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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하루 Jun 10. 2024

아이러니

병원에 입원했다.

1박 2일

오전에 간단한? 수술을 끝내고

점심 먹고

간식으로 병원 1층 편의점에서 과자 잔뜩

캔커피, 게토레이 이온음료와 초콜릿까지.

다시 배부르지만 저녁까지 싹싹 다 먹고 누워있다.


그간 십수 년간 체중관리를 위해 걷고 산에 가고,

음식조절하고 했는데

이번 결과는

체중관리를 6개월간 못해서이라 생각해서

삼주정도 체중관리를 했었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것이 걷기와 운동인데

그건 하기 싫고 그래서

먹는 양을 조절했었다.

식욕이 없었던 터라 이틀에 한 번씩 밥을 먹고 해도

오히려 몸이 더 가볍고 쪽쪽 빠지는 뱃살에 기분이 좋았었다

과잉 영양이었던가, 간헐적 다이어트의 효과였던가.


그토록 참기 어려웠던 믹스커피와 과자, 빵, 단것들이 전혀 땡기지 않았다. “수술해야 합니다” 그 한마디에...


그 덕에 오늘의 병원밥 점심은 꿀맛이었다.

식사가 잘 나왔다. 평소 안좋아하는 돼지고기 불백과 그에 어우러진 파절이게까지 싹싹 단숨에 먹고

모든 반찬을 다 먹었다.


마취가 덜 깨서 그리 아프진 않았고

병실은 6인실이었으나 조용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이라

벨을 누르면 간병인이 식판을 가져가 주고

또 다른 벨을 누르면 간호사가 와 준다.

보호자 외의 면회인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1층 로비에서만 면회가 가능했기에

병실에서 떠드는 교회 사람이나 친구들도 없어

너무도 조용했다. 편안했다.

가뜩이나 기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지인이 호출해서 내려가 방문객을 맞이 한다는 것도 모순이다.

환자가 충분히 쉬어라고 입원하는 것인데

서로가 인사치레도 왔던 병문안이,코로나 이후 이제는사라지는 것 같아 아주 바람직하다.

아니면 요즘은 아픈 사람이 워낙 흔하기에

병문안이 별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미니 호텔에 온 듯하다

그 역했던 병원약 냄새도 나지 않고

먹고 자고 누워 뒹굴고 그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휴일에 종일 먹고 자고 누워 뒹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땐

나 자신이 먼저 ‘너는 뭐 하고 있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즐겁게 살아야 되지 않나?’ 하고

마음의 소리를 내어서 편하지 않았다.


아픈 상황만 빼고 나면 딱 좋다.

내일 조직검사의 결과만 좋게 나온다면 바로 퇴원이다.

나에게 이번 5월은 격동의 잔인한?  달이었다.

왜 그리 3,4월에 의욕이 넘쳤던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었다.

하고 싶은 마음도 한때이니

부지런히 하고 싶은 것 해보느라 바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노는 게 힘들지 않고 쉬웠었다. 놀아도 뭔가 새로운 것을 해 본다고 의욕 있고 재밌었다. 근사했다.

나의 제주 생활이 이대로 쭈욱 간다면 정말 근사한 삶일 거라고 느껴질 만큼 행복했었다.


근데 한순간 쫘찌직...

”수술해야 합니다 “ 이 한마디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간 수양으로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 괜찮다. 하고평정심을 찾아보려 했지만 마음은 무덤덤,. 냉정하게 가라 앉았고 모든 게 시니컬하게 회색빛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냥 아무 감정이 없는데, 간간이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지쳤나 보다.

애쓰는 내가 너무 애처로워서 흐르는 눈물일 뿐일 게다.


아침에 나의 담당 김부장의사 선생님은

수술대에서 마취 전에 마스크 사이로 씨익 웃어 주셨다.

그 어떤 말보다도 안심이 된다. 믿을 수가 있다.

터프한 것 같으면서도 둘째 언니같이 편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병기를 담담하게 얘기했더랬다..

그 뒷일에 대해 물어보면 ’ 그때 그 결과에 따라 생각합시다 ‘라는 말로 걱정을 끊어 주고

수술을, 주삿바늘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나에겐

“걱정은 의사한테 맡겨두라고, 걱정은 우리가 해 준다고” 그렇게 든든하게 안심시켜 주시는 좋은 의리파 선생님이시다.


의사의 삶이란, 간호사의 삶이란, 병원 관계자의 삶이란, 벌써 아침 7시 반 이전부터 세팅되어 있었다.

아침에 수술을 두어 건 끝내 놓고

진료실에서 우아하게 않으셔서

하루 종일 아픈 사람을 들여다본다.

피곤한 기색 없이...


나의 9시부터 6시까지의 삶도 치열하지만

안 치열한 삶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로

조용히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 일을 즐기기도 하면서..


여튼 요는,

밤에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면서

헐렁한 병원복 원피스 위로 드러난 쇄골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극심한 다이어트로 인해 드러낸 매혹적인 쇄골라인과

민낯임에도 예뻐 보이는 내 얼굴에 감탄하면서 후훗.

평소에는 불만이었던 내 눈빛과 얼굴과 몸매가

하필 이럴 때 예뻐 보이다니...

아. 이. 러.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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