 이모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대학원 학업을 핑계로 집에서 나가 내 시간을 가졌다. 이모님이 퇴근하신 저녁이나 주말 동안 육아를 하며 오히려 육아에 모든 게 낯설었을 남편을 눈치가 없다고 핀잔을 주며 사사건건 육아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짜놓은 계획들이 육아 때문에 좌절되기 시작해 화가 났고 그것을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돌 지날 무렵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미국 부동산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독서실에서 집에 오면 나도 너무 피곤해 1~2시간 쉰다는 명목으로 You Tube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제임스가 눈 맞춤이 잘 안된다고 걱정하셨고, 원장 선생님은 엄마 공부는 다시 하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이 시기가 가장 소중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제임스를 찬찬히 지켜보니 이름을 불러도 보지를 않았고 억지로 눈을 맞추려고 해도 아이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남편에게 상담 간 얘기를 했고 남편은 사실 자폐아 검사 등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어 찾아봤었노라고 고백을 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장 발달센터 상담을 갔고 담당자는 아이가 말이 느린 게 문제가 아니라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대학병원에서 보다 더 정밀한 검사를 요한다고 말했다. 아이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대학병원 두 곳을 잡아놓고 검사를 시작했다. 2주간에 거쳐 자폐아 검사 및 다양한 검사가 시작되었고 결과는 그로부터 또 1~2주를 기다려야 해 사실상 한 달을 꼬박 검사와 결과의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아이는 혼자만 방에 들어가 버리고 몰래 따라 들어가 보면 혼자 중얼거리며 놀고 있었다. 아이만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아 나는 무서웠다. 아이는 소리도 많이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TV 화면을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응시하기만 했으며 우리가 말을 걸어도, 불러도 보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병은 알리는 게 좋다고? 나는 그때부터 여러 가지 의견을 다양한 시선에서 듣고 무엇이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해 제임스 문제를 육아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한쪽 눈동자가 늦게 따라오는 것 같다는 친구 의견에 안과도 갔고, 아는 언니로부터 사실 제임스가 자폐기가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었다는 말에 내가 눈 뜬 장님이었구나 생각했었다. 그동안 나는 제임스가 이중 국어의 혼동 때문에 말이 늦고 보통 딸 보다 아들이 느리니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내 자식이니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구나를 깨달았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분리 육아를 하며 제임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아들은 나와 홀로 남겨진 시간을 너무 좋아하는 듯 단둘이 타는 내차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떤 걸 애착으로 삼아 본 적이 없던 아이라 마음이 아팠고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일들, 딸아이가 반응이나 말이 빠르니 블레어 위주로 놀고 아들은 혼자 돌아다니면서 놀게 뒀던 일, 저지레를 하면 달려가 혼부터 내고 훈육이랍시고 소리를 지르고 무섭게 위협했던 일.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배달 반찬과 국으로 먹였고 나는 그것이 더 영양학적으로 낫다는 변명도 했었다. 나쁜 엄마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이 자라는 22개월 동안 이경선으로만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게 아이들에게 미안해졌고 배달 이유식도 끊었고 TV도 끊었다. 그 많던 내 목표들도 하나씩 끊었다.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임스에게 관심을 갖고부터 그저 잘 자라주는 블레어에게도 깊은 감사를 할 수 있었다. 남편이 아들에 대해 걱정을 할 때면 오히려 대범하게 자폐는 보통 사람이 상상조차 못하는 두뇌를 가진 천재라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큰 인물, 천재에게는 이런 일화 정도는 하나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으로 믿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상황이 오든 정말로 엄마로써 내가 뭐든 해줄 수 있다.” 이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어느 날 차 안에서 아이가 이유도 모르게 40분 동안 자지러지게 울었고, 나는 무장하고 있던 내 마음이 불안과 슬픔으로 잠식되는 장면을 봤다. 결국 차 앞자리에서 더 불안해 보이는 남편을 위해서도 꾹꾹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딸은 그런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했고, 나는 모두에게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앞을 보면서 명랑한 척 대답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을 씻기는데 아들의 엉덩이가 빨개져 있었다. 발진으로 아이가 아파서 울었던 것이다. 이유가 있는 울음이었다. 나는 안도하며 감사했다. 검사와 결과를 기다리는 그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기 시작했다. 혼자 놀려는 제임스를 참여시키고 더 많이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표현했다. 아이를 낳은 후 육아 문제로 다투기만 했던 남편과도 대화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매일 제임스의 컨디션과 일상을 나누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기도 하고 걱정도 함께 했다. 우리는 결국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James is just James. 큰 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롭거나 그런 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고. 제임스는 no matter what, 우리 아들이라고. 변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남편과 나는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한 달이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건 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제3의 눈이 생긴 것이다. 블레어의 성장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당연한 게 아니라 경이로웠다. 제임스가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변화들이 정말 위대했다.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스러웠고 감사했다. 나는 이미 제임스가 자폐아인가 아닌가의 결과와 무관해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아이들의 성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세상 엄마들, 특히나 장애우를 가진 부모들이 존경스러웠다.

결과가 나왔다. 또래 아이들보다 인지 발달이 8개월 정도 뒤져 있었지만 자폐는 아니었다. 감각통합과 언어발달 수업을 시작했고 아이에게 집중한지 5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아들은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나는 제임스에게 감사한다.

아들은 내 삶에서 중요한 게 정말로 무엇인지, 무엇이 우선순위이고,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진 행복한 사람인지 가르쳐주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했으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까지 주었다. 제임스는 블레어에게서 당연한 줄 알고 지나친 성장들을 우리에게 되짚어 주며 그 감동을 지속시켜 주고 있다.

나는 아이들을 출산했을 때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 제임스 발달 지연을 알아차리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아이에게 집중했던 그 한 달 동안에 아기가 엄마의 자궁에서 머리 밀고 나오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 블레어, 제임스 엄마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

“너희보다 더 더디게 태어난 엄마를 잘 부탁해.”

나는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