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채식인 Feb 02. 2021

아무리 좋아도

헬프는 돕기 대장이다. 남을 곧잘 도와준다. 사람들을 도와주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들어주면 엄마는 정말 좋아했다. 아빠도 차를 같이 닦아주면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 도와주려고 애쓰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다. 헬프는 아침마다 그릇을 치웠다. 그런데 하루는 늦잠을 잤다. 헬프는 학교 버스를 놓칠까 봐 아빠가 먹고 있던 음식 그릇을 후다닥 치워 버렸다. 아빠가 소리쳤다. "아니, 헬프야!", "앗! 죄송해요. 저는 그냥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그날 오후, 헬프는 길을 가다가 웬 할머니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헬프는 다짜고짜 할머니 팔을 잡고 길을 건넜다."왜 이러냐? 얘야." 할머니가 묻자 헬프가 대답했다. "길을 건네 드리려고요.", "길을 건너다니?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어." 할머니가 길 건너편을 가리키며 조금 화가 난 듯 덧붙였다. "저런, 버스를 놓쳐 버렸잖아." 헬프가 말했다. "아, 죄송해요. 전 그냥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아내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뒤 내 머릿속은 하나의 질문으로 가득 찼다. "왜 아내가 암에 걸렸을까?"였다. 평소 아는 지식도 관련 전문가도 몰랐기에 발걸음은 서점으로 향했다. 건강 관련 도서를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음식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 맛있게 먹었던 음식 중에 우리의 몸을 해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우유가 그랬다. 칼슘이 많이 들어있어 뼈에 좋다고 알고 있었지만 반대였다. 우유에 함유된 많은 단백질은 우리 몸에 있는 칼슘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되었다. 결국 우유를 많이 마실수록 뼈 건강은 안 좋아질 수 있다. 실제로 유제품을 많이 먹는 국가일수록 골다공증 비율이 높았다. 또한 우유 속 단백질은 IGF-1과 같은 유사성장 호르몬을 증가시켜 암의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정보를 통해 음식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갔다. 나는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될 때마다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아내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저녁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잠에 들려고 하는데, 아내가 거실로 불렀다.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식탁에 앉아서 서로를 바라봤다. 아내가 먼저 말을 했다. "여보, 나 요즘 너무 힘들다." 안 그래도 갑상선암으로 몸이 좋지 않은데, 좁은 집에서 어린 남자아이 둘을 돌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그래, 알지. 당신이 고생이 너무 많아.", "그런데 여보, 나를 지금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뭔지 알아?", "당신, 암 때문에 그런 거지?". "아니, 여보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해."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한다고?" 너무 놀라 되물었다. 아내는 내가 평소 알려주는 건강 정보와 식습관을 바꾸는 일 들이 부담이 된다고 했다. 매일 책을 읽고 좋은 정보를 알려주고 음식을 바꾸는 일이 모두 우리 가족 특히 아내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일이 아내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 아내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안했고, 아이 둘을 돌보면서 몸도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아내는 쉬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인 나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내가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들만 아내 옆에서 쏟아냈다. 난 아내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에겐 그 모든 것이 강요이자 부담이었다. 그날 이후 정말 특별한 정보가 아니면 아내에게 책 내용을 소개하지 않았다. 아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서도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은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천천히 식습관을 바꿔나갔다.


<미움받을 용기>를 쓴 기시미 이치로는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면 "개입"하지 말고 "지원"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원을 하기 전에 타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해의 도구가 "존경"이라고 했다. 상대방을 존경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선뜻 알려주기 어렵다. 정말 필요할까? 정말 도움이 될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기억해 뒀다가 진짜 필요할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 아닌 남에게는 다를 수 있다. 개인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되려 남과 갈등만 겪게 된다. 나는 도우려고 한 것뿐인데 하는 생각으로 억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자신에게 있다. 채식도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채식은 맛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